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02. 27


# AM 00

아침 7시 까지 서울 삼성동의 집결장소에 도착하기 위해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하지만 평소에 늦게 자는 버릇이, 소풍을 앞두고 있다고 별안간 고쳐질 리 없다. 그래도 눈이라도 감고 있자고 가만히 누워 있자니 그것 또한 고역이다. 눈꺼풀이 이내 들썩이며 가만히 감겨 있지 않으려 한다. 별 볼 것도 없는 작은 방 안에서 다시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물이, 이상하게도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아 그 존재를 잊고 지냈던 책이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이사를 다니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책을 사 모으는 일이다. 부피에 비해 엄청난 무게를 자랑하는 종이뭉치들. 낱장은 잘도 날아가고 흐트러지면서도, 한 묶음의 뭉치는 웬만해선 꿈쩍도 하지 않는 지식의 무게. 예전에는 그래도 양보할 수 없는 애착으로 그 육중한 몸집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판 노마드에게 책이란 불쏘시개로도 쓸 수 없는, 겨우 한 수레의 책을 읽었다고 자랑하기 위한 용도일 뿐이지 않겠는가라며 애써 욕심을 버린지 오래. 그래서 어디론가 옮겨갈 때, 그것이 이사가 되더라도, 책은 단 한 권만 남겨서 가져가자는 방침을 세웠다. 이번 이사에서는 월든과 오래된 미래 둘 중 하나를 놓고 많이 망설였고, 결국은 덜 지겹고 크기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이 선택되었다.  



'오래된 미래'는 옛 라다크 지방의 소개와 변화, 그리고 관광객들과 서구적 개발에 의해 파괴된 라다크 지역의 특색과 전통문화를 다시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들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인도의 영토로 소속되어 있는 이 라다크 지역은, 그 유명한 왕궁의 도시 '레(Leh)'로 더욱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뒤늦게나마 관광객들의 대열에 합류하여 가봤던 라다크 지방은, 행정구역 상으로는 인도지만 인도와는 너무나도 다른 곳이었다. 

라다크 인들은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크고 작은 반란들을 반복하고 있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숨김없이 인도인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놓는다. 그리고 일부 과격한 사람들은 외국인들과 마주치기조차 꺼려하거나, 혹은 외국인들에게 돌을 던지는 등의 적개심을 품고 있기도 한데, 그런 행동들의 주된 이유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신들의 조용한 삶을 망쳐 놓은 데다가, 외국 언론들이 자신들을 왜곡해서 보도한다는 것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창고 같은 긴장감과, 어디서 날아올 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돌만 걱정하지 않는다면, 라다크 지역은 정말 평화롭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곳이다. 심지어 알 카에다의 본거지라는 작은 마을에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그 때도 동네 사람들은 내게 친절한 웃음으로 조금이라도 더 자신들이 가진 유산들을 소개하고 보여주려 애썼다. 놀라운 것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점은 인도를 여행하다가 간 사람들에겐 정말 놀라운 일일 수 밖에 없고, 그런 것이 바로 '아, 이 사람들은 인도인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점이었다. 

