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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난 후에 동해 바다는국내여행/강원도 2020. 9. 19. 12:49
이곳에 도착한 날 비가 내렸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은 파도로 마을을 삼켰고, 11월과 닮았던 비는 영혼까지 아프게 때렸고, 마침내 태풍이 왔다.
세상 따위는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나홀로 그렇게 외쳐보아도 비바람에 소리는 메아리도 없이 스러질 뿐이었다.
바람 불면 날아가고, 비가 오면 씻겨가고, 태풍이 오면 쓸려가며, 그 속에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우산을 부여잡은들 무슨 소용이 있나.
아무도 볼 수 없는 세상의 끄트머리 어디에서 태풍을 온 몸으로 맞으며 흔들린 사람이 결국은 생의 한 가운데에 있었음을 너무 늦지 않게 깨달아야 했다.맑고 뜨거운 여름 하늘처럼 치솟던 분노는 태풍으로 쓸려나가 비바람에 침잠했다. 비로소 나는 실로 오랜만에 어둡고 평화롭고 광폭하고 고즈넉한 폭풍우의 밤을 맞이했다.
끝없이 희망을 갈구하는 사람은 섬으로 갔다.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조금이라도 더 희망을 바라며, 또 하나의 세상에서 새로운 출발을 바라며 섬으로 갔다.
세상을 버린 사람은 땅 끝으로 갔다. 대륙도 하나의 섬일 뿐인데, 그 섬 끝으로 몰린 내가 또 무슨 섬으로 간다는 말인가, 희망은 가슴에 묻어두고 조용히 세상의 끄트머리에 살자, 해서 끝으로 갔다.
그렇게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이별이라 했다.
태풍이 지나간 날 밤, 세상을 감시하는 충혈된 눈 처럼 붉은 달이 바다 위에서 껌뻑거렸다. 섬에서 육지로 오던 날 밤에 배 위에서 봤던, 바다로 오라고 유혹하던 바로 그 달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너의 그 덧없는 희망에 속지 않는다, 나는 이제 흔들리고 있지 않으니까.
이왕 여행을 한다면 폭풍우 몰아치는 날에 길을 떠나보자. 맑고 밝은 분노를 비바람이 씻어줄 것이다. 그렇게 한 판 굿을 하고나면 다시, 바람을 타고 어디로든 떠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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