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때가 있다. 어느날 문득, '아, 거기 가 봐야지'라는 생각이 들 때.
누가 오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꼭 가 봐야 할 곳도 아니고,
간다고 특별히 반겨주지도 않고, 안 간다고 인생에 지장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그냥 문득 생각나서는 가 보기 전까지는 밤에 잠도 안 오는, 그런 때가 있다.
(일명 오타쿠 병 OTL)
 
그래서 비가 올 듯 말 듯, 음산한 날씨가 마치 검은 고양이의 털처럼 엉겨 붙을 때,
집에 딱 들어앉아서 허리나 지지고 있기 딱 좋을 때에 애써 홍대로 나갔다. 
홍대 근처의 나오키 씨가 운영하는 델 문도라는 카페에 가 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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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나오는 저 분홍빛의 예쁜 카페는 나오키 씨의 다방이 아니다.
델 문도는 저 카페 옆쪽의 어두컴컴한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아아... 저런 예쁜 카페를 두고 어둠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야 하다니... ㅡㅅ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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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 문도 입구 모습. 상당히 나오키 씨 스럽다는 인상이 풍긴다.
대체 알고 가지 않는 이상, 이 위치에, 저런 입구로 어떻게 손님을 끌 수 있을까. ;ㅁ;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왠만해선 찾을 수 없는 위치에, 왠만해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입구 모습 때문에
그냥 돌아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저렇게 카페를 차렸으면 아마 벌써 망했을 듯...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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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델문도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카페 제작 비화를 엿볼 수 있다.
페인트 칠하다가 다 떨어져서 외벽은 못 칠했다든지 하는 그런 내용들... ㅡ.ㅡ;
 
무엇보다 이 카페의 문제(독특함?)는 '담배를 필 수 없다는 것'과 '커피를 팔지 않는다는 것'.
난 커피를 마시지 않으니까 어쩐지 공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ㅡㅅㅡa
 
이 문 앞에서 마지막으로 담배 한 대를 피고 들어가려 했는데, 사실 여기서 좀 망설였다.
대개 이런 조그마한 카페는 혼자 가면 뻘쭘하기 마련이라,
이런 갈등을 속으로 하고 있었다.
'꼭 들어가봐야 하나?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카페도 많잖아? 여기 오려고 온 거잖아...'
 
제일 문제는 혼자 들어가면 너무 뻘쭘할 것 같다는 거였고,
그 다음 문제는 왠지 혼자 들어가면 오타쿠로 취급 받을 것 같다는 것. ;ㅁ;
 
어쨌든 갈등을 뿌리치고 용기내어 씩씩하게 들어가서는 구석자리에 턱하니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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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들어가서 앉으니까 일단 마음이 진정되면서,
밖에서 걱정하던 것들이 모두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OTL
얼마 없는 손님들 속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뻘쭘도 수치가 높아지고 있던 것. ㅡㅅㅡ;
 
나오키 씨는 델 문도라는 카페를 '다방' 분위기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오키 씨가 생각하는 다방은 어떤 건지 몰라도, 내가 생각하는 다방은 우리나라 전통(?) 다방이다.
주로 터미널 근처나 읍내 구석자리 즘에 위치해서, 연인들이 가서 수상한 짓을 하거나,
간혹 맞선 자리로도 쓰이고, 뚱뚱보 사장님이 계란 동동 띄운 쌍화차 시켜놓고 마담과
농담 따먹기 하는 곳. 한 쪽 구석에는 낡은 티비가 재잘거리고, 다방 언니들은 껌을 딱딱거리고,
배달 나가느라 늘 분주한 그런 곳. OTL
 
그런 다방의 문제점은 주로 둘이 들어간다는 것인데, 더 문제는 혼자 들어가도 둘이 앉는다는 것.
혼자 들어가도 마담이나 종업원을 옆에 앉히기 때문에, 다방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은 십중팔구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거나 실연당한 사람이다. ㅡㅅㅡ;
 
그러니까 한 마디로, 다방은 솔로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솔로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솔로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아아아아아아!!!!! 철푸덕-!!!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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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끈덕지게 혼자 앉아서 레모네이드와 샌드위치를 시켜 먹었는데, 여기서 감탄했다!
레모네이드가 한국에서 먹어본 그 어떤 것들보다 제대로였던 것!
 
보통 카페에 가면 레모네이드 액이나 가루를 넣어서 휘휘 저어주는 것이 전부다. 정말 쉽다.
그런데 여기는 레모네이드에 레몬 하나가 거의 다 들어간다.
반은 잔 바닥에 썰어서 깔아놨고, 반은 종업원이 들고 와서 그 자리에서 짜서 넣어준다.
(레몬즙을 짜 준 분이 예뻐서 더 맛있었을지도~ ㅡㅅㅡ/)
 
그리고 샌드위치에는 각종 음식물 범벅과 함께 베이컨인지 삼겹살인지도 들어가 있다!
아- 이거 정말 제대로다! 감탄했다! 집과 가깝다면 몇 번 더 오고 싶은 마음!
...이지만, 제대로 된 음식은 가격도 제대로라는 안타까움. ㅠ.ㅠ
(레모네이드 + 샌드위치 해서 구천 몇 백 원 나왔음)
 
아무 이유 없이 가보고 싶어서 간 곳 치고는 꽤 괜찮은 곳이었다.
겉모습보다는 실속을 차린달까. 평범한 카페 음식에 구역질이 나는 분들에게 강추!
 
 
 
p.s.1
델 문도 홈페이지: http://www.delmundo.kr
(공지사항이 자주 업데이트 되니까 읽어 보는 것도 재밌다.)
나오키 씨 홈페이지: http://naokis.net/
(요즘 장사때문인지 한 달 넘게 업데이트 안 하고 있다. 한 달 넘게, 한 달 넘게, 한 달 넘게!!!)
 
p.s.2
카페 안이 너무너 어두워서 어둠의 바퀴벌리 커플들에겐 딱 좋을진 몰라도,
사진 찍기는 상당히 열악한 환경. 그래서 사진을 흑백으로 처리하는 꽁수를 부렸음. ㅠ.ㅠ
 
p.s.3
델 문도라는 정식 이름이 있긴 하지만, 나는 나오키 다방 쪽이 더 정감이 간다. ^^
 
p.s.4
아아... 나도 저런 카페 하고 싶다. 내가 하면 햄 미역국이라든가, 요구르트 라면이라든가,
된장 짜파게티라든가, 우유부단한 핫초코 같은 메뉴를 선보일 수 있는데... ㅠ.ㅠ

p.s.5
구루에게 나오키 카페에 갔다고 말 하니까 구루가 이런다.
구루: 그게 누구에요? 예뻐요?
흐음... 취향따라 예뻐 보일 수도 있다. ㅡㅅㅡ;;;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