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포카라 마지막 저녁에
    잡다구리 2007. 7. 3. 13:33
    #1.
     
    내일 아침에 카트만두로 갈 거에요.
    에어컨 나오는 좋은 버스를 운행하는 두 회사가 경쟁중인데,
    '그린라인'과 '골든버스'이고, 각각 가격이 860, 650 이네요.
    골든버스는 아직 여행자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손님이 많이 없는 때면 이렇게 가격을 깎아 준다고 하는군요.
    버스도 둘 다 똑같은 버스고, 점심 제공하는 것도 똑같죠.
     
    그렇다면 그린라인 버스회사는 뭘 믿고 그렇게 높은 가격을 받을까요?
    (실제로는 860루피가 아니라 달러로 12달러를 받아요)
    이유는 단 하나, '론리 플래닛'에 소개되었기 때문이죠.
    론리 플래닛은 이제 싸고 좋은 곳을 소개한다기 보다는,
    바가지 쓰기 좋을 만한 숙소와 식당과 운송편을 만들고 있다고 봐야겠네요.
     
    실제로 여행 다니면서 론리 플래닛에 소개된 곳을 피해다니면,
    더 좋은 시설에 더 싼 가격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죠.
    재밌지 않나요? 가이드북과 가이드가 이제 거의 같은 개념이 돼 버린걸까요?
     
     
     
    #2.
     
    사랑콧을 올라갔다 걸어서 내려올 때였죠.
    산동네 아이들이 어디선가 몰려 나와 이런 말을 해요.
    '볼펜, 초컬릿, 커피, 머니?'
    달라는 소리죠.
     
    대개는 그냥 없다고 하면 순순히 멀어지지만,
    어떤 애들은 끈질기게 쫓아오면서 계속 뭔가를 요구하거나
    가이드 해 줄테니 돈 달라는 등의 말을 하기도 하죠.
     
    그것까지도 애교로 봐 줄 수 있어요,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열 살 즘 된 어린 여자애, 그런 것 달라고 말 하길래 없다고 했더니
    침을 탁 뱉고 지나가네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 느낌은. 복잡한 감정이었어요.
     
    그래요, 서글프죠. 한 때는 순수했을 그 아이들이 그렇게 변해 버린 것.
    우리가 산 타고 올라가며 내려오며 자기만족을 위한 값 싼 동정심에
    하나 둘 던져준 물건들이 걔네들을 버릇 나쁜 거지로 만들어 버렸어요.
     
    진정 얘네들을 생각하고 위한다면 단 한 푼도, 그 무엇도 공짜로는 절대로 주면 안 되겠어요.
     
    그렇게 마음 먹고 계속 발길을 옮겨 동네 어귀에 접어들었을 무렵,
    그 사건 때문에 기분이 아주 나빠져 있을 무렵 열 살 즘 된 남자애가 또 뭘 달라는군요.
    그래서 화가 났죠.
    '니가 거지니? 구걸하니까 좋아? 뭔가 얻으려면 일을 해!'
     
    그 말을 하고 열 걸음도 떼지 못해 후회했어요.
    마구 툭툭 던져주는 것 만큼이나 위선적인 말이었으니까요.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할지.
    다만 그 애가 내 말을 좋게 받아들여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이에요.
     
     
     
    #3.
     
    사실 인도인도 그렇고 네팔인도 그렇고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에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좋은 사람들도 꽤 많죠.
    하지만 우리가 다니는 곳은 거의 대부분 외국인들이 많이 오가는 관광지에요.
    아무래도 그 속에서 순수함을 유지하길 바라는 것은 우리만의 욕심이죠.
     
    오늘도 포카라 호수에서 배 값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20루피 때문에 말싸움하고 목청이 높아지고 얼굴 붉혔죠.
    나중에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상황엔 정말 화가 나거든요.
     
    그럴땐 시간을 두면서 차분히 마음 가라앉히며 한국을 생각해요.
    한국도 외국인들에게 많은 바가지를 씌우잖아요.
    물론, 한국인들 중에는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거에요.
    내국인들은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들만을 위한 바가지이니까요.
     
    한 번 즘 외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곳을 나가 보세요.
    그리고 일본인이나 중국인 행세를 한 번 해 보세요.
    선진국 문턱에 있다는 대한민국도 별 수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을거에요.
     
     
     
    #4.
     