자신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알아달라는 말을 수시로 했던 세 명의 청년을 만나 동네 구경을 했었다.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해서 가이드 역할을 맡았던 청년의 이름은 후세인이었고, 그 옆에서 묵묵히 따라 걷던 친구의 이름도 후세인이었고, 그 옆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하며 나타날 때마다 주전부리를 들고 왔던 청년의 이름도 후세인이었다. 자기들은 반미주의자는 아니지만 코카콜라는 마시지 않겠노라며, 애써 내가 사 온 콜라 세 병을 나 혼자 다 마시게 만들 후세인들. 아무리 작은 동네지만 골목골목 어귀마다 얽힌 이야기들을 그렇게 잘 알 수가 있는지 신기하게만 여겨졌던 그들의 이야기 보따리. 그리고 솔직히 외국인 여행자들이 자꾸 찾아오는 것이 반갑지는 않다면서도, 이왕 찾아온다면야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하지 않겠느냐며 해맑게 웃던 그들. 나는 레의 고성보다 그들의 웃음 속에서 라다크의 오래된 미래를 보았고, 그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게 내 머릿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면 아무래도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그러면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사람들도 간접적으로라도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시각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각 지방정부들도 관광산업을 개발하려고 애쓰고 있고, 어떻게든 홍보를 잘 해서 관광객들을 유치하려고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각도 어쩌면 또다른 개발 우선주의 논리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편으로 슬며시 고개를 든다. 과연 사람들이 찾아가고 널리 알려지는 것이 좋은 일일까. 과연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소위 발전이라는 것이 이루어져야만 더욱 행복해지는 것일까. 과연 모든, 아니 대다수의 주민들이 그런 개발과 발전에 동의해서 관광지화 사업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혹시 다 좋자고 하는 일인데 무슨 반대가 있을 수 있나 닥치라, 라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닐까. 정말 그 지역을 사랑하고 고향을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은 또 다른 곳에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내가 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의 오래된 미래를.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으로 이미 시간이 꽤 흘러버렸다. 새벽 0시 30분. 내가 타야할 차는 새벽 2시 출발. 잠을 자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일어나 멍하니 있기도 그렇고. 그래서 산책삼아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갔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 밤에 걸어가 본 적은 딱 한 번 있었는데, 그 새 또 길을 까먹어서 이상한 골목에서 헤매고 말았다. 그래도 어쨌거나 무사히 시간 안에 터미널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막차보다 조금 앞의 차를 탑승했다. 광주도 광역시지만 조금만 도심을 벗어나도 불빛이 전혀 안 보이는 도시같지 않은 도시. 말 그대로 칠흙같이 어두운 밤을 달려 서울로 향했다. 보통은 마감을 위해 타는 막차를 시작을 위해 탔고, 어두컴컴한 차 안에서 한동안 오래된 미래를 조금 더 읽었다. 그리고 창 밖으로 끝없는 우주를 달리는 은하철도의 밤을 맞이했다.





# AM 05

버스에서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방금 읽은 책 탓인지, 요즘 가지고 있는 고민 탓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서 전기코드 타는 냄새가 났다. 이윽고 낮익은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걸 풍경이라 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휑뎅그레하게 쭉 뻗은 시커먼 아스팔트 고속도로. 마야의 성벽처럼 작은 칼날 하나조차 들어갈 틈 없을 듯 버티고 서 있는 차벽. 그리고 그 너머로 무지막지하게 우왁스러운 빌딩들의 행렬. 작년 가을 즘에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에 조그만 기사가 올라왔었다. '세계 최악의 도시'라는 제목으로. 총 아홉개의 도시가 소개된 그 기사에서 당당히 3위를 차지한 곳이 바로 서울이다. 나는 그 도시에 도착했다. 다시, 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불평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는지, 올해 초에 론리플래닛은 해명의 기사를 개제했다)

새벽 다섯 시. 버스가 정차하자마자 사람들을 자리에서 우르르 일어나 출구로 몰려들었고,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썰물처럼 모두 빠져나갔다. 내 바로 뒤로 마지막 손님이 내리자, 운전기사는 문을 닫고 어디론가 다시 버스를 몰고 떠나버렸다. 이제서야 졸음과 피곤이 몰려온다. 황망한 기운에 바람이 차갑다. 역시나 서울은 공기부터가 지랄같이 쌀쌀맞다. 멍한 정신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 뒤를 따라 걸었다. 다들 이 신새벽에 바삐 가야할 곳들이 있는지 발걸음이 부산했다. 몇몇 사람들은 바로 터미널을 빠져나갔고, 몇몇 사람들은 전철을 탈 요량으로 지하로 내려갔으며, 몇몇 사람들은 대합실 긴 의자에 턱하니 주저앉았고, 또 몇몇 사람들은 지하 쪽의 비싼 찜질방으로 향했으며,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증발해버렸다.

