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1일, 광주 구 전남도청 앞에는 시커먼 컨테이너 박스로 이루어진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수출용 컨테이너 29개를 사각 입방체 형태로 쌓아, 중앙의 빈 공간을 중심으로 마치 성벽처럼 쌓아올려진 이 건물은, '쿤스트할레 광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쿤스트할레라는 용어가 생소하고 부르기 어려운 감이 있어서, '아시아문화마루'라는 한글이름을 공모해서 정했다. 그래서 지금은 '아시아문화마루-쿤스트할레 광주'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 29개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아시아문화마루-쿤스트할레 광주' 모습.
29개의 화물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신개념 문화공간
쿤스트할레는 독일어로 아트홀(Art Hall)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쿤스트할레 광주'는 일단 예술작품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기존 미술관처럼 엄숙하게 작품들만 전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건물부터가 재활용 가능한 수출용 컨테이너박스로 지어진 만큼, 여기서 펼쳐지는 활동 또한 기존 아트홀과는 약간 다른 모습이다. 예술품들을 전시하는 목적 외에도, 컨테이너 박스의 회랑을 따라서 소규모 도서실, 교육 공간, 편의시설 등이 있다.
중앙 홀에서는 영상, 무용, 첨단미디어 등이 합성된 공연들이 개최되고, 전시실과 중앙마당에도 독특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옥상 또한 긴 회랑처럼 연결되어, 현재 구 전남도청 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아시아문화전당의 공사 상황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전시를 구경하다가 바에서 간단한 음료를 마실 수도 있다. 그리고 한켠에 마련된 조그마한 도서실에서는 전세계 예술서적들을 조용히 읽어볼 수 있고, 옥상에 올라가 주변 경관도 조망할 수 있다.
이렇게, '쿤스트할레 광주'는, 딱히 공연장이라거나 미술관, 혹은 전시관이라는 이름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신개념 복합 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 '아시아 문화마루-쿤스트할레 광주' 중심에 마당같은 빈 공간에 설치된 예술작품
쿤스트할레 광주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축소판
'쿤스트할레 광주'는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이하 아문단)이 기획하고 만든 공간이다. 아문단은 광주에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프로젝트를 추진중인데, 그 사업의 일환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짓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핵심시설로, 구 전남도청 일대에 건립 중인 신개념 복합문화시설이다.
2014년 완공될 예정인 전당은 민주평화교류원, 문화창조원, 아시아문화정보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 등 5개원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세계 여러나라 예술가들과 연동하는 한편, 유기적인 운영을 통해 아시아 문화 수집과 연구, 창조, 교육, 향유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꾸미고 있는 중이다.
'쿤스트할레 광주'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미리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직 공사중인 아시아문화전당이 대체 무엇을 하기 위한 공간인지 알려주기 위한 공간이며, 아문단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 나갈 것인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바로, '쿤스트할레 광주'다.
▲ '아시아 문화마루-쿤스트할레 광주' 오픈에 참여한 김중만 사진작가
▲ '아시아 문화마루-쿤스트할레 광주'의 오픈 행사
서브컬처를 통한 다양하고 복합적인 문화 컨텐츠들을 수용
'쿤스트할레 광주'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아시아문화전당의 컨텐츠를 미리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아시아문화전당은 첨단기술과 첨단시스템이 도입되는 한편, 세계에 유례없는 복합적인 개념이 담겨 있어, 일반 시민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난해함이 있다. 그래서 아문단은 언어적인 설명보다는, 시민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이 공간을 마련했다.
'쿤스트할레 광주'에서 보여주는 예술작품들은 기존 예술계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장르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고, 과거와 현재, 기술과 예술이 융합, 복합된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서브컬처'가 교류되는 공간으로, 국내외 젊은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이벤트, 전시, 체험 프로그램 등이 펼쳐질 예정이다.
예술, 문화 쪽에서 말하는 '
서브컬처'란, 앞으로 주류적인 문화 트렌드로 부상할 가능성은 있으나 아직 제도화되지 않거나, 하나의 '이즘' 혹은 경향으로 정착되지 않은 젊은 예술인 중심의 자유로운 문화를 말한다.
