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동피랑 마을은 벽화로 유명한 곳이다. 딱히 어떤 홍보나 큰 지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인터넷으로 알음알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알려졌다.

아직까지 공식적인 통영 관광지도에는 중요한 곳으로 소개되어 있지 않고, 통영 관광 안내를 위한 책자에서도 그리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최근 인터넷을 통한 여행자들의 동향을 보면, 동피랑을 가기 위해 통영을 찾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다. 어쩌면 동피랑은 이미 통영보다 유명한 곳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실을 증명이나 하듯, 주말이나 휴일에는 어김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동피랑 산동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로 이루어진 동네 자체도 구경거리이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꼭대기도 멋있지만, 주 목적은 마을 여기저기에 그려진 벽화를 보려는 것이다.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연인끼리, 또는 혼자서 그렇게 동피랑을 찾아간 사람들은, 딱히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저마다의 시선과 느낌으로 벽화를 즐기고 동피랑을 느낀다.

마음에 드는 벽화 사진을 찍는 것은 기본이고, 재미있는 그림 앞에서는 왁자하게 떠들며 한바탕 웃음꽃이 피어나기도 한다. 멋있는 그림에 감탄하기도 하며, 배경과 잘 어울리는 어떤 곳이나,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는 셀카를 찍기도 한다.

누구는 십 분도 안 되어 동네 한바퀴를 뛰듯이 휘 둘러보고 내려가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계단에 앉아 벽화를 배경으로 하염없이 먼 바다를 바라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새벽부터 산동네에 오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차 시간에 맞춰 잠시 들르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이 동네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어떤 방법이 옳고, 어떤 방법이 그르다고 할 수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은, 어떤 식으로 즐기든 그건 각자의 좋을 대로 하면 되니까. 어차피 엄숙한 미술관도 아니고, 아주 대단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작품을 감상하고 어떤 의미를 알아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따위 전혀 가질 필요 없다. 편한 대로 보면서 즐거우면 그 뿐이다.

하지만 어쩌면 동피랑에 그려진 그 많은 벽화들에 얽힌 이야기들이 궁금한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벽화전에 참여했거나, 벽화 그리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지 못 한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그래서 내가 듣고, 기억하고,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동피랑 벽화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놓아 보려 한다. 이 이야기들이 동피랑의 벽화들을 보고 즐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싶다. 



참고로 이 글은, 동피랑 벽화전에 참가하면서 몇몇 참가자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던 사람들의 작품들은 설명없이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내내 햇살이 반짝여서 여름 같은 봄 날씨였던 동피랑이, 하필이면 마지막 떠나는 날 어두워졌다. 최대한 많은 완성작들을 찍기 위해, 떠나기 바로 전에 흐린 날씨에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사진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점 이해하시기 바란다.

반짝이고 깨끗한 화질을 원하신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내게 DSLR 카메라를 기증하면 된다. 아마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직접 동피랑을 찾아가서 벽화를 감상하는 것 일테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 찍더라도 그림을 직접 보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것은 천치차이니까.



이번에 새로 그린 벽화들은 2010년 4월 첫째 주와 둘째 주동안 그려진 것이다. 벽화는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라, 시간이 지나면 더러워질 수 밖에 없는 특성이 있다는 것, 누구나 아실 테다.

게다가 동피랑 벽화는 한정판이다. 날이면 날마다 있는 것이 아니고, 길어봐야 수명 2년으로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다. 동피랑 벽화전이 2년 마다 열리는데, 그 때가 되면 대부분의 벽화들이 새것으로 교체되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빨리 낡으면 그보다 빨리 교체될 수도 있다. 그러니 한 번 가야지 마음먹고 있는 분들은 되도록 빨리 가서 보는 게 좋겠다.









중앙시장 옆으로 나 있는 큰 길을 통해 동피랑 입구로 들어서면, 여기가 동피랑 가는 길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벽화가 있다. 이 벽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피랑에 접어들면서 가장 먼저 보는 것 일테다. '동피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모퉁이 옆으로 사람 셋이 'welcome'이라고 말 하고 있는 모습. 

벽화를 그린 사람들은 외국인 남자 두 명과, 한국인 여자 한 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서울에서 주말마다 내려와서 작업을 했는데, 벽화에 그려진 세 사람은 각각 프랑스, 한국, 폴란드를 뜻한다. 벽화 작업에 참여한 세 사람 각각의 국적을 나타낸 것이다. 동피랑이 세계화 되고 있는 모습을 잠시 엿볼 수 있는 그림이라 하겠다.

'세 사람이 그리는 데 분량이 너무 적다'라는 느낌을 받아, 뒷쪽 벽에 소도 한 마리 그렸다. 나중에 벽화작업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는, 여자분 혼자서 고생을 많이 했다. 점심도 빵 한 조각으로 때우며, 일정에 맞춰야 한다며 서두르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내가 동피랑을 떠나던 날 마지막으로 본, 동피랑의 마지막 모습이었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벽화이다.






