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般若)란 산스크리트의 prajñā를 음역한 것으로, 글자 그대로의 뜻은 '지혜'이다.
모든 존재는 다른 것들과의 관계(緣起)로 존재하기 때문에, 스스로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無自性).
따라서 존재는 공(空)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존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외부와의 조건과 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존재하는 상태로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양자역학을 떠올리면 오히려 이해가 쉬울 듯 하고,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 알게 모르게 친근한 사상이다.
이 말을 대충 해석하자면 이렇다. 어떤 대상은 관계, 연계 속에서 그때 그때 인식되는 것이고,
그 범위에서 벗어나면 또 다른 어떤 것으로 변하므로 대상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그 집착할 필요도 없고, 집착할 수도 없는 것을 헛되이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그것은 공(空)이고, 거기에 인간의 현실 혹은 존재가 있다는 뜻이다.
그 경지를 넘어서서 절대적인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가 바로 '반야'다.
그리고 그 지혜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것이 바로 '문수보살'이다.
그곳이 '반야사'인데다가 '문수전'이었기 때문에 내 눈엔 저렇게 보였겠지.
그리고 사람들 모두 제각기 다른 것들을 보았겠지.
아직 우리는 '공(空)'에 집착하는 어린 중생들이니까.
p.s.
반야사와 문수전, 반야와 문수보살에 대해 줄줄줄 썼다가,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에 문득 모든게 허탈해져 지워버렸다.
내일은 오랜만에 '무소유'를 다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