얼마전 서태지가 새 앨범을 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그냥 단순히, '아니, 이 아저씨, 회사가 어려우신가...'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오늘(10월 2일) 새벽 새 앨범의 곡 하나를 살짝 공개했다.
곡 제목은 '소격동'. '소격동 프로젝트'라고 부르며 서태지 페이스북에서 찔끔찔끔(?) 힌트를 흘려가며 진행하고 있는 중인 이 프로젝트는, 서태지와 아이유가 함께 하고있다. 이번에 공개한 곡 '소격동'은 아이유 버전. 조만간 아이유 버전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하고, 그 후에 서태지 버전을 공개한다고 한다.
서태지 공식 페이스북에는 위와 같은 앨범 이미지가 올라와 있다. 급하신 분들은 일단 아래 링크를 따라가보시기 바란다.
서태지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eotaiji
소격동 티저영상:
IU X SEOTAIJI 소격동 TEASER (유튜브)
소격동 앨범(멜론):
http://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2284378
소격동 가사의 메시지
아직 앨범과 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으나, 페이스북과 언론을 통해 '80년대'와 '시대정신'이라는 키워드가 나왔다. 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가만히 있진 않을 테다. 일단 가사를 한 번 보자.
소격동
나 그대와 둘이 걷던 그 좁은 골목계단을 홀로 걸어요
그 옛날의 짙은 향기가 내 옆을 스치죠
널 떠나는 날 사실 난..
등 밑 처마 고드름과 참새소리 예쁜 이 마을에 살거에요
소격동을 기억하나요 지금도 그대로 있죠
아주 늦은 밤 하얀 눈이 왔었죠 소복이 쌓이니 내 맘도 설렜죠
나는 그날 밤 단 한숨도 못 잤죠
잠들면 안돼요 눈을 뜨면 사라지죠
어느날 갑자기 그 많던 냇물이 말라갔죠
내 어린 마음도 그 시냇물처럼 그렇게 말랐겠죠
너의 모든걸 두 눈에 담고 있었죠 소소한 하루가 넉넉했던 날
그러던 어느날 세상이 뒤집혔죠 다들 꼭 잡아요 잠깐 사이에 사라지죠
잊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나에겐 사진 한 장도 남아있지가 않죠
그저 되뇌면서 되뇌면서 나 그저 애를 쓸 뿐이죠
이 가사 그대로 아이유가 한들한들 부르면 그냥 80년대 아련한 과거의 한 동네를 회상하는 곡으로 밖에 안 보인다.
그런데 '80년대'와 '시대정신'을 염두에 두고, 이 가사를 맨 끝에서부터 윗쪽으로 '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소격동
그저 되뇌면서 되뇌면서 나 그저 애를 쓸 뿐이죠
잊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나에겐 사진 한 장도 남아있지가 않죠
그러던 어느날 세상이 뒤집혔죠 다들 꼭 잡아요 잠깐 사이에 사라지죠
너의 모든걸 두 눈에 담고 있었죠 소소한 하루가 넉넉했던 날
내 어린 마음도 그 시냇물처럼 그렇게 말랐겠죠
어느날 갑자기 그 많던 냇물이 말라갔죠
잠들면 안돼요 눈을 뜨면 사라지죠
나는 그날 밤 단 한숨도 못 잤죠
아주 늦은 밤 하얀 눈이 왔었죠 소복이 쌓이니 내 맘도 설렜죠
소격동을 기억하나요 지금도 그대로 있죠
등 밑 처마 고드름과 참새소리 예쁜 이 마을에 살거에요
널 떠나는 날 사실 난..
그 옛날의 짙은 향기가 내 옆을 스치죠
나 그대와 둘이 걷던 그 좁은 골목계단을 홀로 걸어요
뭔가 느낌이 오지 않는가. 어쩌면 제 2의 '
시대유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격동, 기무사
노래 제목인 소격동을 주목해보면 좀 더 명확히 드러난다. 소격동은 바로 옛날 기무사(국군기무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1974년부터 2008년까지 그 동네에 있었다.
7,80년대에는 보안사(국군 보안사령부)라는 이름을 하고 있었는데, 이곳과 관련된 80년대 주요 사건들은 누구나 다 아는 굵직한 사건들이 있다. '12.12 군사 반란(1979)'과 '5.17 쿠데타(5.18 내란, 1980)', 그리고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과 모두 연관이 있다.
그리고 1989년에는 친위쿠데타를 하기 위한 준비 중 하나로 '청명계획'이라는 것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친위쿠데타를 성공시키는 데 방해가 될 반정부 인사들 목록을 만들어, 이들을 사찰하다가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날을 전후해서 전원 검거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윤석양 이병이 사찰 대상 민간인 목록이 담긴 디스크를 들고 탈영해서 공개하는 바람에 세상에 드러났고 큰 파장이 일어, 노태우 정권 퇴진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이 목록에는 다방면의 다양한 사람들이 올라가 있었는데, 그 중 'A급'으로 분류해 사찰한 민간인으로는 노무현, 이해찬, 문익환 등의 인물들이 있었다.
녹화사업
1981년부터 83년까지는 이른바 '녹화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명단에 오른 대학생들을 강제로 입대시키고, 그들을 총학생회 등 운동권 친구들에게 가게 해서 정보를 물어오게 하는 '프락치'활동을 시킨 것. 단시 보안사 공작예산의 절반이 이 녹화사업에 쓰였다고 한다.
후에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에서는, 녹화사업으로 인해 의문사 한 청년 6명의 명단을 밝히기도 했다.
이쯤하면 뭔가 할 말이 있어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노래에 메시지를 담을 것이란 걸 추측할 수 있겠다. 물론 공식적으로 나온 이야기는 아니고 오로지 추측일 뿐이니, 틀렸을 수도 있다. 아직 확실한 건 없으니, 이후 어떤 노래들이 또 나오고, 어떤 행동들을 해 나갈지 관심 가지고 지켜보는 수 밖에. 이미 소격동 노래 하나로도 '역시 서태지다' 싶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