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배터리가 완전히 나가버려서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못 보는 상황이 됐다. 한국에서 99% 충전해 간 핸드폰 배터리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쓰려고 비행기 모드로 해놓고, 밤에는 아예 꺼놨다. 로밍이나 현지 유심 같은 것도 안 했고, 기본 자동 로밍이 돼서 잠깐씩 시계로 쓰기는 했다. 홋카이도 도착한 이후 와이파이도 한 번 쓴 적 없었다, 물론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 곳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3일 정도 버텼으니 꽤 많이 버틴거긴 하다.

 

산길 내려온 이후로는 거의 평지에 드문드문 작은 마을이 나오는 국도를 따라서 가기만 하면 됐기 때문에, 지도 없이도 그럭저럭 갈 만 했다. 그래도 좀 불안했고, 만약의 사태가 있을 수도 있어서 길 가 어느 편의점에 들어가서 과감하게 지도책을 샀다.

 

지도책 사진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일단은 보이지가 않아서 그냥 말로만 설명하겠다. 한자로 '북해도 도로지도'라고 돼 있고, 아래쪽엔 'mapple MAX'라고 쓰여져 있는데, 표지엔 뜬금없이 사과 사진이 있는 지도책이다. 무려 1400엔. 몇몇 캠프장 위치도 지도에 표기 돼 있어서 꽤 유용할 것 같았다. 결국 그 기능은 딱 한 번 사용하는 데 그쳤지만.

 

 

 

와 비싼 지도책 하나 질렀으니 상쾌한 마음으로 자전거를 달리자. 후라노에 점점 가까워지니 풍경도 아름다워지고 있다. 말로 설명을 하면 그냥 산 있고, 들판 있고, 나무 있다 정도로 끝 나겠지만, 느낌이 좀 다르다. 광활한데 아기자기한 느낌이랄까. 넓고 깊은 풍경이라도 색깔이 단조로운 곳도 있는데, 여기는 하늘과 산과 들판만 펼쳐져 있어도 색깔이 다채로웠다.

 

 

 

라벤다엔, 나카후라노 라벤더 공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5

 

드디어 후라노 지역에 접어들었다. 홋카이도 여름하면 딱 나오는 그 라벤더 꽃밭은 한 번 보고 싶었다. 사진처럼 그렇게 반짝반짝 이쁘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하고 큰 기대를 하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은근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처음엔 몰랐는데 후라노엔 라벤더 꽃밭이 여러개 있었다. 저마다 약간씩 특색을 가지고 있는 듯 한데, 다 돌아볼 순 없었다. 자전거로는 도저히 힘이 들어서. 사람들에게 알려진 유명한 곳들 외에도 길 가에 조그만 규모의 꽃밭도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라벤더를 질리도록 볼 수 있다.

 

이쯤부터 중국인 관광객들이 슬슬 많아지기 시작하고, 딱 봐도 이 근처에서 빌린 게 티가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주로 역 근처에서 빌리는 듯 했는데, 나중에 자전거 대여 가격을 보니까 버릴 생각 하고 싸구려 자전거 끌고 오길 잘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벤다엔, 나카후라노 라벤더 공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5

 

 

 

꽃밭 가는 중간에 게스트하우스 표지판이 보이길래 오르막길 힘들게 기어 올라와서 오늘 밤에 묵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사람이 꽉 차서 자리가 없단다. 하긴 이런 유명 관광지 가까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라면 거의 저녁이 다 돼 가는 시간에 자리가 남아 있을리가 없지. 라지만, 혹시 내 거지꼴을 보고 거절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오늘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배터리 충전을 좀 하고 싶었다.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카메라 배터리도 간당간당 했다. 하지만 이미 스마트폰은 꺼져 있고, 켤 수 있다 하더라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게스트하우스 찾기는 이미 포기했다. 길 가다가 보이면 들어가보는 거고, 아니면 말고.

 

어떻게 하면 이런 여행을 할 때 배터리 충전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고민해봤는데 아무래도 답이 없다. 중간중간 게스트하우스를 들어가는 수 밖에. 하지만 중간에 게스트하우스에 하루 묵는다고 과연 모든 배터리를 풀 충전 할 수 있을 것인가도 문제다. 대용량 보조배터리를 가지고 다니면 어느정도 문제가 해결되긴 하는데, 이젠 항공기 탑승 시 배터리 수량 규제도 하고 해서 이래저래 복잡하다.