이런 서브컬처는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창조적 예술문화로, 스트리트아트, 그래픽디자인, 클럽문화, 인디뮤직, 비디오아트,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위적 패션 등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서브컬처는, 제 3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쿤스트할레 광주'는 이런 서브컬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것으로 추측해 볼 때, 앞으로 아문단에서 만들 아시아문화전당은 소위 주류라는 흐름에서 살짝 비켜난, 혹은 다소 매니아적이고도 비주류적인 예술들을 주로 지원하고, 소개하고, 또 만들어 낼 계획이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 이토이(eToy)라는 아티스트 그룹이 자신들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문화적으로 좀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발전하기 위한 발걸음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 이병훈 단장의 말을 들어보면, 아문단이 앞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병훈 단장은 한류는 일방통행이라며, 아시아문화전당은 우리 것을 일방적으로 세계에 전파시키는 개념이 아니라고 밝혔다.
아문단(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이 추구하는 목표는, 다른 나라와 협업이라는 방식을 통한 공동창작이다. 예를 들어 이야기 소재는 몽골에서 가져오고, 감독은 일본 사람이 하고, 연출은 호주 사람이 할 수도 있는, 그런 공동작업을 말하는 것이다.
즉 아문단에서 추구하는 문화는, 다른 나라와의 문화적 교류를 통해, 우리 문화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좀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발전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런 작업을 위해, 그 작업의 메카가 되는 곳이 바로, 지금 건립중인 아시아문화전당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 사업은 2003년에 계획을 수립했는데, 그 때부터 20여년 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계획된 사업이다. 특별법에 근거를 두고 진행되고 있으며, 국가에서 지원받아 추진되는 사업이니만큼 기본적으로는 공공성을 가지고 있는 사업이다.
하지만 도시조성사업의 핵심인 아시아문화전당에 예산이 많이 들어가 공공성만 가지고 갈 수는 없는 상황. 그래서 자생력을 가지기 위해 수익성도 발전시켜려고 노력중이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고 있는데, 그 노력중 일부가 바로 이번 '쿤스트할레 광주'이다. 이번 전시에 '
이토이(eToy)'라는 아티스트 그룹을 초대해서, 예술과 함께 수익성을 가져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 보는 것이다.
▲ 이토이가 임시로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
▲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의 이병훈 단장
좀 더 넓고 평평한 세상을 바라며
아문단 사업의 핵심이 될 아시아문화전당이 아직 건립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손 놓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쿤스트할레 광주'도 그렇지만, 아문단은 이미 '월드뮤직페스티벌'과 '한-아세안 전통오케스트라' 창단 밑 공연, 그리고 '광주국제공연예술제' 등의 큰 행사를 치루어냈다.
아시아문화전당이 완공되는 2014년은 아직 멀기만 한 미래이지만, 아문단의 활동은 이미 진행되고 있고, 그 활동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은 아시아만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 아니다. 아시아 문화를 잘 모으고 융화시키고 발전시켜서 전 세계에 이를 알리겠다는 의미다. 그렇게 큰 스케일의 사업이기때문에 20년 이라는 장기적인 계획으로 추진중이고,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전에도 여러가지 사업들과 행사들을 진행하며 여러모로 방향을 모색하는 중이다.
▲ 복합문화공간답게, 밤에는 DJ퍼포먼스와 함께 댄스파티가 열렸다.
아문단에게는 아직, 사업성을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라는 과제와, 지방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 낼 것인가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지금까지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사업을 구체화시키고, 가시화 하기 위한 노력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어떻게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고 공유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이 아시아를 비롯한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사업이니만큼, 지금 이 사업이 모양새를 갖추고 구체화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도 진행할 때다. 지역을 넘어 전국민이 함께 즐기기 위해서, 인터넷을 주 무대로 한 컨텐츠 전시나, 행사 또는 각종 이벤트를 통해, 아문단의 활동범위와 영역을 좀 더 확장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