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역시 종말론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안 좋으면 말고.

 

사실 종말론은 거의 매년 있다. 인터넷 저 구석의 종말론까지 긁어모으면 거의 한 해에 수십 개의 종말론이 나온다. 물론 딱히 주목할만 한 건 거의 없다. 게다가 요즘은 종말론자들이 점점 성의가 없어진다. 예전엔 그래도 이런저런 사실들 갖다가 나열하며 논리의 비약을 하는 식이었는데, 요즘은 그냥 아무렇게나 짜맞춘다. 내가 지어내도 이것보단 잘 하겠다 싶다.

 

어쨌든 2017년 종말론 몇 개를 알아보자. 당연히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재미로 보고, 나중에 언론 같은 데서 이 비슷한 종말론이 나오면 피식하고 웃으면 된다.

 

(종말은 아름답구나, 이미지: geralt, CC0)

 

 

2017.01.01 그냥 멸망설

 

2012년에 소위 '마야 멸망설'이라며, 고대 마야인들이 멸망을 예언했다는 설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적이 있다. 물론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는데, 그 이전에 이 멸망설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마야인들은 멸망을 예언하지 않았다.

 

고대 마야 유적들을 종말론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이용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야 유적에 대해 깊이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그럴듯한 분석을 내놓으면 진짜인가보다 하고 믿었던 거고.

 

멸망한다고 예측했던 날이 되기 훨씬 이전에 이게 잘못됐다는 걸 써 놓았으니, 뒤늦게라도 참고할 사람들은 아래 글을 읽어보시라.

 

> 마야는 종말을 예언하지 않았다! - 마야 문명과 2012 지구 종말론에 관하여

 

어쨌든 2012년에 종말을 맞이하지 않자, 일부 사람들은 "해석이 틀렸다! 다시 해석하니 2017년 1월 1일 종말이다!"라고 어느 구석탱이에서 외쳤다. 그리고 2017년 1월 1일도 평화롭진 않았지만 최소한 멸망은 하지 않고 지나갔다. 인류는 이렇게 또 한 차례 고비를 넘겼다(?).

 

(태국의 마야 쇼핑몰. 이미지 찾기 귀찮다)

 

 

2017.08.21 개기일식 멸망설

 

2017년 8월 21일 오전에 미국 대륙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지르는 개기일식 현상이 예고되어 있다. 38년 만에 일어나는 일이고, 미국 서부에서 동부까지 4시간여에 걸쳐 진행된다. 이것 자체는 사실이다. 이미 몇 달 전부터 나사(NASA)에서 보도하기도 했고, 해당 지역 핫스팟들 호텔들도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개기일식 예상 지도. 이미지: NASA)

 

개기일식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이것저것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점성술로 해석하니 화성과 금성이 개기일식과 정대칭 삼각형을 이루어 우주의 기운이 증폭되는데, 마침 태양 흑점도 이상현상(은 아니지만)을 보이고, 지구 극점 이동으로 인한 자기장 이상과 맞물려 꽈광!

 

이 멸망설이 그나마 2017년엔 가장 주목을 받는 멸망설이다보니, 여기에다가 성경에 이미 예언이 돼 있다느니, 사실은 플래닛X가 일식에 관여를 해서 우주 에너지를 증폭시킨다느니 등등 막 갖다붙고 있는 중이다.

 

물론 개기일식으로 지구가 멸망할 것 같았으면 이미 오래전에 멸망하고도 남았을 거다. 뭔가 좀 더 흥미로운 단서들을 갖다 붙여줬으면 싶다. 정말 성의가 없다.

 

참고로, 이날 한국에서는 이걸 볼 수 없다. 한국에서 개기일식을 2035년에 볼 수 있다하니, 2035년 멸망설을 한 번 제기해보자.

 

 

2017년 10월 플래닛X 멸망설

 

옛날부터 태양계에 제 10행성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있었다. 지금은 명왕성이 왜소행성으로 분류되어 빠져버려서, 제 9행성 존재설이라 해야 한다. 어쨌든 태양계에 행성이 더 있을 거라는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 대체로 이 미지의 행성을 '행성X (planet X)'라고 부른다.

 

(제9행성은 과학적으로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이미지: 위키피디아)

 

그리고 고대 바빌론에 '니비루(Nibiru)'라는 행성에 대한 언급이 있다. 신화로 보고 있지만, 어쨌든 이걸 행성X와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둘을 따로 보기도 히지만).

 

따라서 대체로 행성X와 니비루는 같은 거라고 보면 되는데, 이 '행성X'가 지구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설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2017년 10월에도 이 니비루가 지구와 근접하면서 일식 현상을 보이면서, 행성이 일직선으로 나열하면서 이런저런 천체들과 역학관계를 이루어 지구에 영향을 줘서 태풍과 지진을 마구 일으킬 것이라는 설이 나왔다.

 

근데 사실 이 행성X는 이미 2012년 마야 멸망설에도 나왔던 거다. 심하게는 지구와 갑자기 가까워지면서 충돌할 거라는 말도 있었는데, 아마도 산타클로스 처럼 우리가 자고 있는 사이에 선물도 안 주고 지나간 모양이다.

 

니비루, 행성X 관련 설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고위층이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라고 하는데, 이런 것이 지구와 근접한다면 나사는 입을 닫을 수 있다 해도, 전 세계의 아마추어 천문학자들까지 일일이 다 입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소행성 같은 것이 지구와 충돌하게 된다면 아무리 늦어도 최소한 몇 주 전에는 관측할 수 있으니, 마음 놓고 넷플릭스나 보며 지구 종말을 감상하면 된다.

 

(2012년, 왜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이런 걸 설명해주는 곳은 나사 밖에 없더라. 영상 캡처)

 

 

2017 트럼프 멸망설

 

도널드 트럼프가 핵전쟁을 일으켜 멸망할 것이라는 설도 있다. 사람마다 다양한 근거를 늘어놓는데, 몇 가지 나열해보자면 이렇다.

 

- 성경에 예언되어 있다

-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 했다

- 트럼프와 푸틴을 보면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

-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기념으로 멸망할 것이다

- 2017~2020년은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때라서 리부팅 할 것이다

 

뭐 그냥, '멸망 할 것이기 때문에 멸망 할 것이다'라는 말이다.

 

혹자들은 트럼프니까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기도 하지만, 내가 만약 그 정도 부자라면 지구 멸망 안 시킬 거다. 있는 돈 다 쓰고 즐기지 뭐하러.

 

(미국 아틀란틱시티에 있다는 트럼프 타지마할. 타지마할이 무덤(영묘)이라는 건 알고 지었겠지. 이미지: 위키피디아)

 

기타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것들도 많이 있지만,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말로 옮기려니 너무 힘들어서 다른 건 다 생략한다. 아무쪼록 멸망설을 믿으려거든, 멸망하기 전에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고 나에게 재산을 좀 나눠주기 바란다.

 

 

p.s.

멸망하고는 별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2017년은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되는 해다. 혹자들은 100주년 기념으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허황된 종말론보다는 그냥 여기 가서 은총이나 받는 게 좋을 듯 하다.

 

> 2017년은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파티마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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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