 

어쨌든 일본에선 주인 허락 없이 함부로 충전을 하면 전기 절도죄로 감방 갈 수도 있다 한다. 실제로 예전에 편의점에서 몰래 전기를 사용하던 사람이 경찰에 넘겨진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눈 오면 굴러 내려가기 딱 좋은 경사길이 인상적이었는데.

 

라벤다엔, 나카후라노 라벤더 공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5

 

'라벤다 엔' 도착. 영어로 '라벤더 파크'라고 돼 있더라. 겨울엔 스키장으로 쓰고, 여름엔 라벤더 꽃밭으로 쓰면서 어떻게든 놀려두지 않고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애틋한 노력이 느껴졌다. 물론 입장료는 없지만, 레프트 탑승료라든가 먹거리 판매 등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주위에 라벤더 공원이 많아서 아예 영어로 '라벤더 공원 (Lavender Park)'라고 해놓은 것 같다. 나처럼 별 자료 없이 길 가다 보는 사람은 여기가 그 유명한 곳인가 하고 착각하기 딱 좋다. 물론 여기도 관광지로 꽤 알려진 곳이긴 하지만.

 

 

중국 사람들 정말 많던데, 화장실엔 일본어와 한국어로만 주의사항 적혀 있더라. 한국어 안내판은 두 개나.

 

라벤다엔, 나카후라노 라벤더 공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5

 

저렇게 겨울엔 스키장으로 쓰이는 산에다 라벤더를 심어놨다. 원래 저 정도로 듬성듬성 펴 있는 게 전부인 건지, 7월 중순 쯤이라서 아직 덜 핀 건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카메라 각도 잘 잡아서 찍으면 막 꽉꽉 찬 것 처럼 보이게 찍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귀찮으니 포기.

 

라벤다엔, 나카후라노 라벤더 공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5

 

꽃이 생각보다 더 듬성듬성 나 있어서 꿈도 희망도 사라져버렸다. 여기 온 김에 라벤더 아이스크림이나 먹어보자며 300엔이나 주고 사먹은 아이스크림도 별로였고. 근데 여기가 아니야. 조금 더 가다가 알게됐는데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팜 도미타'라는 게 있다. 거기가 최소한 아이스크림은 좀 더 맛있더라.

 

 

아이스크림보다 더 맛있는 매치. 진한 레모네이드 맛이라서 일본 여행가면 길거리에서 꽤 자주 사먹는 음료. 비싼 게 흠이라서 거의 항상 콜라와 매치 사이에서 갈등을 하긴 하지만, 기력 떨어지거나 기분 안 좋으면 그냥 선택. 이날은 아이스크림이 맛 없어서 다른 고민 하나도 안 하고 바로 버튼 누름.

 

라벤다엔, 나카후라노 라벤더 공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5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기저기서 온 관광객들로 미어터졌다. 서양인들은 거의 없고.

 

라벤다엔, 나카후라노 라벤더 공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5

 

라벤다엔, 나카후라노 라벤더 공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5

 

여기저기서 기념촬영하고 셀카 찍고 난리였다. 꽃밭은 꼭 레프트를 타지 않아도 걸어서 중턱이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기운이 없다. 전날 잠을 거의 못 잔 것이 만사 의욕상실로 돌아왔다. 후라노 쪽이 또 평지라서 그런건지 이상하게 햇볕이 쎄고 따가워서 더 많이 지쳤다. 여기까지 왔으니 사진은 좀 찍어가자며 평지에서만 대강 사진 몇 장 찍었는데도 체력 방전.

 

라벤다엔, 나카후라노 라벤더 공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5

 

라벤다엔, 나카후라노 라벤더 공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5

 

라벤더 꽃밭을 보면서 식사나 군것질 등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아마 스키 시즌엔 스키 타다가 쉬는 공간이 되겠지. 라벤더 아이스크림 외에도 홋카이도 메론 등 이것저것 많이 파는데, 다 비싸다.

 

라벤다엔, 나카후라노 라벤더 공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5

 

여기는 '라벤다 엔'이라는 곳으로 길 가에 위치해 있어서 접근성이 좋아서 눈에 띈다. 그리고 진짜로 유명한 '팜 도미타'는 약간 구석에 위치해 있어서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곳에 있다. 이 둘 사이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서 자전거를 빌렸다면 당일치기로 둘 다 둘러볼 수도 있다. 근데 팜 도미타를 간다면 여기를 딱히 가 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어쨌든 배가 고프지만 관광지는 비싸므로 대충 설렁설렁 둘러보고 편의점 찾아서 출발. 

 

라벤다엔, 나카후라노 라벤더 공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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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