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문화마루-쿤스트할레 광주'는 컨테이너 박스로 지어진 복합문화공간이다.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기능을 주로 하면서도, 간단한 바도 있고, 휴식공간도 있으며, 작은 도서관도 있고, 주변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옥상도 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아문단)이 이토이(etoy)라는 아티스트 그룹과 함께 만든 것인만큼, 이 공간은 현재 건설중인 아시아문화전당을 미리 체험해 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장소도 아시아문화전당 공사가 한창인 곳이고, 전시물도 일반인들이 흔히 봐 왔던 예술작품과는 조금 동떨어진 것이었다.

첫 전시회를 이토이 작품들로 한 만큼, 아문단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 등이 그들과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를 장식한 이토이가 어떤 것인지,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었는지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이토이 탱크(etoy.TANKS)


'아시아 문화마루-쿤스트할레 광주'를 방문하면 일단 겉모습부터 특이한 컨테이너 박스 건물을 만나볼 수 있다. 밖에서 보면 단순히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놓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내부는 훌륭한 문화공간으로 꾸며져 있는데, 이 건물 자체가 이토이(etoy.CORPORATION)의 작품이다. 이토이 탱크(etoy.TANKS)라는 이름으로 1998년부터 세계 여기저기에 만들어 온 건물이다.

이토이는 본사를 스위스에 두고 있고, 본사 건물 또한 이런 컨테이너 박스로 지어졌다고 한다. 어디로든 자유롭게 옮겨다닐 수 있으면서도 견고한, 그리고 상업성 또한 완전히 배제되지 않은 공간. 그것이 바로 컨테이너 박스다. 이것은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다고 말 할 정도로, 그들에게는 대표적이고도 중요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이토이(etoy.CORPORATION)


전시실부터가 독특한 이토이는 1994년 스위스에서 조직된 디지털 아티스트 그룹(digital art group)이다.  주로 전자, 전기, 컴퓨터 기술 등을 이용한 작품들을 만들고 활동하여, 세계적인 상도 몇 차례 수상했다고 한다. 'LEAVING REALITY BEHIND'라는 알쏭달쏭한 단어들의 조합이 그들의 핵심 모토라고 한다.

이토이는 1996년에,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검색엔진의 방문자들을 납치(hijacking)해서, 다른 사이트로 가도록 한 사건으로 주목받았다.

일종의 해킹으로 볼 수 있는 그 활동은, 기업이 설계한 인터페이스 이상의 범위로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그리고 권력구조의 취약점과 첨단기술을 이용해, 인터넷 시대의 전복행위란 어떤 형태인가를 보여주었다.








토이워(TOYWAR)


이토이는 1999년과 2000년 사이에, 토이워(TOYWAR)라는 이름으로 거대자본기업과 한판승부를 벌였다.

그당시 이토이는 etoy.com 이라는 도메인 이름을 쓰고 있었는데, 이토이라는 세계적으로 큰 장난감 회사가 도메인 이름으로 싸움을 걸어왔던 것이다. 그 장난감 회사의 도메인 이름은 eToys.com 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유사한 도메인 이름이었는데, 장난감 회사에서는 이토이에게 도메인을 폐쇄하라는 끊임없는 압박을 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급기야 이토이 그룹은 그 압박에 이기지 못해서 잠시동안 웹사이트를 내리기도 했다. 

그 때부터 이토이는 이 큰 기업과 정면대결을 하리라 결심하고, 전 세계적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자신들을 알리고, 홍보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지원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이토이 솔저(etoy.soldier)라는 이름으로 똘똘뭉쳤다.

법정까지 가는 등의 험난한 여정 끝에 결국은 이토이의 승리. 장난감 회사는 그당시 돈으로 (미화) 약 45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잃어야만 했고, 결국 파산했다. '예술 역사상 가장 비싼 퍼포먼스'라고 불렸던 토이워는, 이토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생각으로 작품들을 만드는지 잘 알려주는 사건이라 볼 수 있다. 그들의 정체성이 컨테이너 박스라면, 그들의 철학은 토이워인 셈이다.

이 토이워 작품(혹은 사건)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서 전시되었고, 그들의 홍보용 디스크에서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토이탱크와 토이워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던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관념적인 것이기도 하고, 너무나 반사회적이라는 인식이 있을 수도 있어 그런 것 아니었을까.