나도 바로 지하철을 타려고 지하로 내려갔지만, 첫차가 새벽 다섯시 반 즘에 온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 대합실로 올라왔다. 어느 어두컴컴한 구석자리 의자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았다, 떴다, 감았다, 떴다 반복했다. 눈을 뜨고 있으면 피곤에 쩔은 졸음이 와락 몰려들었지만, 눈을 감으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정신상태가 다시 눈을 뜨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마치 수백마리 뱀이 눈 앞에서 서로 몸을 칭칭 감고 있어서 마음 놓고 눈을 감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주어진 짧은 삼십 분이라는 시간을 그래도 조금이라도 편히 있어볼까 싶어서 긴 의자에 누우려고 했다. 터미널은 마치 웬만 한 가난한 나라 공항보다 더 크고 깨끗한 편이라,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편하게 있을 수도 있을 듯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저 멀리서 경비원 복장을 한 아저씨 두 분이 순찰 도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들은 일일이 의자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깨워서 일으켜 앉히는 것이 일이었다.

전철 첫차도 다니지 않고, 고속버스 첫차도 시작되지 않은 이 새벽에, 아니 아직 캄캄한 밤이라고 표현해야 더욱 어울릴 듯 한 이 시간에, 왜 그들은 굳이 피로한 몸을 누추하게나마 쉬어 보려 애쓰는 사람들의 노고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을까. 누워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기 때문에, 그것이 매우 귀찮고 힘든 작업이라는 것은 얼핏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아마 그들도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었을테지.

그런데 왜일까. 노숙자들이 제 집 삼아 몰려들 것을 우려해서일까. 그래서 공항은 시내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가는 차비마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것일까. 그렇게 사람들을 깨워 일으키는 것을 보니, 옛날 학창시절의 악몽이 떠올랐다. 쓸 데 없이 '똑바로'를 강요하던 똑바르지 않은 사람들. 내실이야 어떻든 일단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와 가닥을 중시했던 그들. 남들과 다른 것을 차이로 인정하지 않고 열등과 낙오의 굴레를 덮어씌워서 사랑의 매라며 몽둥이 집어들기를 서슴치 않았던 그 세상의 어두운 기억들의 프리즘 속에서, 사랑의 느낌은 참으로 드러웠다.



그 옛날의 기억을 투영하던 중에 그들은 점점 저 쪽 끝으로 멀어져갔다. 깨어난 사람들은 자리를 떠서 어디론가 가버리거나, 멍청히 앉아서 다시 꾸벅꾸벅 졸거나, 또 이내 다시 눕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란은 다시 한바탕 되풀이되었는데, 멀어졌던 경비원들이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다시 누운 사람들은 다시 일어나야만 했다. 저 쪽 끄트머리 구석진 곳 눈에 띄지 않았던 한 청년도 이번에는 발견되고야 말았다. 청바지에 회색빛 후드 티의 점퍼를 있는대로 끝까지 채워 올리고, 후드를 깊이 덮어쓰고는 커다란 국방색 가방을 등에 맨 채 누워있던 청년. 내 기록에 남아있는 그의 인상은 '곧 죽을듯 한 노숙 스타일'. 정말이지 일어서려다 다리가 푹 꺾이면서 주저앉지 않을까 싶은 그 청년은, 그래도 용케 온 몸에 힘을 실었는지 벌떡 일어나 부시시한 눈으로 사방을 한 번 두리번거리더니 어디론가 휑하니 가버렸다.

뒷자리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던 샤프스커트 정장차림으로 푸석푸석한 샴푸의 화학약품 냄새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던 새침한 아가씨도 시간이 되었는지 어디론가 떠났고, 건너편 조그만 분수대 앞자리에서 서너 쪽 안 되는 귤을 알콩달콩 주거니 받거니 까먹던 노부부도 자리를 털고 있어났으며, 새벽부터 무슨 힘이 남아 도는지 칠 센티는 넘어 보이는 하이힐을 신고 말굽소리 내 가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아가씨도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릴없이 무거운 가방을 질질 끌며 어슬렁어슬렁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걷고 또 걷던 사람들의 무리도 어디론가 사라졌고, 사람들을 깨우던 경비원들의 모습도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드디어 전철 첫차가 올 시간이 되었다.  