환영인사를 뒤로하고 오르막길에 들어서면, 길게 쭉 뻗은 벽들 위로 벽화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자가용을 타고 왔다면 차는 이 어디 즘에 잠시 세워두고, 온전히 걸어서 동피랑을 구경하시라 말 해 드리고 싶다. 벽화를 보면서 즐기는 느림과 여유도 동피랑의 일부이니까.

이쪽, 입구쪽 벽들은 벽화 작업자들에겐 사실 기피대상들 중 하나였다. 벽들이 워낙 길고 넓기 때문에, 이 벽을 그림으로 채우려면 꽤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거의 마지막 선택의 시간까지 텅 빈 채로 남아있다가, 어느 운 좋은(?) 팀들이 이 쪽 벽들을 맡게 됐다.

이 하트 뒤의 하얀 배경은 한 여인이 혼자 다 칠했다.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친구들을 기다리며 바탕의 하얀색을 혼자 다 칠해버린 한 여인의 아픔이 묻어나지 않는가. 마침내 친구들이 내려오긴 했는지, 어느날 보니 그림이 완성되어 있었다. 그래도 벽화 그려본 사람은 알겠지만, 배경색칠은 정말 힘든 일이다.



저 아래쪽에 있는, 명태를 방망이로 야구하는 그림은 한 지역 신문사 기자분이 그렸다. 동피랑 벽화전 취재와 함께 참여도 하셨다. 벽화전 참여는 회사일이 아닌 관계로 주말 시간을 이용했다. 벽화를 처음 그려 봤는데, 다시는 못 할 짓이라고 진심이 가득 담긴 한 마디를 남기셨다.






통영, 그것도 동피랑을 단순하면서도 예쁘게 표현한 이 그림은, 실제로 가 보면 크기가 꽤 큰 작품이다.

거제도 조선소라고 했던가 중공업이라 했던가, 직장동료들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처음 바탕색은 두어 명이 칠했는데, 나중에 본격적인 벽화 그림은 일고여덟 즘 되는 인원들이 몰려와서 그렸다.

그림 그리는 모습이 참 볼 만 했는데, 여러가지 장비들을 동원해서 마치 암벽타기를 하는 것처럼 매달려서 벽화를 그렸다. 그것도 파란색 작업복을 유니폼처럼 입고. 이 벽화를 그리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벽화보다 더 희귀한 구경을 할 수 있었다.






통피랑을 찾는 사람들은 대체로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벽화들을 기대할 것이다. 그렇게 가벼운 기분으로 오르막길을 올라오다가, 무심코 모퉁이 너머로 옮긴 눈길을 확 잡아끄는 강렬한 붉은색 벽화.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있기도 하고, 규모도 크며, 색깔도 강렬하기 때문에 누구나 눈길을 멈추는 작품이다.

외지에서 와서 처음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뭘 그린 건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통영 토박이들은 딱 보고 이게 뭔지 안다. 그래서 이 그림 앞에는 통영의 어르신들이 걸음을 멈추며, 잘 그렸네 하며 감탄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이 그림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는 것들은 '배'다. 옛날 통영의 배들은 앞머리에 눈을 그려 넣었다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분분하다. 귀신 쫓기 위한 거다, 물고기를 많이 잡기 위한 거다, 뱃길을 잘 보게 하기 위한 바램이다 등. 이유야 어찌됐든, 옛날에는 통영의 모든 배들이 앞머리를 이렇게 장식했다는 데는 만장일치였다.

이 그림은 그 옛날 강구항의 모습을 그린 거라 한다. 강구항은 동피랑 꼭대기에서 바다쪽으로 내려다보면 바로 보이는 곳이다. 옛날 통영이 잘 나갈 때는 부자동네로 유명하기도 했다 한다. 가던 길 멈추고 한참동안 이 그림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은, 그 옛날의 추억들을 이 그림을 통해 보시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강구항에 나가보면 앞머리에 눈을 그려넣은 배가 간혹 보인다. 많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으니, 이 그림처럼 무섭게 눈을 그려넣은 배를 한 번 찾아보기 바란다. 



이 작품은 믹키디자인이라는 벽화 전문 팀이 그렸고, 이번(2010년) 동피랑 벽화전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어쩐지 그림 그리시는 분들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음악가족'이라 불렸던 이 팀은, 별명 그대로 음악가족이었다. 어여쁜 두 딸이 모두 지금 유럽(독일이라 했던 듯 함)에서 유학 중이다. 물론 전공은 음악 쪽. 유학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잠시 들어올 일이 생겼는데, 마침 날짜가 동피랑 벽화전과 맞아떨어져서 참가했다. 

말이 쉬워 '마침 날짜가 맞아 떨어졌다'지, 사실 두 딸은 귀국한 바로 다음 날부터 동피랑에 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벽화전이 끝난 바로 다음날 다시 학업을 계속하러 떠난다고 했다. 그러니 올해 휴가는 완전히 동피랑을 위해 바친 셈이다.



