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이고 무뚝뚝한 기술에 감각적인 감성을 덧칠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적 있으신 분들이 가 보면 좋을 행사가 있다.
올해 5회 째를 맞이한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는
시청역 근처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데,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은 관람료가 무료라는 것.
서울 근방에서 평소에 현대미술은 관람료가 아까워서 못 보겠다고 생각하셨던 분들,
이번 기회에 차비만 들여서 쉬엄쉬엄 구경 가 보시는 것도 좋겠다.
총 3개 층에 걸쳐 여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층별로 '빛, 소통, 시간'이라는 주제를 가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별로 더 깊은 주제들을 내포한 것들도 있지만,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가볍게 '이런 것도 있구나'하며 보아도 무리 없다.
막상 가서 작품들을 실제로 보기 전 까지는 나도 미디어아트가 뭘까라는 의문을 가졌는데,
가서 보면 '아, (대충) 이런 거구나'라는 감을 잡을 수 있다.
이것도 미술인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도구들을 이용한 다양한 표현 방법들.
현대미술이 대개 다 그렇긴 하지만,
미술은 꼭 붓과 종이로 해야 한다라는 인식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듯.
어쩌면 이 미디어아트라는 것은, 공학도들도 접근할 수 있는 아트 분야가 아닐까 싶다.
평소 밥 벌이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던 기술과 매체들에게 감정과 의미를 불어넣으면
그게 바로 아트가 되는 형태이니까.
이 전시회에서는 주로 전자, 전기, 기계 관련 기술들이 선보였는데
(...라고 쓰니까 미술 전시회가 아니라 기술 전시회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전산 분야 쪽도 이런 쪽으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을 듯 싶다.
포토샵을 이용한 그림 그리니나, 3D 툴을 이용한 에니메이션 만드는 그런 것 말고,
뭔가 좀 더 다양하고도 참신한 감각의 표현 방법들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그런 쪽으로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 가서 구경하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란다.
함께 교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면 좋겠다.
앉으면 바닥에 예쁜 불빛이 나오는 '생각하게 할 수 있게 하는 돌'이랄까.
사람의 호흡을 감지하는 특수한 의자. 호흡이 강하면 글자가 진하게 써 지는 등의 기능.
중요한 건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아야 문장 전체가 예쁘게 잘 써 진다는 것.
그런 의미의 소통.
각각 따로 나오는 서로 다른 두 장면. 두 영상이 화면 하나에 모아져서
혼자만의 의미 없는 행동들이 두 사람이 서로 교감하는 화면이 되는 형태.
미디어아트라는 타이틀을 내 걸어서인지, 역시 화면으로 뭔가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았다.
대개 이런 전시회에서 상영하는 작품들은 중간부터 보게 되거나, 시간이 없거나, 재미가 없거나,
너무 심오하거나 해서 조금 보다가 외면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전시에서는 영상의 내용 자체보다는 표현 방식 때문에 발길을 잡는 영상들이 많았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긴 한데, 이런 작품들을 보면서 든 생각은,
아, 미디어아트를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겠구나. ㅡㅅㅡ;;;
3층 복도에 전시된 나비 관련 작품 (제목을 까먹었다)은 이 전시회에서 볼 만 한 작품들 중 하나.
복도 여기저기에 터치스크린이 놓여 있는데, 그것으로 나비를 모을 수도 있고 흩어버릴 수도 있고.
그 모두와 연관된 저 두 사람의 형상. 두 사람 사이에서 노니는 나비들. 그리고 흐트러짐.
딱히 뭐라 말 할 수는 없지만 마냥 아련한 느낌이랄까.
주로 '빛'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많아서인지, 전시회 자체가 어두운 편이었고,
그래서 좀 음침하다든지 무겁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또 표현도구들이 첨단기계들이 많아서
신기한 전자, 기계 기술들의 전시회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별 의미 없는 기술들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것.
마치 의미 없는 글자들을 끼워 맞추어 감각을 표현하듯이,
의미 없는 점들을 잘 조합해 놓으면 모니터 상의 의미 있는 그림이 되듯이.
아, 나도 컴퓨터로 그림 그리기나, 렌더링 하는 것 말고 뭔가 예술적인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뭔가 알 듯 모를 듯 한 생각들이 머릿 속을 나비처럼 날아다니게 만든 전시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