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마음으로만 벼르고 벼렀던 광주 비엔날레에 드디어 가 봤다.
일단은 가 봤다는 데 큰 의의를 두어도 되겠다.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 광천터미널에 도착했다.
U스퀘어라고도 하는 이 터미널은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왠만한 나라 공항 규모다.
기차보다 버스 노선이 발달한 호남쪽의 교통상황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광천터미널에서 시내버스 '상무64'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비엔날레 전시관이다.
알 수 있는데, 시간 간격이 너무 길어서 제대로 시간을 못 맞추면 무용지물.
나는 오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버스는 일단 포기하고 택시를 잡아 탔다.
비엔날레 행사장 입구쪽 마당에는 아기자기하게 여러가지 이벤트를 마련해 놓은 것 같은데,
관람객들은 이미 구경을 다 한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썰렁한 분위기. 평일이라 그럴지도.
초등학생들이 대 군단을 이뤄서는 앞마당에서 시끄럽게 막 뛰어 놀고 있길래 살짝 걱정했는데,
막상 전시장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행스러웠다.
단체 관람객들의 관람이 우선시 되는 분위기가 못마땅했지만,
어차피 단체 관람객들이야 한 작품에 오래 머물러 있지는 않으니까 대충 참을 만 했다.
비엔날레 홈페이지를 보니까, 이번 행사 초반에는
전시장 안에서 사진 못 찍도록 심하게 저지를 한 듯 했다.
게시판에 기념사진도 못 찍게 한다는 불만의 소리가 자주 보였다.
그런데 내가 갔을 때는, 이런 규제를 이미 완화해 놓은 상태였다.
최근 공공미술관의 추세는, '플레쉬나 삼각대만 사용하지 않으면 촬영을 허가한다'이다.
광주 비엔날레도 뒤늦게나마 그렇게 방침을 설정해 놓았다.
단, 제발 미술관에서 플레쉬는 좀 터뜨리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미술관 측에서 배려를 했으면 관람객 측에서도 주의를 기울여 주어야만 한다.
실수하지 않도록 입구에서 꼭 카메라 설정을 바꿔 주셨으면 싶다.
플레쉬를 터뜨리는 행위는 미술 작품에도 손상을 입히고, 다른 관람객들에게도 피해를 주니까.
광주 비엔날레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을 보면,
실망했다든가, 이해를 못 하겠다라든가, 공간 낭비다라는 등의 글들이 많이 보인다.
미술을 좀 아는 사람들은 뒤에서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나도 그런 느낌이었다.
그만큼 현대미술은 일반 관람객들에게 불친절하다.
마음껏 저질러 놓고는, 궁금하면 도슨트에게 물어봐라는 식이다.
일단 뭘 표현했는지 분간이 가야 호기심이 생기고, 그 다음에 깊이 이해하는 단계로 접어들텐데,
처음부터 이게 뭔지 (이해는 고사하고) 알아 볼 수 조차 없으니 관심이 생길 리가 없다.
피카소만 해도 그림을 좀 이상하게(?) 그리기는 했지만, 최소한 뭘 그렸는지는 알 수 있었지 않나.
대체 현대미술에 '소통'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다 내가 무지해서 그런 거겠지.
그나마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수시로 도슨트들이 관람객들을 모아 작품설명을 해 준다.
나는 초반에 살짝 끼었다가 금방 그 무리에서 이탈해 버렸지만.
아 글쎄, 왜 내가 관심이 가는 작품들은 그냥 지나치거나 간단한 소개만 하고 마는 거냐고! ;ㅁ;
그냥 혼자 휘휘 다니면서 내 눈길 끄는 작품들만 유심히 관찰했다.
그래도 명색이 비엔날레니까, 그 수 많은 작품들 중 내 주의를 확 잡아끄는 작품들이 몇몇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이스라엘에서 초록색 페인트를 들고 길을 걷는 비디오.
상징적인 의미나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보다는, 그걸 표현하는 수단이 관심이 갔다.
작가가 비디오를 촬영하면서 길을 걸으면, 그 루트가 다른 모니터의 지도에 표시가 되는 것.
이걸 다른 곳에서도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
다른 한 작품은 탁자 위에 무심히 놓인 듯 한 질문지에 눈이 꽂혔다.
'우리는 혁명을 끌어낼 수 있을까?'
과연... 가능할까?
비엔날레 전시관의 모든 전시실을 관람하는 데 약 세 시간이 걸렸다.
딱히 앉아 쉴 곳이 없었지만, 영상물을 상영하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쉬면서 관람 겸 휴식을 취하며 쉬엄쉬엄 구경했다.