# AM 05:36

지하철 첫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한 무리의 서양인들이 내 주위로 와서 섰다. 저 넓은 승강장이 거의 텅 비어 있는데 왜 하필이면 또 내 주위에,라고 의아해하기도 전에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지금 이 순간의 내 작은 선택이 그들에겐 나라는 인간의 전부가 될테지. 나는 이 순간 짧은 한 마디로 한국인도 될 수 있고, 일본인도 될 수 있고, 중국인도 될 수 있다. 심지어는 필리핀 인도, 싱가폴 인도, 태국인도 될 수 있다. 자주 겪었던 내 스스로도 아직 믿기지 않지만, 그들에게 동양인은 다 비슷비슷한 얼굴일 뿐. 그래도 여기는 내나라니까 최대한 자세하게, 최대한 똑똑하게, 최대한 딱 부러지게 한 마디로 설명했다. '나는 한국인이고, 지금은 서울을 여행중이다'라고.

유럽 어디에선가 왔다던 두 여자와, 캐나다와 미국에서 왔다는 세 남자. 모두 딱 표시가 나는 서양인들. 방금전에 전철 타러 오면서 만났는데 이미 친한 친구처럼 여행 계획과 농담을 주고받는다. 나도 배낭여행은 이런 식으로 했었지라며 오래된 여행의 흙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아, 이들도 싼 비행편으로 이렇게 애매한 시간에 애매한 곳으로 낯선 장소에 도착하는구나라는 일종의 동료의식과 함께.

유럽에서 왔다면서 영어를 지독히도 못하던 한 처자는, 서울에서 '잇채원'과 '인쓰동'을 가보고 싶다 했다. 나는 그녀의 지도와 가이드북을 가리키며, 길을 물을 때는 한국어로 표기된 지명을 함께 보여주는 게 좋다라는 여행 팁을 알려줬다. '아,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야'라며 맞장구치며, 마치 얘기치 않은 곳에서 어려운 문제의 해답을 발견한 아르키메데스처럼 펄쩍뛰며 좋아하던 세 청년. 이대로 계속되면 좋은 팀웍을 이룰 수도 있겠다 싶어,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한없이 서글펐던 한 순간의 여행 동료들. 그렇게 황당스럽게도 갑자기, 우연히 이루어진 짧은 만남에 길게 남는 여운, 어쩌면 그것이 바로 인연.  
 
 



# AM 06

오사카 남바라는 지명의 도심 한복판에서 노숙을 한 적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근처 아케이드형 상가 거리 구석의 벤치에서 노숙을 했다. 애초에 일본어를 잘 못 하는데다가, 피곤하기까지 하니 거리에 넘쳐나는 언어들은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의 잡음처럼 그저 무의미한 소음일 뿐이었다. 늦은 밤부터 이른 새벽까지 일어난 일이라고는 단 두 개 뿐이었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던 두 소녀가 기우뚱해서 나와 부딪힐 뻔 했던 것. 그래서 '스이마센'하며 작은 초콜렛 하나를 주고 간 것. 그리고 나보다 형편이 나아보이던 노숙자 할아버지가 신문지 몇 장을 주고 간 것.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아케이드 아래라서 별도 보이지 않았고, 날이 샐 때까지 희미한 전등이 켜 져 있어서 어둡지도 않았다. 경비원인지 경찰인지 지나가긴 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고, 얼큰하게 취한 행인들이 지나가기도 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없었다.