한가족이 한 팀을 이루어서 휴일이고 평일이고 할 것 없이, 2주 내내 거의 매일 나와서 그림을 그린 것도 참 대단한 일이었다. 물론 아버지는 일 때문에 자주 나오시지 못했지만, 저녁에 자주 나오셔서 힘 닿는 데까지 도우셨다. 

벽화를 잘 보면, 트럼펫과 바이올린이 벽에 붙어있다. 이 악기들을 붙이기 위해 전문 시공 차량을 불렀다 (당연히 그냥 본드로는 붙지 않으니까). 저런 비싼 악기들을 이렇게 막 써도 되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이 악기들은 이미 못 쓰는 것들이라 했다.



다른 곳에 인터뷰 할 때는 동피랑 벽화전을 위해 일부러 잠시 귀국했고, 악기들도 다 쓰는 건데 이번 행사를 위해 희생한 거다 라고 말 하는 게 좋겠다고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다. 사실 그렇게 말 해도 큰 무리가 없는 팀이기도 했다 (그런데 인터뷰 때 그렇게 말 하지는 않은 듯 하다).

어쨌든 이 벽화는 한 가족이 모여서, 오전부터 밤까지 산동네 언덕에서 짜장면 시켜 먹어가며 노력해서 얻어낸 결실이다. 이 벽화를 배경으로 작은 음악회를 열어도 잘 어울리겠다는 호평을 받기도 한 이 작품은, 이번 벽화전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이 그림은 밤에 조명이 들어 오면, 정말 작은 음악회가 열리는 듯 한 은은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언덕 위에 하얀색 바탕 위로 아기자기한 건물 그림들이 그려진 이 벽화는, '삼토끼'라는 팀이 그린 것이다. 팀원이 더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본 것은 여학생 세 명이었다.

언덕 위쪽이라 눈에 잘 띄는 곳이긴 하지만, 일부러 올라가지 않으면 올라갈 일이 별로 없는 곳이라, 벽화 그리는 내내 호젓한 작업실 분위기를 잘 유지했던 곳이었다. 조용한 음악과 함께 뒷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경치를 벗삼아 작업에 열중하던 그 모습이 참 부러웠다.



벽에 그려진 건물들 안에는 통영의 특산물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은근히 통영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만히 하나씩 짚어보면 통영에 어떤 것들이 유명한지 저절로 알 수 있을 테다. 그냥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재미를 주기 위해 숨은그림찾기를 넣은 것도 재치 있는 발상이었다. 이 벽화는 이번 벽화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잠시 다른 이야기인데, 옆으로 보면 '용정암'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이름으로 봐서 무엇일지는 대략 짐작이 갈 텐데, 중요한 건 여기서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개방해 놓았다는 것이다.

동피랑에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두 군데가 있다. 한 곳은 이 용정암이고, 다른 한 곳은 동피랑 구판장 앞에 있는 건물 안 화장실. 사실은 이곳들 말고도 화장실 쓸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더 있지만, 처음 가시는 분들은 이 두 군데만 알아둬도 충분하다.






마침내 중앙시장에서 올라와 동피랑 산동네 올라가는 입구에 들어섰다. 푯말에 '동피랑 벽화골목'이라고 쓰여져 있어서, 이곳이 벽화골목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이 이 위쪽으로만 벽화가 있는가 보다 생각하는데, 사실은 이 뒤쪽길로 쭉 따라가도 벽화들이 나온다. 이번 벽화전 때 벽화 수를 많이 늘렸기 때문인데, 그 쪽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어쨌든 이 길은 동피랑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동네 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이다. 널리 알려진 골목인 만큼 다양한 벽화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이 골목을 올라갈 때 맨 먼저 만나는 벽화가 바로 이 큰 날개 그림이다. 예전에는 '동피랑에는 꿈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글이 적혀있던 벽이다.

사진에 보이는 모습은 아직 이 벽화가 완전히 완성되기 전의 모습이다. 밸리댄스 팀이라 불렸던 팀이 그렸는데, 총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원래 팀 이름이 밸리댄스 팀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느 날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다들 밸리댄스를 하는 사람들이라 했다. (어쩐지 몸매가... 아니 그렇다고 몸매를 자세히 들여다 봤다는 건 아냐. 아니 그렇다고 안 보고 얘기하는 것도 아냐. ...아 몰라! ;ㅁ;) 



이 팀은 평일 밤에 주로 나와서 작업을 했다. 상당히 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했는데, 작업팀들 중에서 제일 늦은 시각에 작업을 많이 한 팀이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변해있는 벽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 날개 그림은 지금은 사람들이 사진을 가장 많이 찍는 벽화 중 하나가 되었다. 위 사진을 참고해서 여러분들도 동피랑에서 날개를 한 번 달아보시기 바란다.

혼자 간 사람은 이 참에 사진 찍어 달라고 말 붙여서 짝 하나 찾으시든지 (의외로 동피랑 혼자가는 사람 꽤 있다). 주말 낮에 혼자 가서 이 앞에서 셀카놀이 하는 사람은, 진정한 혼자놀기 달인으로 임명해주겠음.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