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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스트릭트9 - 외계인이 지구에 착륙하지 않는 이유
    웹툰일기/2009 2009. 11. 2. 19:51



    인간은 어쩌면 본디 악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권익을 챙기려 애쓰고, 이 세상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존이 우선이고, 나보다 못한 것들은 최대한 이용해먹고 밟고, 상대방에게 뭐 얻어먹을 건덕지가 있으면 잘 해 주지만 아무것도 없으면 무시하고 모욕하고.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면 갈 수록 성선설을 부정하고, 성악설을 믿게 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런지도 모른다.

    '디스트릭트 9'에 나온 인간 군상들이 낯설어 보이지 않는 것은, 실제 삶을 살면서 그런 류의 인간들을 많이 봐 왔기 때문일테다. 애초에 외계인들이 금은보화를 많이 갖고 있었다든지, 인류가 뭔가 얻어먹을 건덕지들을 잘 포장해서 내 놓았다면, 인간들은 외계인들을 그렇게 대접하지 않았을테지. 뭔가 얻어먹을 게 있다면 앞에서 헤헤거리고 비굴할 정도로 굽신굽신 하는 것이 대부분 인간들의 유형 아닌가.

    공교롭게도 이 외계인들은 인간세상에 적응하지도 못 하고, 뭔가 교활한 협상을 할 줄도 모르고, 인간들이 혹할 정도의 어떤 것을 제시하지도 못 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들을 밟는다. 권력은 이들을 이용해 먹고, 권력이 아닌 인간들도 이들을 비난하며 이용해 먹는다. 가난한 자들의 적은 가난한 자들이라는 말이 여기서도 적용된다. 이 사회에 당당하게 어깨 펴고 다닐 수 없는 자들이 주로 크게 상처받는 상대는, 똑같은 부류의 인간들이니까. 인간들은 조금이라도 자기보다 못 해 보이는 자들을 비웃고 멸시하면서 자신은 그들보다 낫다는 우월감을 느끼며 안도감을 느끼니까.

    참 추악하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인간이라 외계인들의 외모가 추하게 보이긴 한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인간들이 외계인들보다 몇 배는 더 추악하다. 정말 눈 뜨고 봐 줄 수 없을 정도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닥쳐오면, 참으로 이기적이게도, 자신이 그토록 멸시했던 그들 속으로 들어간다.

    평소에 길 가로막고 차 못 가게 하면서 데모 하는 것들은 다 잡아 쳐 넣어야 되 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자신에게 억울한 일이 생기면 그런 단체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과 똑같다. 왜 처음부터 인간적으로 대해 주지 않았나, 왜 처음부터 이해해 주지 않았나, 왜 처음부터 자신도 그 입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왜 처음부터 상대의 생존권도 중요한 것이라고 존중해 주지 않았나. 인간은 역시 자기 자신이 급해져야 그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는,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이고도 하찮은 존재일 수 밖에 없나보다.

    인간이 원래 그래 하면서 그딴 것 난 몰라, 나하고 상관 없어 하고는 그냥 또 넘어가겠지. 외계인 생존권보다 인간 생존권이 중요하다 하겠지. 외계인 도와줄 힘 있으면 인간이나 먼저 도우라고 하겠지. 그들이 어찌되건, 어쨌든간에 난 외계인이 아니니까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 하겠지. 자신도 그 외계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않겠지.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그렇게 되면 그냥 죽지 뭐, 그리 생각 하며 살아가겠지.

    하지만 사람 앞 일 어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고,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만도 않으며, 그 상황이 오면 또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지게 될 지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노릇. 그러니까 지구인이든 외계인이든, 최소한 사람 인 자가 붙은 이상, 그 어떤 계산과 논리와 생각들에 앞서, 생존 할 권리는 있다는 거다. 그 아무도, 그 누구도, 어떤 이유에서건, 어떤 상황에서건, 인간이 인간에게 왜 살아가느냐라는 질문을 던질 수는 없다. 살아가는 이유따위 전혀 모르더라도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이 인간이고, 생명체니까.

    가난하다고 무시하는 자들을 수없이 많이 만났다. 별 것 없다고 밟는 자들도 수없이 많이 만났다. 이제는 그런 인간말종들을 걸러낼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의연하게 대처하지만, 그런 인간들 때문에 상처도 받이 받았더랬다. 그럴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 있다, 제발 기본만 지키자. 제발 상식대로만 하자. 제발 상처주지 말자.

    법률이 아주 잘 정비되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는 그런 세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공권력이 아주 공정하게 적용되어 그들을 믿고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좀 더 잘 사는 세상이라든가, 좀 더 발전한 세상이라든가, 좀 더 먹고살기 편한 세상 따위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미숙하고, 어리석고, 좀 불합리해도, 상식이 통하는 세상, 기본이 지켜지는 세상, 노력하면 최소한 먹고 사는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 거다.

    그래 나는 외계인이다. 짐승같은 외계인이다. 마음껏 비웃고, 마음껏 밟아라. 그런데 인간인 당신, 인간답게 살고 있는 당신에게 한 가지 묻고싶은 게 있다. 당신은 천수를 누리며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 고결한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고 정말로 확신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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