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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 명의 플라톤은 영구와 땡칠이
    잡다구리 2016. 10. 1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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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레이시아 남쪽 끄트머리에 조호바루라는 도시가 있다. 싱가폴에서 다리를 건너면 바로 닿는 곳으로, 이곳을 통해서 싱가폴과 말레이시아를 육로로 오갈 수 있다. 그래서 버스나 승용차 등의 차량 통행량이 많은 곳이다. 싱가폴보다 비교적 싼 물가 때문에 조호바루에 집을 두고 일주일 단위로 출퇴근 하는 직장인들도 있고, 주말이면 놀러가기 위한 싱가폴인들과 말레이시아 인들도 많아서 길이 꽉 차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조호바루에서 싱가폴과 이어진 다리 끄트머리 지역은, 차와 사람이 붐빈다는 것 외에도 큰 특색이 하나 있다. 완전 쓰레기 천지라는 것이다. 조호바루 시민들이 더러워서 그런게 아니다. 싱가폴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와서 처음으로 접하는 말레이시아 땅에다가 쓰레기를 봉지째 마구 투척해서 그런 것이다.

     

    직접 보면 정말 놀랍다. 싱가폴에서 질서정연하게 버스에 탑승하고 국경을 지나 다리를 건너 조호바루에 딱 닿으면 창문을 열고 일제히 쓰레기 봉지를 던진다. 승용차들이 오히려 더 심하다. 거의 예외없이 차 안에서 쓰레기 봉지들이 휙휙 던져져 나온다. 이 때문에 청소부는 마치 시지프스처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하루종일 그 구역을 맴돌며 쓰레기를 치운다. 물론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차량은 계속해서 밀려드니까.

     

    이건 때때로 외신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자국에서 질서와 규칙을 강요받던 싱가폴 인들이 억압에서 풀려나자마자 허리띠를 푸는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이걸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조호바루 국경 근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데 싱가폴에서 건너오는 승용차들이 창문 너머로 쓰레기를 휙휙 던지는 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봤더랬다. 그곳에서 장사하는 말레이시아 인들은 당연히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으니 크게 신경쓰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 아마도. 그걸 지켜보면서 어쩌면 인간은 강요된 규율로 어찌할 수 없는 어느 한도 내의 무질서 본능이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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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필리핀에선 두테르테 대통령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 언론에서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얼굴이 나온다. 아마 다들 어느 정도는 아실 테다. 마약 관련 범죄를 저지른 것이 발각되면 그냥 현장에서 총살하는 것으로 유명하니까. 범죄 단체를 이용해서 다른 범죄 집단을 응징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범죄단체에 가담한 사람이라면 그냥 길에서 쏴 죽여도 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야말로 범죄와의 전쟁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행위는 법치국가에선 받아들일 수 없다. 범죄인도 재판 과정을 거쳐서 심판을 받는 것이 기본 상식이니까. 그래서 필리핀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필리핀이라는 나라, 범죄와 부패에 찌들어 희망은 고사하고 안정된 삶마저 위협받는 그런 사회라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웬만한 처방으로는 회생할 수 없을 것 같은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하니까. 그래서인지 필리핀 내부에서는 아직까지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그런 처방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듯 하다. 물론 현지 언론과 외신들이 의도적으로 외곡 보도를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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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이 살짝 다를 수는 있지만 콜롬비아의 최근 사건도 한 번 언급해보자. 최근 콜롬비아 정부는 반군과 52년여에 걸친 내전을 끝내는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을 이제 민주주의 법치주의 국가답게 국민투표 과정을 거쳐서 통과되면, 짜잔 우리는 이제 평화국가라고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런데 이 평화협정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 49.76대 50.23. 아주 근소한 차이로 반대표가 조금 더 많았던 것이다.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평화협정에 큰 문제도 없어 보인다. 반군을 용서하고 포용해주며 사회에 들어와 살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준다는 정도.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물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야당의 전략으로 그렇게 됐다는 분석도 있으나, 이들도 결국 국민들을 설득한 것인데 그 설득 포인트는 상처였다. 과거를 잊고 모두 평화롭게 어기여차 하는 게 여러모로 좋은 건 맞는데, 내 가족이 반군에게 총 맞아 죽었다고 생각해보라. 그리 쉽게 용서해줄 순 없는 노릇이다. 아 그래, 사회적으로 평화를 찾고 안정이 되고 서로 협동하고 노력해서 발전하고 다 좋은데, 옛날에 우리집 털어갔던 옆 산의 저 반군 놈들은 용서할 수 없는 거다. 그 결과가 평화협정 부결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어쨌든 다시 국민들을 설득해서 평화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기는 한데, 여기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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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현상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옆 나라 일본 말이다. 아베 총리가 강한 일본이라는 모토를 내세우며 자위대를 전쟁할 수 있는 군대로 만들자는 움직임에 동조하는 국민들이 많다. 물론 그걸 반대하는 사람들 수도 만만치 않지만, 끊임없는 설득과 여론 만들기를 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거의 50% 넘는 지지율을 받으며 장기 집권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전쟁 가능한 일본'이라는 모토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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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미국 대선의 태풍 도널드 트럼프도 한 번 생각해보자. 상식적으로 보면 왜 그런 사람이 그렇게 많은 지지를 받으며 대선 후보 2인 중 한 명이 됐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분석이 있다.

