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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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야하나요사진일기 2009. 10. 16. 03:07
벌써 털모자가 나왔네요. 그러고보니 밤 기온이 쌀쌀하다못해 춥기까지 하네요. 털모자를 보고서야, 아 춥구나라고 느꼈어요.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닌데 어째서 계절이 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을까요. 아마 이번 환절기엔 감기에 걸리지 않은 탓이겠죠. 감기는 안 와도 겨울은 오려나보네요. 언제부턴가 겨울이 점점 춥게 느껴졌어요. 해마다 겨울 온도는 상승하고 있다고 하는데, 몸이 허해서 그런가요. 그런 이유도 있긴 하겠네요. 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마도, 점점 차가워지는 사람들의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세월이 하 수상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려니, 그러려니 하고 넘겨요. 은근슬쩍 넘어가는 계절처럼, 그렇게 넘어가요. 이제 보라색 겨울이 오면 조금은 행복해 지려니, 그러려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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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또 마지막이니까사진일기 2009. 3. 1. 21:46
일상을 여행하다보면 가끔씩, 아니 자주,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거기로, 때로는 오랜 계획 끝에, 때로는 아주 느닷없이 짐을 꾸려 떠나야 할 때가 있다. 애초에 나에겐 선택권이란 건 주어지지 않았고, 좋든 싫든 상관없이 일은 벌어지고야 만다. 어떤 때는 운명처럼, 어떤 때는 운명을 빗나간 것 처럼. 그렇게 부랴부랴 짐을 싸고 떠날서는 또 한동안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 기를 쓰고 살아갈 때는 잠시 잊고 산다, 내가 한 때 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소식을 전해 듣거나, 아직 그 곳에 사는 지인을 만난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하늘의 구름 한 조각이 두 덩이로 갈라짐을 볼 때 즘, 아주 사소한 일을 계기로 문득, 지나는 바람에 그 곳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런 때가 있다, 길거리 떨어진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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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있는 그런 날엔사진일기 2009. 2. 3. 02:16
이봐, 이봐, 사는 게 답답하고, 짜증나고, 슬프고, 막막하고, 기운도 없고, 현기증이 날 정도라면 말야, 일단 먹자, 먹고 보는 거야. 이태원을 찾아갔어. 아랍 전통 과자와 터키식 디저트들이 잔뜩 놓여 있었어. 선뜻 집어 먹기 두려운 것들을 한 무더기 집어 봤지. 어차피 하루하루가 모험이잖아. 나를 스쳐간 사람들도 모두 각양각색의 맛들을 가지고 있었어. 때로는 쉽게 잊지 못해서 아직도 가끔씩 생각 날 정도로 달콤한 사람도 있었는가 하면, 가끔 떠오를 때마다 치를 떨게 만드는 쉰내 풀풀 풍기는 고약한 맛도 있었지. 그래, 그들을 생각하면 잘근잘근 씹는거야. 가끔은 그런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아 참, 너무너무 달콤한 맛도 사양. 그 아찔한 달콤함에 모든 입맛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주의. 밍숭맹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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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춤을 추고 싶다면사진일기 2009. 1. 21. 01:16
그들은 춤을 추었어. 초록빛 하얀색, 노랑빛 하얀색, 빨강빛 하얀색, 보랏빛 하얀색, 알록달록 하얀색 빛깔들을 반짝이며 곱게곱게 사뿐사뿐 발을 옮기며 하늘로 날아갈 듯 날아갈 듯 아스라이 옷자락을 휘날렸지. 그래 그들은 춤을 추고 있었어. 지난 밤 난 분명히 그들의 모습을 보았지. 그 중 누군가가 내게 손짓을 하기도 했어. 아, 나도 어울릴 수 있는 거구나.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움직였지.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어. 그래 그 곳은 내가 속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거든. '얼음이 깨 질까봐'라고 애써 변명을 늘어놓지만, 사실 그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 이미 알고 있잖아. 어쩌면 내일 다시 반복할 일상이 걱정되었는지도 모르지. 어쩌면 내일 입고 나가야 할 옷이 더럽혀질까봐 걱정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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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내린 눈은 돌아가지 않아사진일기 2009. 1. 19. 09:05
그는 혼자 산다. 퇴근 후에도 집에 가기 싫어서, 일부러 밤 늦게까지 길거리를 쏘다니다 들어가곤 했다. 이미 차갑게 굳어버린 찬밥을 억지로 목구멍에 밀어 넣듯 열쇠를 밀어넣고 문을 열면, 맨 먼저 그를 맞아 주는 것은 늘 똑같은 하루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자신의 미래같은 어둠이었다. 도마뱀의 피부처럼 차갑게 식은 방, 그는 마치 유령처럼 오가며 그 속에 또아리를 틀었다. 이미 오래전에 질려버린 인스턴트 음식들을 꾸역꾸역 삼켰으며, 마지막으로 빤 게 언젠지 알 수 없는 온갖 냄새가 뒤범벅이 된 이불을 꾸역꾸역 덮어 쌌으며, 내일 또 돌아올 똑같은 삶을 위해 꾸역꾸역 쓰러져 자기를 반복했다. 그런 날이 영원히, 아주 오랜동안, 마치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 반복되어, 산다는 건 그저 밥을 먹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