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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 펀딩은 예약 구매가 아니고, 원금 손실 가능한 '투자'IT 2016. 12. 23. 18:14
최근 한 크라우드 펀딩 아이템에 관한 뉴스 기사가 나와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올해 초 인디고고라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올라오면서 크게 이슈가 됐던, '트라이튼 (혹은 트리톤 Triton)'이라는 것에 관한 기사다.
> [현장에서] 사기극으로 끝난 '인공아가미' (이데일리, 2016.12.22.)
최종적으로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라는 답변을 얻어 냈다는 것이다.
트라이톤 펀딩
'트라이톤'은 '인공 아가미'라는 컨셉으로 나왔다. 양쪽으로 뻗어있는 특수장치가 된 막대기를 통해 물 속에서 산소를 걸러내어 사람이 호흡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설명이었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는 테스트 장면이라 주장하는 동영상도 올라왔고, 제품 사진도 공개됐다.
이것 하나만 입에 물고 들어가면 물고기 처럼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는 설명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순식간에 90만 달러가 넘는 돈이 모였다. 국내외 언론에서도 이걸 보도했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지금 과학 기술로는 이런 걸 만들 수가 없으며, 설사 물에서 산소를 분리해낼 수 있다 해도 이런 조그만 장치로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했다. 국내에서도 '가능할 수도 있지'와 '불가능하다'는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트라이톤 측에서는 곧, "액화산소 실린더를 이용한다"라고 말을 조금 바꿨다. 그러자 후원자 중 1/3 정도가 빠져나갔는데, 그래도 반 이상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물론 액화산소를 사용한다는 말에도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액화산소는 다루기도 까다로우며, 지극히 위험한 물질로, 액화산소 실린더를 택배로 배송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앞서 소개한 기사가 나온 것이다. 결국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라는 말만 남았다.
사기일까 실패일까
투자자 입장에서는 사기나 실패나 비슷한 느낌이다. 어떻든 투자금을 날리거나 손해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법적인 문제에서는 두 상황이 많이 다르다.
애초에 돈을 모아서 떡 사먹을 생각만으로 거짓말을 했다면 분명 사기다.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여러가지로 시도했는데 도저히 불가능했다면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옹호를 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아직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으므로, 실패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실패라고 해도, 너무 터무니없는 것을 개발하려 했다는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리고 사기와 실패는 크게 다르다.
크라우드 펀딩은 예약 구매가 아닌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들이 있다. '킥스타터'와 '인디고고'다. 둘 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킥스타터 쪽은 어느 정도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이 있어야만 등록시켜 준다는 점에서 조금 더 엄격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둘 다 투자자가 낸 돈을 보호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은 똑같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이런 크라우드 펀딩에서 '돈을 내는 사람'은, 구매자나 소비자가 아니라 '투자자'라는 것이다. 즉, 신기한 물건을 '예약 구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품 제작을 위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주식 투자를 생각하면 된다. 투자가 훌륭한 제품이라는 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지만, 형편없는 제품이라는 손실로 돌아올 수도 있다. 물론 개발에 실패하면, 제품은 못 받고 돈은 그냥 날릴 수도 있다. 그리고 정당한(?) 실패는 사기라고 할 수 없다.
킥스타터나 인디고고는 얼리어답터를 위한 쇼핑몰이 아니라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다. '펀딩', 즉 투자하는 곳이다. 여기에 돈을 내는 것은 투자이므로 원금 손실은 투자자가 감안해야 할 요소다.
크라우드 펀딩 관련한 미국의 한 예
사기라고 짐작이 되더라도 이런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투자자 입장에선 딱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2015년 하반기에 미국에서는 상징적인 판결이 있었다.
2012년 9월에 '어사일럼 플레잉 카드(Asylum Playing Card)'라는 카드게임 프로젝트가 킥스타터에 올라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약 25,000달러 정도가 모금됐는데, 약속한 배송일이 지나도 물건도 안 오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러자 미국 워싱턴에 거주하는 후원자 31명이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모금자에게) 이들 각각에게 668달러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소비자보호법 위반으로 한 명당 1천 달러씩 해서 31,000달러의 벌금을 물렸으며, 국가 소송 비용 23,000달러도 물어내라고 했다. 모금을 한 당사자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모금자는 애초에 모금한 돈의 약 3배에 달하는 금액을 물어내야 했다.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판결도 있긴 있었다. 사건이 있은 후 판결까지 약 3년이 걸리기는 했지만.
> Court orders restitution, fines in first-ever victory against a delayed Kickstarter (Polygon)
이 건은 사기라고 단정짓기엔 좀 애매한 면도 있다. 물건을 받은 사람들도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냥 이런 사례도 있다는 정도로 알아두자.
> Asylum Playing Cards (킥스타터).
크라우드 펀딩은 '펀딩'이다
불성실한 모금자에 대해 응징을 한 저런 예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이런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의 투자자들은 소액 투자자라서 손해를 봐도 그냥 넘어간다. 소액 투자금을 소송으로 이어가기엔 개인 입장에서는 힘든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니까. 바로 그 점을 이용해서 사기를 치려고 작정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소액 투자자는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소액이라 하더라도 닭다리 한 조각 사 먹을 돈은 되니까.
국내 인터넷에서도 '크라우드 펀딩 사기'라거나, '킥스타터 사기', '인디고고 사기' 등으로 검색해보면 꽤 많은 글들이 나온다. 물론 그렇게 검색되어 나오는 사례들이 모두 진짜 사기에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크라우드 펀딩으로 손해를 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많은 프로젝트들이 성실하게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금을 하는 것이고, 그 의도에 동의해서 '실패해도 시도를 하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펀딩에 임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마치 '예약 구매 쇼핑몰' 정도로 알고 접근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눈에 띄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주위에 소개할 때는 주의사항도 함께 알려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이건 펀딩이고, 투자금을 모두 날릴 수도 있다"고 말이다.
p.s. 참고자료
* AG makes crowdfunded company pay for shady deal (Washington State Office of the Attorney General)
* 페이팔, 크라우드펀드 투자금 환불 안해준다.."악용 사례 많아" (조선비즈, 2016.05.09.)
* 물속에서 숨쉬는 ‘인공아가미’, 혁신인가 사기극인가 (블로터, 2016.04.04.)
* 'Scientifically impossible' underwater breathing device raises £580,000 online (The Telegraph, 2016.03.29.)
* Triton not. Dive, or dive not, there is no Triton. (DeepSeaNews, 2014.01.15.)
p.s. 덧붙임
다소 부정적인 분위기로 글을 쓰긴 했지만, 킥스타터, 인디고고 같은 류의 크라우드 펀딩은 있으면 좋다는 입장이다. 당연히 구경하다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들도 많고, 후원자나 개발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서비스다. 다만, 이걸 마치 쇼핑몰인 것 처럼 생각하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좀 안타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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