쉬엄쉬엄이라고는 하지만, 관심 안 가는 작품들은 그냥 지나쳤기 때문에
세 시간이 그렇게 긴 관람시간은 아닌 듯 싶다.
휴식이야 그렇게 취하면 되는데,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두 시간 조금 넘게 관람을 하니까 눈이 따갑기 시작하더라는 것.
작품에 사용된 페인트 같은 물질들 때문인 듯 한데,
나중에 가실 분들이라면 중간중간 밖에서 휴식을 취하기를 권하고 싶다.
마지막 즘에 가서는 눈이 따가워서 아무것도 볼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사진으로 작품을 설명할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 사진들은 생략.
비엔날레 전시관 건물 전체에 작품을 전시 해 놓은 것도 모잘라서,
시립미술관의 한 개 전시실에도 작품들을 전시 해 놓았다.
비엔날레 전시관 밖으로 나와서 오 분 즘 걸어가면 시립미술관이 나온다.
시립미술관에 전시 된 작품 중에서도 하나 관심 가는 작품이 있었는데,
제목이 '꿈 속에서 만나다'였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미로같은 통로를 쭉 따라가는 건데,
여기서 처음으로 '아, 설치미술이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 거구나'라는 걸 느꼈다.
최근에 본 현대미술 중에서는 가장 인상깊은 작품.
바로 앞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통로를 더듬더듬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여자 분들은 무섭다며 되돌아 나오는 분들도 많았다.
그런데 혹시 가게 된다면 무서움을 꾹 참고 끝까지 가 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일행은 잠시 떼 놓고, 꼭 혼자, 아무 말 없이 가 보시기 바란다.
되도록이면 무섭다는 생각도 버리고.
시립미술관 쪽에 있는 직원들에게는 아직 비엔날레의 지침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듯 했다.
한 직원이 '작품 사진 촬영하지 마세요.'라고 말 하자, 근처에 있던 다른 직원이 와서
'비엔날레 측에서 사진 촬영 하는 거 놔 두라고 했데'라고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립미술관과 비엔날레 측의 운영방침이 서로 다른가보다. 이제는 저지 안 하겠지.
관람을 모두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세계벼룩시장'이라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는데...
뭐 그냥... (웃지요) ㅡㅅㅡ;;;
세계벼룩시장 행사장 앞에서는 한 아줌마(?)가 대형 비누방울을 연신 만들어 내고 있는데,
아이들은 신 나서 폴짝폴짝 뛰고... 팔리지는 않고... ;ㅁ;
대강 그런 분위기. ㅡㅅㅡ;
이렇게 처음으로 가 본 광주 비엔날레 관람이 끝 났다.
이번 행사는 단순히 '연례보고'라는 제목으로, 주제가 없다는 특징이 있는데,
어쩌면 그래서 관람자들이 작품들을 보고 즐기기 더욱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다.
내 나름대로 전체적인 주제를 정해 보자면 '문제제기'랄까.
대부분의 작품들이 세상과 사회와 사람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내 짧은 지식으로 비엔날레는 주제나 작가에 대한 깊이 파고드는 것 보다는
최근 트렌드 (유행, 동향)이 어떤 건지 파악하는 행사라고 알고 있는데,
어째서 오래 전에 제작된 작품들이 그렇게 많이 전시 돼 있는 건가 라는 것.
내가 비엔날레라는 것을 잘 못 알고 있는 건가...?
어쨌든 이번 광주 비엔날레는 '비엔날레 행사장'과 '시립미술관' 외에도
의재미술관, 광주극장, 대인시장 등에서도 행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의재미술관은 산 위에 있어서 셔틀버스를 타고 가도 좀 걸어 올라가야 하는 듯 했고,
광주극장은 평일에는 행사가 없는 듯 했고, 대인시장은 그냥 가서 구경하면 되는 체계.
모두 비엔날레 행사장에서 셔틀버스가 다니긴 하는데, 그리 자주 운행 하지는 않는다.
내 경우엔, 의재미술관은 이미 마칠 시간(오후 6시)이 다 되어서 포기,
광주극장은 평일에 진행되는 행사가 없어서 포기,
대인시장도 해 질 시간이 돼서 포기. OTL
아무래도 이번 광주 비엔날레를 제대로 즐기려면,
주말에 오전부터 일찌감치 가서 돌아다녀야 할 듯 하다.
다른 지역에서 가는 사람들에겐 거의 불가능 한 이야기.
그냥 마음 비우고 비엔날레 전시관만 제대로 구경 하심이 좋을 듯.
p.s.
그래서 결론은,
도슨트 없이도 이해 되는 작품들을 좀 보고 싶다는 거!!!
p.s.2
자, 이제 부산 비엔날레를 가 보는 거다~! (조만간~ 커밍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