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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오른 산 꼭대기엔 폐허만 있고 2 - 시기리야, 스리랑카해외여행/스리랑카 2009 2015. 10. 30. 00:56
힘들게 오른 만큼 별 감흥이 없었던 시기리야. 이 위에 고급 호텔이나 하나 지어서 밤하늘 별이나 보게 하면 장사 잘 될 텐데 같은 생각이나 하면서 노닥노닥 시간 보냈다. 물론 경치도 좋았지만, 비싼 입장료 본전 생각이 나서 최대한 오래 버티고 버텨 봤지만, 정말 뭐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그냥 할 것만 없었다면 멍때리고 있으면 되는데, 따가운 햇살을 피할 곳이 없어서 이대로 있다간 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쯤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여기, 누가 뱅기표랑 입장료 대신 내 주지 않는 한 다시는 가 볼 일 없겠지.
이 꼭대기에 이런 수영장 만들어 놓고 한들한들 놀았겠지. 물론 그렇게 논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을 거고, 나머지는 물 길어오고 시중들고, 싸이코 왕이 언제 목 자를지 알 수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그랬겠지.
그냥 폐허, 낭떠러지, 풍경, 바람, 따가운 햇살, 그것 뿐.
큰 나무가 하나 있었고 거기 시원한 그늘이 있긴 했는데, 잠시 앉았다가 올려다보니 커다란 말벌들이 드나드는 벌집이 떡하니 있었다. 세상이 다 그렇지, 좋은 자리는 이미 다 임자가 있는 법.
햇볕을 견딜 수가 없어서 이제 슬금슬금 내려간다. 올라올 땐 미처 몰랐는데 내려갈 땐 바람이 꽤 거세게 몰아친다.
여기가 시기리야 돌산 중간지점. 여기까지는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달랐다.
숙소 잡아놓은 곳도 없어서 모든 짐을 다 짊어지고 오르내렸다. 거의 7킬로에 육박하는 엄청난 짐을 내내 들고 다녔던 것. 뭐 다른 사람들은 여행 짐이 그것 밖에 안 되냐고 하던데, 난 그 정도 무게도 전생의 업이라 여겨져서 엄청난 무게로 짓눌리는 걸 어쩌랴. 나중에 일본 여행을 딱 여권, 돈, 카메라만 들고 해봤는데 정말 좋더라. 어쨌든 올라가는 것은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 내려가는 건 금방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름 의미도 있고 괜찮은 곳이었을 것도 같은데, 내 기억 속엔 그저 25달러 짜리 돌산으로만 남아있을 뿐이고.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오르고 내렸던 한 가족이 있었는데, 할머니 한 분에 딸만 셋인 가족이었다. 남자들은 전쟁에서 다 죽었다고. 열 일곱 살이라고 했던가, 막내 딸이 그나마 교육을 좀 받았는지 단어 나열 정도의 영어를 할 수 있어서 대화를 좀 하며 걸었는데, 그 어머니가 자꾸 노골적으로 둘을 이어줘서 외국인에게 시집 보내려는 모습을 보여서 너무 부담스러웠다. 이 당시, 외국인에게 딸을 시집보내려는 그런 분위기는 비단 이 가족 뿐만 아니라 여행 중 내내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내전 끝난지 얼마 안 된 시점이기도 해서 그랬던 것 아닌가 싶은데, 참 부담스러우면서도 서글프고 그랬다. 내가 어떻게든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것과 같은 거겠지 싶어서 감정이입도 잘 되고. 뭐 그랬다.
이 당시만 해도 길에서 멍하니 앉아 있던 경비원 같은 사람들에게 '헬로우'하고 인사를 건네면 아주 심각하게 당황하면서 눈과 등에 힘을 딱 주고 '예.쓰!'하고 그랬는데, 아직도 그러는가 모르겠다. '왜 저 외국인이 나한테 말을 걸지? 이 위기를 잘 못 대응하면 난 잘릴지도 몰라' 같은, 그런 류의 당황스러움이 막 느껴져서 별 생각 없이 인사를 건넨 내가 더 무안해지기도 했고.
나름 관광지라고 코끼리 투어도 있었다. 지금은 더 많아졌을려나. 뭐 지금은 그 때 같은 평온함과 고요함도 다 없어졌겠지. 이미 스리랑카는 관광지로 발돋움 하고 있는 상태고, 시기리야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관광지가 됐으니까. 그런 걸 생각하면 예전에 가봤던 곳을 다시 가보기가 겁난다.
어쨌든 별 감흥 없었던 25달러 짜리 돌산을 보고 다시 담불라로. 그리고 또 어디론가 이동을 한다. 스리랑카 자체가 인도 여행 하면서 잠시 여행하려고 들른 곳이라서 여기저기 빠르게 구경하고 다니는 여정의 연속이었다. 물론 어느 한 곳 정감 느껴지는 곳 있으면 쭉 눌러 앉을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런 곳이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스리랑카 여행 자체가 피곤함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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