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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오른 산 꼭대기엔 폐허만 있고 1 - 시기리야, 스리랑카해외여행/스리랑카 2009 2015. 10. 30. 00:23
시기리야(Sigiriya)는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유적이자 관광지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곳이라 스리랑카를 가는 관광객들은 꼭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5세기 경 카사파 1세는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자신은 평민의 어머니에게서 났기 때문에, 왕족 어머니에게서 난 배다른 동생에게 왕위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일을 저질렀다. 그러자 동생은 바다 건너 인도로 도망갔는데, 그가 다시 돌아와서 왕위를 차지하려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높은 바위산 위에 왕궁을 만들어 살았다. 그곳이 바로 시기리야. 사실 시기리야는 이 일대를 칭하는 이름이고, 왕이 기거했다는 바위산은 시기리야 롹(Sigiriya Rock)이라 부른다.
시기리야 바위산은 담불라 근처로 버스를 타고 오가다보면 슬쩍 보인다. 이 근처에 그리 높은 산이 없어서 여기저기서 잘 보이는 편이다. 2009년에 담불라에서 시기리야로 가는 버스는 갈 때 30루피, 올 때 24루피였다. 똑같은 거리이고 비슷한 (다 낡아빠진 허름한) 버스였는데 왜 가격 차이가 났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더 올랐을 거라는 것만 확실하다. 참고로
이 당시 담불라에서 시기리야를 왕복하는 버스의 라운드 티켓(왕복 티켓)은 50루피였다. 물론 언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나는 그냥 편도로 끊어서 다녔다. 하지만 거의 어디로 가든 간에 시기리야에서는 다시 담불라 버스 스테이션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시기리야는 바위산만 덩그라니 있는 것이 아니라, 바위산 앞쪽으로도 다 부숴진 유물들이 꽤 길게 늘어서있었다. 카사파 1세가 정신이상자였다는 말도 있던데, 바위산을 궁전으로 중심에 놓고, 그 주위를 왕궁처럼 꾸며놓은 걸 보니 정말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해선 그런 발상 자체가 어렵지 않나.
시기리야 바위산은 주위 평지로부터 약 200미터 정도 높이라고 한다. 그런데 주위에 이렇다 할 언덕이나 산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더 높아보인다. 거의 평지에 이 돌산 하나만 우뚝 솟아있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돌산이라서 올라가는 길도 만만치가 않다. 좁은 것은 둘째 치고, 가파르고 길고 높아서 거의 등산이라고 봐야 한다.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유적지이자 관광지인 만큼 외국인 입장료도 엄청나게 비싸다. 2009년엔 미국 달러로 25달러였다. 스리랑카 돈으론 2875루피라고 적혀 있었다. 그당시 환율이 1달러에 대략 114 루피였으므로 대충 환율에 맞게 맞춰놨다. 어느 쪽으로 내든 큰 차이는 없는데, 매표소 직원은 달러로 내라고 닦달했다. 참고로 2015년 경엔 입장료가 30달러라는 말을 들었다. 입장료 치고는 엄청난데, 그래도 스리랑카를 가서 한 번 쯤은 안 가볼 수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노렸겠지. 이런 걸 보면 참...
초반엔 그냥 평범한 유적지 속을 거니는 듯 한 길들이 이어진다. 이 때는 평온하지. 슬슬 돌 산 앞에 서면 이제 등산이 시작된다.
용접 상태가 엉망이라 덜렁덜렁하는 철판 계단을 딛고 올라가기도 해야 하고.
시기리야가 유명한 것은 이 벽화 때문이기도 하다. '압사라'라는 요정과 그 요정들을 시중드는 시녀들을 그려놓은 것인데, 많은 매체들이 '마치 지금이라도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은 현실감 블라블라'라고 소개한다. 당연히 막상 가보면 그 정도는 아니다. 그냥 딱 벽화 같이 생겼다. 아름답다고 극찬을 하는 곳도 있던데, 난 좀 거시기 했다. 사진 보면 알겠지만... 물론 미적 감각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엄청나게 아름다워 보일 사람도 있긴 있겠지. 무엇보다 가슴이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좀 실망이었다. 요정들은 저런 가슴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아름답다고 극찬하는 벽화 옆을 현지인들은 그냥 건성건성 보며 지나가버린다. 이당시 벽화 사진 찍는 사람은 나 하나 뿐. 그게 장해 보였는지 뭔가 발굴 같은 것 하던 사람이 저쪽에 비공개 벽화가 더 있다며 막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래봤자 벽화가 그리 많지는 않다. 물론 고고학적 문외한이라 이 벽화의 중요성을 몰라서 이런 소리 하는 거다.
이 당시에는 나선형으로 된 철계단이 올라가는 것과 내려가는 것이 따로 분리되어 나란히 솟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은 많이 바뀐 것 같다. 이때 올라가면서 철계단 용접 상태를 유심히 살폈는데,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낡아서 떨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에 최대한 빨리 쉬지 않고 올라갔다. 저 옆의 철망도 사실은 철계단이 낡아서 떨어지면 저거 잡고 버티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한 마디로 꽤 위험했다. 너무 덜렁덜렁해서 밟지 않고 건너뛴 철계단도 여럿 있었으니까. 요즘은 좀 바뀌었을래나 몰라.
왕이 나돌아다니는 모습이 외부에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높은 벽을 세웠다고.
이렇게 힘들여 오르면 어느 순간 넓은 공간이 나오고, 다시 성곽처럼 세워진 계단들이 또 잔뜩 나온다. 의외로 높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 올라가면 다시 폐허. 당연히 왕궁 따위 없고, 터만 남아있다. 원래 이 바위산은 수도승들이 도 닦던 곳을 왕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왕의 동생은 왕위를 뺏으려고 쳐들어왔다. 그냥 여기서 버텼으면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 텐데, 왕은 몸소 전쟁을 치르러 벌판으로 나갔다. 대체 그럴 거면 왜 왕궁을 이 바위산 위에 지었는지 참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래서 졌고 왕궁은 다시 도 닦는 곳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꼭대기에 올라보면 유적들 너머로 주위 경치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위치도 스리랑카 섬 거의 한복판이라서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알아채기 딱 좋은 곳이기도 하다. 맨날 이런 경치 보고 살면 좋을까, 아니면 그리 넓지 않은 이 산 꼭대기가 감옥처럼 느껴졌을까.
힘들게 기어 올라온 것에 비하면 볼 거리가 그리 많지 않아서 시원한 바람 좀 쐬다가 바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나는 외국인이라 비싼 돈 내고 올라왔기 때문에 최대한 오래 버틴다고 버틴 것이 한 시간 정도. 바람은 시원한데 따가운 햇살을 막아줄 그늘이 거의 없어서 그 정도 버티기도 어렵다. 정말 억지로 구석구석 다 돌아다니며 버틴게 그 정도였다.
인터넷에서 시기리야로 찾아보면 항공사진으로 멋지게 찍은 사진이 딱 나오는데, 그것과는 너무 다르다. 역시 사진은 특히 여행지 사진은 믿으면 안 된다. 너무 기대하면 그만큼 실망도 깊어진다는 뜻. 그래도 한 번 쯤은 가볼만 한 곳이긴 하다. 뭐 세상에 이름 난 곳들 중 한 번 쯤 가볼만 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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