이토이 브루드(etoy.BROOD)


'아시아 문화마루-쿤스트할레 광주'에서는 이토이의 여러 작품활동들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게 꾸며 놓았다. 하지만 사진 그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역사적인 사건 혹은 작품들을 보여주는 사진이라, 설명이나 사전 이해가 없다면 딱히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아마도 많은 방문자들이 대체 이 사진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무엇을 말하고자하는 작품인가를 생각하다가 이해하지 못해서, 이 전시가 어렵고 재미없다고 느낀 분들도 많으리라 싶다. 사진은 사진일 뿐이고, 이번에 직접 실제로 볼 수 있었던 이토이 작품들은, '미션 이터너티', '타마타', '이토이 브루드', '주주가치' 등이었다.



그 중 이토이 브루드(etoy.BROOD)는 컨테이너 박스로 둘러싸인 안쪽의 마당같은 공간에 설치된 물체였다. 5세부터 11세까지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도록 정해 놓아서, 성인들은 안쪽으로 들어가볼 수 없다. 

안쪽에 들어간 아이들은 레고블럭 등으로 좁은 공간에서 놀 수 있다는 설명 외에는, 딱히 다른 설명을 들을 수 없었던 설치물.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뱃속과 같은 아늑하고도 편안한 놀이공간을 체험하게 해 주고, 그것을 지켜보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재창조 과정을 지켜보게 하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좀 더 자의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이미 성인들은 판에 박힌 굳은 머리로 이런 아트들을 이해할 수 없으니, 아이들을 끌어들여 든든한 미래의 후원자이자 파트너로 만들어 가 보겠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래서 성인들은 딱히 이해할 필요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마라라는 다소 불친절한 쌀쌀함을 보인 건지도 모른다.
 







파친코


소품 규모라서 그런지 딱히 이름도 알 수 없는 전시물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카지노의 파친코 몇 개를 이어 붙여 만든 작품이었다. 사람들이 호기심에 레버를 움직이면, 안에 있던 구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의 예상치 못했던 사건.

카지노에서 구슬들이 그렇게 쏟아져 나왔다면 '당연히' 기뻐해야만 했을 사건.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받아든 그 구슬들, 예기치 않은 행운이 과연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걸까. 돈을 은유하고 있는 그 구슬들이 바닥에 주르륵 쏟아지면, 사람들은 다시 그것을 줍는다. 주을 수 밖에 없다. 그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행복할까, 비참할까.

그것은 마치, 어느날 길에서 주운 로또가 일등에 당첨되었다면 어떤 기분일까, 또 어떤 반응이고, 어떤 태도일까를 시물레이션 해 보는 것과 비슷하다.
 







미션 이터너티(MISSION ETERNITY, M∞)의 타마다


전시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16개의 하얀 공들이다. 서로 막 움직이며 부딪히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모이기도 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 공들을 타마다라고 하는데, 이 공 하나하나는 제각각 하나의 인격체라고 본다.

공에는 한 사람의 기억과 모습, 행동 등을 인터뷰하고 수집해서 모아놓은 데이터들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미션 이터너티(MISSION ETERNITY, M∞)라는 이름으로, 이토이가 2005년부터 해 온 프로젝트다. 이렇게 모은 데이터로, 한 사람의 데이터를 축소해서 담은 것이 바로 이 타마다라는 공이다.

타마다라는 공을 만든 각 공들은 서로 움직이고 부딪히는 등의 행위를 통해 데이터 교환을 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것은 가상세계(virtual world)를 통한 내세(afterlife), 그리고 그 경계를 넘어선 어떤 것을 연구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한다.

내가 죽은 후에도 나의 데이터들이 남아서, 다른 사람들의 데이터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어떤식으로 변화해 나가거나, 행동을 한다거나 표현된다는 것. 어떻게 보면 신기하면서도 소름끼치면서도 흥미로운, 복잡다단한 느낌을 가지게 해 주는 작품이다.

 






다양한 소품들


전시품 중에는 작가 자신의 머리를 스캔해서 만든 두개골도 있고, 중국 전시 때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가짜돈도 있다. 죽음을 주제로 한 기이한 공간을 둘러보고 나와서 가짜돈을 태우며 명복을 비는(?) 형태로, 관람자들이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게끔 유도하는 장치이다.

