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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길 옆의 꽃은 꽃이 아닌 걸까
    사진일기 2010. 6. 17. 01:41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갔다. 한 시간 삼만 원이라는 꼬임에 넘어간 것도 있지만, 호기심이 발동한 탓도 있었다. 어디든 그렇듯 부리는 자들은 약속했던 것보다 더 많은 노동을 원했고, 어디든 그렇듯 일하는 자들은 자신의 부당함에 화를 내며 항의했다. 단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조금 더 거칠었고, 조금 더 살벌했다는 것. 그나마도 선착순에 밀려버린 잉여인간들은 시간만 날리고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어떤 험한 꼴이 일어날지 알고 있어서였을까, 그래도 차비 정도는 쥐어주며 화가 분노로 치밀지 않도록 대충 수습을 하는 모습이, 아니꼽기보다는 애처로워 보였다.

    많은 군상들이 있었다. 절반 이상은 대학생이거나 젊은 백수였다. 나머지 절반은 어떤 부류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 방세 이십만 원을 벌기 위해 나온다는 노인도 있었고, 휴일에도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가장도 있었다. 심심해서 나왔다며 정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온 사람도 있었으며, 갸냘픈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간절한 소망으로 나온 사람도 있었다. 과연 이들에게도 꿈이란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마지못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였고, 그래도 희미하나마 꿈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가슴에 품은 사람은 과묵했으나, 절망마저 찌들어 녹아버린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다양한 군상이 집결해서 다양한 모습들이 연출되었지만, 결국 담배 한 개비, 돈 삼천 원에 눈은 돌아갔고, 어쩌면 껌 하나에 살인마저 날 수 있을 듯 한 분위기였다. 그 화려한 주인공들과 스텝들 사이에서, 삶의 무게에 짓눌린 그들은 가상세계에서마저 잉여인간으로 무대에 올랐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누구나 대체할 수 있는,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그런 소모품. 주인공들이 연기하는 애절한 이야기보다, 그들의 모습이 더욱 드라마틱하고 서글펐던 것은, 아마도 내가 거기 있었기 때문일테다. 한동안은 영화나 티비를 볼 때 얼굴도 보이지 않는 그들의 모습들에 더욱 시선이 갈 수 밖에 없겠지.

    거기 그 자리에 분명히 있었지만,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 누군가는 기억하겠지만 곧 잊혀질 사람들. 굳이 기억해달라고 하소연 하지도, 할 수도 없는 사람들. 그저 스치는 사람들. 그냥 놓여진 사람들. 그것이 당연한 듯한 사람들. 그들도 언젠가, 어디선가 아름다운 꽃이었을테지. 단지 인생에 비 맞는 날 철길 가에 놓여져서 쓸모없는 잡초일 뿐.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기억하겠지, 나도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나의 삶도, 그들의 인생도, 최소한 우리가 맡았던 배역처럼 허망하지 않았으면 싶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긴 인생동안 겨우 삼 초 짜리 등장인물로 끝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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