    해외여행을 나오면 1달러, 1루피, 1바트 때문에 싸우는 일이 종종 있어요.
    1루피는 인도에선 20원, 네팔 1루피는 15원 정도 해요.
    태국의 1바트는 지금 한 30원 정도 하죠 아마.
     
    50 루피 해 봤자 한국 돈으로 따지면 천 원 정도일 뿐이죠.
    하지만 그것가지고 목청 높이고 감정 상해서 마구 싸워요.
    어떤 때는 10루피 때문에 이십 분 넘게 싸웠던 때도 있죠.
     
    여행 떠나온지 얼마 안 되는 분들이나 패키지 여행 온 분들은
    겨우 그것갖고 왜 싸우냐며 팁도 백 루피씩 턱턱 던져주죠.
     
    하지만 아시나요? 그런 행위가 다음 여행자들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따질건 따지고 정가는 정가대로 받게끔 싸워야 해요.
    그래야 한국인을 만만하게 보지 않는 거죠.
    정은 정이고 상도는 상도잖아요.
     
    여러분들이 기쁘게 던져준 팁 100루피로 인해서,
    팁을 안 주는 다음 여행자들을 푸대접하는 현지인 직원이 만들어지죠.
    돈 없는 사람들은 여행하기 힘들어지는 문화가 만들어져 버리는 거에요.
     
    적당한 시세와 월급 수준을 알기 전엔 섣불리 팁을 주지 말도록 해요.
    다음 여행자들을 위해서요. 현지인들보다는 한국인이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오십루피는 오십루피에요.
    천 원이 아니라 오십루피일 뿐이죠.
    1리터 짜리 미네랄 워터 3병을 살 수 있는 돈,
    현지인 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돈
    작은 병 콜라가 두 병, 사과가 세 개.
     
    여행 초기엔 어쩔수 없다 쳐도,
    여행하는 중에 계속 현지 돈의 가치를 한국돈으로 환산해서 따진다면
    돌아갈 때 즘 생각보다 많은 지출에 깜짝 놀라며 동남아 싸지 않더라
    라는 말을 하게 되겠죠.
     
    (저두 지금 50루피 아끼려고 2킬로미터 되는 길을 걸어 왔답니다, 인터넷 하러)
     
     
     
    #5.
     
    예전에는 '교통비 아껴서 좋은 숙소에 지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좀 안 좋은 기차나 버스를 타더라도 좋은 숙소에 묵으면서 피로를 풀면 된다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그 생각이 나날이 변해가고 있어요.
    지금은 좋은 숙소보다는 좋은 차를 타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죠.
    사실 여행의 피곤함은 이동중에 많이 생기고 쌓이죠.
    그래서 이동이 편하다면 굳이 좋은 숙소를 잡아 늘어져 쉴 필요도 없는 거죠.
     
    물론 좋은 숙소와 좋은 교통편만 선택해서 다닐 수 있는 재력이 된다면 금상첨화.
    저두 어쩌면 나이가 좀 더 들면 돈 좀 쓰더라도 좋게좋게 다니자라는 생각을 하게 될 지도 모르죠.
    아직은 돈 아끼며 다니는 여행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 그럴 수 없지만요.
     
     
     
    #6.
     
    여행은 끊임없는 질문인 것 같아요.
    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질문을 던진다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그래서 굳이 힘들게 짐을 지고 먼 길 떠나는 지도 모르죠.
    그리 즐겁진 않지만,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되네요.
     
    여자 혼자라서,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분들,
    일단 나와 보세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여행하는 분들도 굉장히 많으니까요.
    가만 있는 사람 부추기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걱정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분들은 걱정말고 나가라고 말 해 드리고 싶네요.
     
     
     
    p.s.
     
    이제 또 언제 다시 소식을 전하게 될 지 모르겠네요,
    생각보다 빨리 또 새로운 소식을 전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커서 말이죠. 언젠간 다시 보겠죠.
    모두들 행복하길 바래요.


    (20060719)

    '잡다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초호수, 다시 라사  (0) 2007.07.03
    라사, 티벳, 중국 그리고 한국인  (0) 2007.07.03
    네팔, 포카라에서  (0) 2007.07.03
    바라나시에서 마지막 날에  (0) 2007.07.03
    바라나시, 갠지스 강 가에서  (0) 2007.07.03

    댓글

Copyright EMPTYDREAM All rights reserved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