또한 이들이 전시해놓은 것들 중에는, 알카노이드 같이 공을 주고 받는 게임이 있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서 게임을 하는데, 한쪽 손은 손 놓는 곳에 올려놓고, 다른 손은 레버를 조작해서 게임을 한다. 이때, 공을 못 받아서 패배를 하게 되면, 손에 전기자극이 온다. 따끔하고 아플 정도로.

이토이는 그 작품을 통해, 현대인들이 즐기는 게임에서 캐릭터의 고통을 플레이어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고 한다. 요즘 게임에서는 기쁨과 희열, 쾌락과 즐거움의 감정만 들어가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한다. 그 속에서 아픔과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가상세계나 현실세계에서 요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 아니겠냐고. 그리고 그와는 별도로, 패배의 느낌은 어떤 것인지를 느끼기 위한 것도 있다 한다.

그 작품의 아이디어가 전세계적으로 법률로 채택되어 의무화되면 어떨까 싶었다. 게임 속의 캐릭터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낀다면, 게임중독이나 그로인한 사회적 문제 등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지는 않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디지털 석관(sarcophagus)


디지털 석관(sarcophagus)은,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하나의 무덤이다. 수많은 LED로 꾸며진 컨테이너 내부에는 여러가지 문양들과 글자들이 쉴세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처음 들어갈 때는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이다가도, 빨간 방석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뭔가 허망하고 안타까워 보이기도 한다. 이윽고 잠이 솔솔 몰려들고 이대로 석관 안에서 잠드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석관은 디지털 시대의 데이터들을 위한 무덤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죽은 후에 나의 디지털 흔적들은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과, 그것에 대한 탐구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죽음과 함께 영원히 보관되고 간직될 튼튼하고 안전한 장치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 

사실 지금 전세계가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자료라는 것들은 불안정하고, 불안전하며,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 당장이라도 정전이 돼 버리면 수많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고장나버리는 하드디스크의 데이터 또한 어쩔 수 없는 것. 그것을 기우라고 치더라도, 먼 훗날을 바라본다면 참 허망한 일이다.

우리는 피라미드나 타지마할, 앙코르와트, 그리고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그 수많은 유적들과 같은, 그런 유물들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특히 디지털 정보를 후세에게 안전하게 넘겨줄 수 있을 것인가. 당장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에, 떼돈을 벌 수 있는 정보가 담겨 있다 하더라도, 그 디스크를 돌릴 수 있는 장비가 없어서 열람할 수 없는 상황.

너무나도 단편적이고, 일시적이고, 즉흥적이며, 일회적인 이 세상에서, 영원을 논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기에 이런 예술로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토이의 미션 이터너티는, 이해하는 데는 좀 어렵지만 참 흥미로운 프로젝트임에는 틀림없다.








IT에 이미 아트가 있었다


이토이의 작품들을 설치미술이라고 할 수도 있고, 키네틱 아트(kinetic art)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전체적으로 디지털 아트 그룹이라는 타이틀을 달고는 있지만, 딱히 디지털적인 것만 선보이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장르의 경계를 무수히 넘나드는 아티스트 그룹이라는 뜻이다.

이토이는 예술작품을 판매하지 않고, 후원이나 설치(이토이 탱크) 등으로 자금을 모은다. 그래서 그룹의 많은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고, 협업을 통해 함께 작품활동을 해 나가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토이는 2006년에 스위스에서 상장기업이 되었다. 이제 그들의 작품 가치는 주가로 평가받고 있다.

언뜻 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작품도 작품이지만, 이토이라는 예술집단과 회사 그 자체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여태까지 봐 왔던 예술가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 그들의 방식, 그들의 작품들은 디지털 시대라는 현대에 하나즘은 있을 듯 한 것이었고, 그런것이 실존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참 반가운 일이었다. 그들은 컴퓨터 기술을 아트로 훌륭하게 승화시켰고, 프로그래밍으로 훌륭한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이토이는 어쩌면 IT직종 사람들에게, 길은 하나뿐이 아님을 알려주는 중요한 표식일 수 있다.



참고자료

etoy 홈페이지 http://etoy.com
위키피디아 etoy http://en.wikipedia.org/wiki/Etoy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홈페이지 http://www.cc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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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