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옛날에 곰과 호랑이가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던 시절, 호랑이가 나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그 무렵에, 부산에는 교보문고가 없었다.
그 때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것은 교보문고의 누런 종이봉다리. 그당시 부산에선 일상에서 그 봉다리를 접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마치 '서울'의 상징인 양 의기양양하게 들고 다녔던 거다. 그걸 보는 사람들 또한 알게 모르게 '저것봐라'같은 눈초리로 그걸 또 눈여겨 보기도 했고. 특히 대학가에서 그런 일들이 빈번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지방의 어린 사람들은 '서울'하면 뭔가 동경의 대상인듯 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서울에 올라와서 한동안 교보문고의 누런 종이봉투는 내게 희망의 상징이었다. 빌어먹을 자본주의에 돈을 위해 하고싶지도 않은 일을 하며 하루하루 빌어먹고 살아가고 있지만, 미래라는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준비해 가고 있다는 의미. 일주일에 한 번씩 거의 쉬는 날마다 교보문고를 찾아갔고, 최소한 한달에 두어 번은 누런 봉투에 책을 사 담아 왔더랬다. 그러면서 남루하고 구차한 생활이지만, 그래도 나는 희망을 손에 들고 있다는 위안을 얻었드랬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내게 그런 의미였다. 지금은 다소 퇴색해버렸고, 기억 저 깊은 곳으로 추억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도 나는 틈 날 때마다 교보문고를 향한다. 서점은 서점이다. 매매라는 형태에만 효과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인터넷 쇼핑몰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은 도서관과는 다른 활기가 있고, 또 다른 서점과는 다른 (개인적인) 추억과 상징성이 있다.
약 5개월 간의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26일 다시 문을 열었다. 아직은 예전과 무엇이 다른지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소통 서점으로 컨셉을 잡고 꾸며 나갈거라고 하니 기대해 보겠다. 가격과 배송이라는 엄청난 무기의 인터넷 서점들 앞에서 고전을 하고는 있지만, 언제나 생활 주변에서 심심할 때 마음놓고 찾아갈 수 있는 쉼터로, 앞으로도 쭉 그 자리에 있어줬으면 싶다.
p.s.
26일날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샀더니 색연필 네 자루를 사은품으로 줬다. 사실은 색연필 준다는 소문이 돌길래 그걸 노리고 간거였다. 책은 '여행'책 중에서 '남(현지인)'을 생각하는 책은 저것 딱 한 권 밖에 없길래, 그냥 생각없이 사 왔다. 저런 책을 내는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내 돈이 의미없게 쓰여지진 않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책값은 정가에서 단 한푼도 깎아주지 않았지만, 어쨌든 색연필을 받아서 기뻤고, 그동안 놀이터로 놀 장소를 제공해 줘서 고마웠고, 또 앞으로도 가서 놀테니까 이번기회에 오프라인에서 한 권 정도는 팔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건 교보문고에서 색연필 받았다는 자랑이다~ ㅡㅅ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