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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뱅이라고 기 죽지 마라, 영화 '아마추어의 반란'
    웹툰일기/2009 2009. 9. 7. 02:35


    어릴 때부터 지지리도 가난한 집에서 궁상스런 생활을 했던 나.
    이사는 원래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건 줄로만 알았던 나.
    우리 부모님은 원래 산동네만 좋아하는 줄 알았던 나.

    하지만 국민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세상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나보다 더 좋은 반찬과, 더 좋은 책가방과, 더 좋은 학용품을 들고 다니며,
    우리집보다 훨씬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있는 녀석이 서류상으로 할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다고 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다는 것에서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기엔 좀 어린 나이지만
    어쨌든 그런 느낌을 느꼈)다.

    어느날 친구 한 놈이 장난스럽게 반장선거에 출마했는데,
    아 글쎄 이 녀석이 앞에서 말을 너무 잘 하는거라.
    그래서 거의 몰표로 이 녀석이 반장으로 뽑혔는데,
    나중에 교무실에 불려가더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냥 사퇴선언.
    결국 몇 년 연속 반장하던 놈이 또 반장 하더군.

    촌지 줄 형편 안 되면 학부모 모임 따위는 안 나가는 게 예의라며
    내 학창시절 때 단 한 번도 학교에 온 적 없는 우리 엄마.
    그 이유를 초딩 3학년 즘 돼서 이미 깨달아버린 나. 

    그래 그런건 다 그렇다 치자, 그까짓 학교 따위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근데 그 어린 나이에 도무지 이해가 안 됐던 건 바로 이거였다.
    '가게에는 먹을 게 잔뜩 쌓여 있는데, 난 왜 점심밥을 굶어야 하는 걸까.'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없으니까.
    헌데 점심 못 먹으면서 별로 할 게 없었던 나는 그런 생각을 혼자 또 골돌히 했던 거다.
    왜 나는 돈이 없을까, 엄마가 돈이 없으니까, 왜 엄마는 돈이 없을까,
    돈을 못 버니까, 왜 돈을 못 벌까, 노는 것도 아닌데. 밤 새도록 바느질 한다고
    나는 잠도 못 자게 만들면서 왜 돈은 항상 없는 걸까.

    이런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지고 중학교에 진학했더랬다.



    중학교에서 국민윤리였나, 그런 과목에서 '공산주의'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설명 따윈 거의 없고, 그냥 단지 언급되어 있는 것 뿐이었다.

    그 때 당시 열렬한 전두환 추종자였던 이머병 윤리 선생은
    '공산주의'를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공산주의란 한 마디로, 다 같이 못 먹고 못 살자라는 거다. 알것나!"

    그 가르침을 나는 이렇게 받아 들였다.
    '그래,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지 못 할 바에야,
     다 같이 못 먹고 못 사는 게 맞는 거잖아. 공산주의 괜찮은 거네!'

    그 후에 나는 그런 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고,
    고등학교 때는 급기야 어두컴컴한 시립도서관에서
    이해도 못 하는 자본론을 혼자 끙끙대며 읽을 정도가 됐던 거다.

    뭐, 그 이후로는 추측 가능 하시리라.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대학 말년(?) 즘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나 혼자, 혹은 뜻이 같은 사람 몇몇이 모여서 이지랄 해 봤자
    세상은 딱히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세상은 거대하고, 엉성한 듯 보이면서도 단단하기 때문에,
    거시적인 시각으로 아무리 아무리 애국 해 봤자 소용이 없었던 거다.

    아마 그 때 이런 사람의 소식을 접했더라면 내 인생도 많이 바뀌었을 듯 싶다.

    가난이 죄가 아니라는 허황된 메아리 속에서 죄인처럼 살아가는 가난뱅이들의,
    언젠가는 성공해서 한 방에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을 거라는 허황된 개인주의적 생각과,
    세상은 아무리해도 변하지 않고 우리가 할 일은 없다라는 패배주의같은 것들.

    그런 것들에 굴하지 않고, 정치가 어떻고, 사회가 어떻게 하는 거대 담론을
    펼치지 않아도, 일상에서 나 혼자서라도 할 수 있는 활동들이 있다는 것을
    그 때 당시 힌트라도 알게 되었더라면 나도 어쩌면 기인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영화 '아마추어의 반란'은 내게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 준 영화였다.
    가난뱅이들의 유쾌하면서도 기괴한(?) 반란을 한 번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시라.
    어쩌면 당신도 나처럼 '아, 저런 방법이 있었군!'이라며 무릎을 탁 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머릿속에 박히면, 지금은 당장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언젠가는 우리도 이런 행동을, 혹은 이보다 더 진보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마쓰모토 하지메'씨는 이미
    올해 초에 책도 써 냈다. 국내에도 이미 번역판이 나왔는데,
    책 제목은 '가난뱅이의 역습'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 책의 일부분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p.s.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 인디스페이스에서는 '청춘불패'라는 큰 제목으로
    '가난뱅이의 역습'과 '조난 프리타'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특히, 9월 9일 수요일에는 '조난 프리타' 상영 후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님과 토크쇼가 있고,

    9월 23일 수요일에는 '아마추어의 반란' 상영 후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님과의 토크쇼가 있다.

    토크쇼에 앞서서 고민을 댓글로 올리면 추첨해서 영화표를 공짜로 주는
    이벤트도 하고 있으니 참여해 보는 건 어떨까.
    (아 이런 공짜광고는 이제 웬만하면 안 하려 했건만... ;ㅁ;)

    자세한 내용은 이 링크를 참고하시라;  인디스페이스: 청춘불패

    이 영화들은 일부 지방도시에서도 상영한다고 하니,
    지방 사시는 분들도 일단 포기하지 마시고 가까운 곳을 찾아 보시라.

    청춘불패 지역상영회 링크

    자, 영화 보고 나서 우리도 혁명을 준비해 보자. ㅡㅅ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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