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쯤, 동네에 신기한 기계가 생겼다. 캔과 페트병을 수거하는 기계인데, 하나하나 넣을 때마다 포인트가 쌓인다.

 

캔은 15P, 페트병은 10P.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고, 기계에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면 포인트가 쌓이는 방식이다. 그리고 2,000 포인트가 모이면 현금으로 입금해 준다 한다.

 

수퍼빈이라는 업체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네프론'이라는 이 기계는, 처음 생길 때만 해도 주민들이 생소하게 여겼지만, 이내 사용법을 터득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 시작했다. 딱히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지만, 돈이 걸려 있으니 알아서 잘 터득하는 듯 하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건 두어달 쯤 지나서부터였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런 기계가 생겼으니 전문적으로 캔과 페트병을 수거해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디서 모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마대자루 한 가득 캔과 페트를 모아와서 한꺼번에 왕창 기계에 투입했다.

 

하지만 이들이 문제인 걸까. 딱히 그렇지는 않다. 어디선가 버려진 캔과 페트를 모아왔다면 자원 정리를 한 셈 아닌가. 노력의 댓가로 약간의 돈을 얻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올해 초, 쓰레기 수거 문제가 터지면서 더이상 페트병은 고물상에서 받아주지 않게 됐다. 페트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다. 틈틈이 페트를 모아 고물상에 갖다 주면 몇 백원 받고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이젠 그냥 종량제 봉투 처럼 집 앞에 내놓아야 한다. 돈이 안 되니 주워가는 사람도 없다. 폐지 같은 건 집 앞에 내놓자마자 누군가 주워 가지만, 이제 페트병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 페트병을 넣으면 돈을 주는 기계가 생겼으니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만 했다.

 

 

 

문제는 이 기계가 인기를 얻으면서, 기계가 100% 꽉 차서 더이상 수거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돼 있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나도 최근에 몇 번 캔과 페트를 버리러 갔다가, 항상 공간이 없어서 더이상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만 보고 돌아왔다. 그러다보니 이제 이 기계로 가지 않게 됐다.

 

이것도 마대자루 한가득 캔과 페트를 담아오는 사람들의 잘못은 아니다. 기계가 꽉 찼으면 내용물을 수거해 가면 된다. 기계 설명을 보니, 중앙에서 빈 공간 체크를 할 수 있다 한다. 그렇다면 기계가 꽉 찼다는 걸 어디선가 보고 있을 거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동네 기계는 대략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수거 해 가더라. 내용물을 비워 간 날이면 사람들이 기계 앞에 줄을 섰다. 줄을 서서는 다른 사람에게 연락해서 기계 비었다고 또 불러내더라. 그렇게 기계는 비워지자마자 그날 바로 또 100% 꽉 찬 상태가 됐다.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말이다.

 

그러면 기계를 또 비우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더라. 기계를 자주 비우지 않는 대신, 최근에는 제한 규정이 생겼다. 1인이 한번에 50개만 투입 가능, 1인 1일 200개까지만 투입 가능이라고. 뭔가 좀 이상하다.  

 

 

기계를 처음 도입할 때 동대문구청의 보도자료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네프론 제공 업체에 따르면 많게는 한 달에 30만원의 수익을 내는 이용자도 있다"라고.

 

> 재활용도 인공지능 시대! 재활용 자판기 로봇 네프론 (동대문구)

 

광진구에서도 8월 경 이 기계를 도입한 듯 한데, 보도자료에 이런 내용이 있다. "시범운영 한 달 만에 최고 10만 원까지 적립한 주민도 나타났으며, 다른 지역에도 설치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만큼 반응이 뜨겁다".

 

> 광진구 인공지능 재활용 회수기 네프론 설치 (광진구)

 

지자체의 보도자료를 보면, 시민이 이 기계를 잘 활용해서 돈을 버는 것을 미담으로 여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빈 깡통이나 페트병 모아오는 사람이 무슨 잘못이 있나. 이왕 그런 것 모으겠다고 했다면, 많이 모이면 좋은 것 아닌가.

 

 

 

그런데 수거를 잘 해가지 않는다는 점이나, 일인당 투입 개수를 제한한 것을 보면, 이 기계의 설치 목적은 이런 폐품을 많이 모으는 것이 아닌 듯 하다.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좀 안타깝다. 애초에 목적을 명확히 하고 방향을 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이미 나 같은 사람들은 항상 가득 차서 투입이 안 되는 이 기계에 관심을 끈 상태고, 동네를 돌며 재활용품 수거를 한 사람들은 투입 제한이 생기는 바람에 열기가 식었을 테다.  

 

애초에 재활용품이 돈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학습용 기계로 목적을 정했다면, 1인당 투입 개수를 하루 10개 정도로 제한하고 운영해도 됐을 테다. 그러면 틈틈이 이용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겠지.

 

아니면 아예 재활용품 수집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하루에 한 번씩 재깍재깍 수거해가면 됐을 테다. 없는 쓰레기를 만들어 오지는 않을 테니, 수시로 그렇게 비워주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테다.

 

지금은 목적을 알 수 없는 애매한 운영에 대체 이게 뭘 할 목적으로 도입한 기계인가 의문만 남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소통'이라는 것이 꼭 구청장이 나와서 주민들과 대화를 해야만 하는게 아니라는 거다. 이런 기계를 도입할 때 목적을 명확히 밝히고, 그에 맞게 사용해주십사 부탁하고 또 그에 맞게 운영하는 것. 그게 바로 소통이다. 따라서 이런 자판기 같은 기계 한 두 개에서도 지자체는 주민과 소통이 안 되는 모습을 확연히 보이고 있다는 점이 갑갑하다는 거다. 그냥 오늘도 세상은 그렇게 대충대충 굴러간다고 여기면 되는 걸까.

 

 

p.s.

지자체에서 이 기계 도입을 홍보할 때, '인공지능'과 '4차산업'을 키워드로 넣더라. 그게 중요한 거라면... (생략)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