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 저 멀리 (인도여행) BLUE 4 0616
티베트보다 더욱 티베트 같은 곳, 맥그로드 간지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고, 달라이라마가 사는 곳. 원래는 영국인들의 휴양지였다가 큰 지진 이후 황폐해진 곳에 마을을 다시 만든 곳. 인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혀를 내두르는, 각종 호객행위와 사기, 속임수, 바가지 요금, 어이없는 무례한 행동들이 없는 곳.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긴데다가 음식까지 입맛에 맞아서, 인도 향신료의 강한 냄새에 질린 한국 여행자들이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있는 곳. 인도 속에 있는, 티베트보다 더 티베트 같은 곳. 그곳이 바로 맥그로드 간지에요.
어떤 여행자들은 이곳을 ‘다람살라’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다람살라는 산 아래 있는 마을이고, ‘맥그로드 간지’는 산 중턱 즘에 있는 마을이지요. 서로 가까이 붙어 있어서 얼마 안 되는 거리이긴 하지만 엄연히 다른 마을이에요.
우리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마침 달라이라마의 설법을 며칠 앞둔 상태라 곳곳에서 그 분의 말씀을 들으러 온 사람들로 마을이 북적였죠. 가이드 북에서 추천하는 유명한 숙소들은 이미 방이 꽉 찬 상태. 조그만 마을이라 숙소도 한정돼 있어서, 방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이 정도 성수기라면 숙소나 식당에 바가지 요금이 있을 법 한데도 그렇지 않은 것은, 소문에 따르자면, 달라이라마가 마을을 통치하며 지도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1950년 중국의 침공으로 나라를 빼앗긴 티베트 사람들은, 이제는 중국 땅이 되어버린 티베트 자치 지구에 아직 많이 살고 있어요. 그곳에서 티베트 고유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중국인으로 동화되는 것을 원치 않은 사람들은 네팔, 인도 등으로 넘어가 티베트 난민 캠프촌을 형성하고 살아가고 있지요. 그런 상황에서 이곳 맥그로드 간지는 현재 티베트 사람들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죠. 티베트인들에게 현존하는 신격 인물인 달라이라마가 머물고 있는 곳이니까요.
중국을 거쳐 인도로 여행해 온 많은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맥그로드 간지가 티베트보다 더욱 티베트 같다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그런 말을 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지만, 사실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아무리 점령을 당했어도 티베트의 옛 수도였고, 지금도 티베트 자치 지구에서 가장 큰 도시인 ‘라사 Lhasa’ 가 티베트 문화를 접하기는 더욱 좋은 곳이 아닌가 싶었죠. 하지만 나중에 라사에 직접 가 보고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어요.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거죠.
사실 맥그로드 간지에는 멋있는 사원도 없고, 예쁜 궁궐도 없어요. 애초부터 티베트인들이 살던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래된 티베트 문화유산 같은 것도 없지요. 그런 것들을 보기 원한다면 중국 티베트 자치 지구의 라사로 가야 해요. 맥그로드 간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웃고 있는 티베트인들과, 평화로운 마을 분위기지요. 여기서는 티베트인 거지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도 특이하지요. 물론 인도인 거지는 몇몇 있지만요.
맥그로드 간지의 길거리에서는 먹거리를 파는 티베트인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만두와 똑같이 생긴 모모와, 감자 빈대떡, 묵 등, 이름도 알 수 없는 어떤 신기한 것들이 많아요. 재미있는 것은 갖고 나온 것들이 다 팔리면 장사를 접고 들어간다는 거죠. 그래서 인기 있는 몇몇 먹거리들은 늦게 가면 맛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지요.
맥그로드 간지에서는 그렇게 여유롭게 웃으며 살아가는 티베트인들이, 네팔에서는 가방 가득 직접 만든 장신구들을 넣어 메고 다니며 여행자들을 붙잡지요. 그나마 거기까지만 해도 괜찮아요. 은근히 팔아 달라는 눈치는 보내 주지만, 엄연히 강요는 아니고 그래도 웃음을 보여 주거든요. 네팔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가면 티베트인들의 눈빛이 다르더군요. 구걸하는 사람들도 많고, 자기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으니 돈 달라고 하기도 하고, 돈 때문에 싸우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어요.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어쩌면 나라 잃은 국민들의 운명일 수도 있지요.
사실 맥그로드 간지의 티베트인들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은 이 좁은 마을에 갇혀 있는 것이 갑갑하기도 하겠죠. 매일 수많은 관광객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며, 그들도 가고 싶은 곳을 꿈꾸고 갖고 싶을 것을 갈망하겠지요. 그들 스스로 그런 말을 하기도 해요, 지금 이 곳 젊은이들의 가장 큰 인생 목표는 외국인을 만나 외국으로 떠나는 것이라구요. 망명 정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도에서 그들의 신분이 보장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될 수밖에 없을 테지요. 그래서 맥그로드 간지에서도 외국인을 꼬셔 보려는 젊은이들이 있어요. 이런 생각을 가지고 그들을 살펴보면, 하루 종일 특별한 일 하지 않고 무료하게 하루하루 보내는 모습들이 슬프게 보이기도 하지요. 새삼 내 나라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생각해보게 되죠.
티베트에 관한 얘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들려 드리기로 하지요. 어쨌든 맥그로드 간지에서는 티베트인과 인도인, 그리고 티베트 승려들과 이방인 여행자들이 뒤섞여 만들어지는 평화롭고도 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물론 멀리 보이는 설산을 바라보거나, 길거리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베란다 의자에 앉아 쉬어도 좋지요.
저에게 맥그로드 간지는 비와 함께 기억되는 마을이에요. 도착한 날부터 머무는 동안 거의 대부분 비가 내렸거든요. 말짱하게 맑은 날도 있었지만, 비가 잘 어울리는 마을이에요. 델리에서 무더위에 시달리다 와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여기는 비가 오면 색깔이 더욱 진해지는 그런 마을이었거든요.
인도를 갔다면, 그리고 델리에서 여유가 난다면, 맥그로드 간지를 꼭 한 번 찾아가보라고 권해 드리고 싶네요. 물론 뭔가 신기한 볼거리를 찾으시는 분들이 아니라, 지친 여정에 쉼표 하나가 필요한 휴식처를 원하는 분들이라면 말이죠.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바쁘게 옮겼던 발걸음을 잠시 쉬어가며, 여행의 여유로움을 다시금 즐길 수 있을 거에요. 오랜 여정에 지쳤다면 마치 고향에 찾아간 것 같은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죠. 언젠가 그 곳에서 만날 날이 있다면, 수많은 별들 속에서 밤새도록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보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