옛날 서울에 처음 올라온 날 밤도 그러했다.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리라며 한껏 부풀었던 꿈도 잠시. 기차를 내리자마자 나는 깨달았다. 나는, 갈, 곳이, 없다, 는 것을. 그래서 서울역 근처에서 노숙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많은 노숙자들이 있었고, 듣던 것처럼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인 것만은 아니었다. 가난한 자들을 헐뜯고 상처주는 자들은 바로 가난한 이웃들이라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에 이 노숙자들도 동료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가지며 군집을 이루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모를 약간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소속감이 무료로 제공되었다. 그리고 그 날 밤도, 별도 보이지 않는 그 허름한 모퉁이 구석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수많은 일들이 내 곁을 스쳐지나갔지만, 결국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건 아니다. 손에 땀을 쥐는 모험과 스릴은 내가 눈을 뜨고 걸어다니는 대낮에도 충분하고도 넘칠만큼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굳이 무거운 눈꺼풀로 천근만근 몸을 땅바닥에 버트려 놓았을 때에도 그런 것을 경험하기는 싫다. 그 때는 그저 밤 하늘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작은 별 빛 몇 개면 충분히 만족하고도 남는다. 어쩌면 여태까지 운이 좋았던 건지도 모른다. 주로 아시아 각국을 돌아다니며, 치안이 좋건 나쁘건, 도시든 시골이든, 숲이든 사막이든 큰 상관없이 자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끔도 아닌 유목민의 생활을 했던 내게는, 여태까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시련은 닥치지 않았다. 그래, 어쩌면 나, 은근히 운이 좋은 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근처, 영화 엑스트라들이 주로 집결해서 버스를 타고 간다는 그 장소 근처에서 그 날 밤도 잠시 누워 잠을 청했다. 이 도시의 시커먼 하늘에서 별은 모두 떨어져 땅을 기고 있었다. 늦었다고 하기에도, 이르다고 하기에도 적당하지 않은 시간에, 어디선가 나타난 행인들은 어디론가 발걸음을 재촉했고, 호텔 유니폼, 백화점 유니폼, 은행 유니폼 그리고 각양각색의 여러 회사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그 시간에도 뭔가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인시(寅時)는 마의 장막이지만, 도시는 이미 결계가 쳐 졌다. 그걸 굳건히 믿고 자만하다가 어스름한 틈에서 당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이런 곳에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미 살면서 수많은 흉측하고 기괴한 마물들을 다들 많이도 보아왔지 않은가. 그래서 어쩌면 비좁고 더러운 양계장같은 어두운 한 칸 방 안보다, 이런 도시에선 이런 장소가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노숙을 하는 노숙자도 이 세상 어딘가 있을지도 모른다. 저 높이 팬트하우스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만약 이 시간까지 근심에 잠 못 이루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적어도 마음상태만으로는 내가 더 높은 곳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 AM 07

짧은 시간이지만, 이 여행은 이렇게 하나의 여행으로 완성된다. 날 잡고, 계획 짜서, 어느 멋진 곳을, 어느 멋진 이와, 어느 멋진 경험으로 가득가득 채우지 않아도, 여행은 이렇게 완성될 수 있다. 비록 누더기 넝마처럼 너덜너덜 폼 나지 않는 기억들로 채워지긴 했지만, 이것은 이것 나름대로 멋진 경험의 산물을 남길 수 있다. 빈 공책이든, 작은 승차표 뒷면이든, 길에서 주운 너덜한 종이조각이든, 혹은 사진이든, 음성이든, 기억이든, 온 몸이든, 어떻게든 나름의 값진 그 무언가를 산출해 낼 수만 있다면 누가 뭐래도 값어치 있는 여행으로 완성될 수 있다. 그러니까 마음 수양을 위해 인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먼저 이런 식의 예행연습을 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제안해 본다. 한가득 꿈으로 부풀어 잔뜩 기대했던 곳들이 공갈빵의 속처럼 헛방일 때도 많고, 아무 기대 없이 너저분해서 보기조차 싫었던 곳들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왕만두 속처럼 알찰 수도 있으니까. 굳이 이 허름한 경험담을 여행기라는 이름의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p.s.
본격적인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나름 많은 것을 겪고 느낀 탓인지, 투어 버스를 타고 떠날 때는 녹초가 되어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리고 해가 뜬 뒤부터는 하루종일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니느라 아주 고역이었고. 하지만 난 이번 여행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이라고 서슴없이 말 할 수 있다. 물론 이번 여행의 백미는 이날 밤 사람들과 함께했던 술자리였지만.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