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9월 30일부터 11월 2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 City_net Asia 2009' 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회는 격년제로 열리는 프로젝트로,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했다. 서구 중심의 미술무대로 점철된 현 상황에 아시아의 현대미술을 소개하고 위상을 확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된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는 서울 시립미술관, 이스탄불 현대미술관, 동경 모리미술관, 북경 금일미술관의 4개 도시가 참여해서 젊은 현대미술가들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선보였다. 작품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천 원도 안 되는 저렴한 입장료로 아시아 각국의 현대미술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각 미술관별로 큐레이터들이 나름의 주제를 가지고 작품들을 선정해서 전시를 했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해드셋을 무료로 대여해주었다. 하지만 난 그런 것 그다지 관심 없다. 잘 설정한 주제라면 별 설명 없어도 와 닿겠지. 그리고 해드셋은 딱 귀찮아.
역시 현대미술 전시회다. 알 수 없는 것들이 잔뜩잔뜩 무지무지 엉키고 설켜 있다.
그래도 젊은 작가들이라 그런 건지, 대중들에게 보이려고 난이도를 낮춘 건지,
그나마 무난하다 싶은 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어떤 작품들은, 특히 일본 같은 경우는, 전혀 현대미술같아 보이지 않는 작품들도 많았다.
하긴 음악이든 미술이든 장르에 너무 집착하면,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바라보는 격이 되기 쉽다.
현대미술이건 아니건 그게 무슨 상관.
흔히들 현대미술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 한다. 당연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현대미술 작품들은 그 작가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주제로 작업을 했는지 내역들을 좀 알아야만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 보면 소통의 일환이다.
내가 작가를 알고, 작가가 화두를 던지고, 그에 대한 물음이나 답변을
작품을 통해 내 스스로 얻어가는 과정.
아주 이상적이고도 예술적인 소통이다.
그런데 이 바쁜 세상에, 넘쳐나는 정보에, 서로 알아달라고 외치는 마당에,
작품 하나 보자고 너를 연구해? 니가 뭔데, 난 고흐같은 유명한 작가들 일생과
세계관을 알기도 벅차단 말야. 게다가 난 큐레이터도 아니라구. 뭘 바래!
그래서 현대미술은 어렵다. 아무리 봐도 이해도 안 된다.
어떤 것은 끔찍하고, 어떤 것은 지저분하고, 어떤 것은 애들 장난같다.
대체 현대미술을 한다는 사람들은 뭐 하는 작자들인지 알 수가 없다.
헌데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자.
예술은 과학도 아니고, 공부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다.
즉 굳이 '이해' 할 필요가 없다.
과학을 절대진리로 여기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사회학도 사회과학, 인문학도 인문과학, 미술도 미술과학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게, 미술이라는 게 어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인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쪽에 더 가까운 것 아닌가.
그렇다면 왜 이해하려고 애쓰는 거지?
혹시, 현대미술을 보고 '난 이렇게 이해했어'라고 말 할 정도가 되면...
"교양 있어 보이는 사람이라는 증거니까요?"
미술 전문가가 되고 싶거나, 큐레이터가 되고 싶거나, 잘난 척을 하고 싶거나 한 게 아니라면,
이해따위 할 필요 없다.
딱 보고 나하고 코드가 맞는 작품을 만났다면, 거기에 집중해서 즐기면 되는 거다.
그냥 아름답다고만 느껴도 되는 거고, 내 상황에서 이렇게 활용해도 좋겠다 생각해도 좋은 거고.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작품들을 볼 수 밖에 없는데,
일종의 탐색이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내 코드에 맞는 작품을 찾아내기 위한 탐색의 과정.
때로는 사람들이 '그게 뭐가 좋다고 난리냐'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그런 걸 무슨 재미로 보러 가느냐고 말 하기도 하고,
정말 할 일 없다고 욕 하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테다.
뭐 어때, 내 맘이지.
내 느낌을 다른 사람들이 몰라준다 하더라도,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니까.
내 감정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찮고 무의미한 것은 아니니까.
뭐 어때, 내 인생에 나만의 작은 의미를 하나 즘 더 채워넣자는 건데.
그러니까 미술관은, 특히 현대미술 전시회는 혼자 가는 것이 좋다.
괜히 친구나 애인과 함께 갔다면, 제대로 구경도 못 하고 나올 확률이 높으니까.
아무래도 함께 간 사람이 지루해하거나, 관심 없이 설렁설렁하고 있으면
내 쪽에서도 신경이 쓰여서 제대로 작품들을 못 보고 지나칠 수 있으니까.
특히 그게 내가 가자고 해서 갔을 경우, 상황은 아주 안 좋아질 수 있다.
'뭐냐 이건, 왜 나를 이런 데 끌고 왔어?' 라는 무언의 압력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미술관은 혼자 가자.
아무 일 없었던 어느날 오후, 아무 일 없이 거리를 걷다가, 혹은 버스로 어디론가 가다가 문득,
미술관이나 가 볼까 하며 뒷산 언덕 마실나가듯 휑하니 다녀오자.
아무 기대도 없이, 계획도 없이, 준비도 없이, 머리를 비우고.
그러다가 운 좋으면 어느 미술관 한쪽 구석에서 나를 향해 한 줄기 빛을 내뿜고 있는,
나만의 의미로, 나만의 감각으로, 나만의 코드로 느낌이 오는 작품 하나를 만날 수 있을 테다.
그것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진 못한다 할 지라도,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할 지라도,
이 무미건조한 인생에 한 줄기 소나기가 되어 줄 수는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미술관을 갈 때는 머리는 비우고, 마음을 열자.
미로같은 전시관 어느 귀퉁이에서 반가운 옛 친구같은 작품이 불쑥 얼굴을 내밀지도 모르니까.
p.s.
안타깝게도 이 전시회는 이미 끝났어요.
일찍 알려 드리려고 했지만, 짐작하시듯이 귀찮아서... ㅡㅅㅡ;
하지만 이런 전시회는 잘 찾아보면 여기저기 많이 열리니까,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기회는 많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