    평소에 매너 교육을 받고, 사회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언행 규정이 있는 미국인들. 인종차별이라든가, 이민자를 향한 비난 같은 여러가지 혐오발언들, 일반적인 미국인이 아무데서나 그런 발언을 하면 사회적 비난 뿐만 아니라 잘 못하면 총 맞아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트럼프가 이걸 공개적으로 막 하는 거다. 여기서 평소에 하고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언행들에 대리만족을 느끼며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거라는 분석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트럼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시원하다고 느끼며 계속 지지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이루고 있을 거라는 분석이다. 물론 이건 증명되지 않은 추측이므로 맞는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상당히 그럴듯 한 분석 중 하나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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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몇 가지 있다. 인간은 항상 논리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똑똑한 개개인이 무리를 이루면 집단 광기에 휩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밖에서 보면 광기일지라도 집단의 논리에 휩싸인 사람들도 나름의 논리는 가지고 있다 등등. 애둘러 표현하지 말고 그냥 한 방에 와닿게 약간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옛날 히틀러에게 열광했던 독일인들 같은 거다.

     

    이 열광. 이 열정. 기업에서 왜 열정, 열정을 요구하는지 아는가. 단순하게 말자하면, 우리 회사가 뭔가 좀 잘 못하고 흠이 있더라도 덮어두고, 우리 회사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다라며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내 존재의 의미를 조직에 두어 조직의 가치를 우선시하여 저돌적으로 전진하는 돌격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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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에서 최근 xsfm 그것은 알기 싫다에 나온 에피소드 '195b. 아카기 토모히로의 노력의 결과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를 살짝 언급하겠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이 방송 때문이었다. 녹음파일에서는 아카기 토모히로의 '전쟁'을 후쿠시마 원전 '재앙'에 등치시키며, 비참한 재앙이 일어날 경우에도 제일 먼저 고통받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일단 이 비유가 옳으냐 그르냐라는 판단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두 상황의 결이 크게 다르다는 말을 하고싶다.

     

    지진이나 태풍, 화산 혹은 원전 폭발 같은 재앙은 전쟁과는 좀 다르다. 일단 대부분의 재난은 국지적이기 때문에 중앙 통치력이 계속 유지된다. 그리고 재난은 만들어내기도 힘들 뿐더러, 만들려고 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하지만 전쟁은, 예상하시다시피, 다르다. 앞의 여러 예들과 비슷하게, 대체로 전쟁은 사회적 문제다.

     

    전쟁, 혹은 사회적 사건들은 밀어주고 끌어주면 만들어낼 수 있다. 게다가 물리적인 피해나 이득을 벗어나 정신적인 어떤 것으로 똘똘 뭉치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광기 속에서 잘난 척 똑똑한 척 하는 이들을 집단으로 패대기 칠 수 있는 당당한 권리를 가질 수도 있다. 

     

    차라리 전쟁이나 나버려라고 말 하는 사람들도, 전쟁이 나면 자신의 비극이 끝나고 휘황찬란한 인생으로 바뀔 것을 기대하진 않을 거다. 더군다나 전쟁이 나도 저 윗대가리들은 어디 숨어서 잘 살아 남을 거라는 것도 잘 알 거라고 본다. 그렇다해도 한 가지 변하는 것이 있다. 소소한 비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쓰레기 봉지를 길거리에 내던져도 벌금이나 감옥을 가지 않을 정도의 쾌감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정도의 아드레날린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사회가 뒤집어질 정도의 변화가 오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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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은 대박에서 시작한 대북 정책이 개성공단 폐쇄, 대북 압박, 사드 도입, 급기야 이젠 전쟁에 준하는 충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언급까지 나오고 있다. 한반도에선 전쟁이 터무니 없는 환상이 아니다. 오히려 내일 당장 일어나도 별로 이상할 것 없는 곳이 바로 여기다. 이런 말들이 과연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정보가 있어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상단의 의도와 하부의 요구가 만나 광기로 폭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재앙은 어떻게 해서든 삶을 살아가고자 억척스럽게 노력하는 사람들에겐 힘든 상황일 수 있으나, 어차피 못 죽어서 산다는 입장의 사람들에겐 그리 큰 위협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쩔 수 없이 죽게 됨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런 이들에게는 죽을 확률이 낮은 재해들보다는 조금이라도 확률이 높은 더 큰 재앙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런 위험은 점점 더 커지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의 염원은 현실이 될 수도 있으니까. 사회를 극단적으로 바꾸는 것은 굳이 우주의 기운이 도입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p.s.
    끝맺음을 하지 못했다. 그냥 러프하게 스캐치를 해두자는 의도가 컸고, 차마 공개적으로 꺼내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고,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 한 것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사실 이쯤되니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되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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