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아트의 서브컬쳐가 대중적일 수 있는가
- '아시아 문화마루-쿤스트할레 광주' 에서
지난 8월 31일 '
쿤스트할레 광주(Kunsthalle Gwangju)'가 개관했다. 공모를 통해 '
아시아 문화마루'라는 한글이름을 덧붙여, 이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업과의 연관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이 만든 이 신개념 문화공간은, 앞으로 이곳에 세워질 아시아문화전당의 프롤로그라 볼 수 있다.
아문단(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은 광주 금남로의 옛 전남도청 터에
아시아 문화전당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2014년 완공될 예정인 이 건물에서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문화를 수집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며, 새로운 것들을 만들고 향유하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바로 그 '아시아 문화전당'을 지으려고 공사가 한창인 이 터에,
아문단은 '
쿤스트할레 광주'라는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아시아 문화전당이 대체 어떤 역할을 할 것이며, 아문단이 추구하는 방향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메타포(metaphor)라 할 수 있다.
쿤스트할레 광주와 플래툰, 그리고 이토이
'
쿤스트할레 광주'는 건축면적 520 제곱미터(158평)에, 연면적 1,019 제곱미터(309평)의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공간이다.
쿤스트할레(Kunsthalle)는 독일어인데, 영어로 풀면
아트홀(Art Hall)이다.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공간은 일단 '
아트가 있는' 곳이다.
광주 쿤스트할레는
플래툰 쿤스트할레라는 아트그룹이 참여해서 만든 것인데,
플래툰은 2000년에 독일 베를린에 유럽본부를 설립하고 활동하고 있는
아트 커뮤니케이션 그룹이다. 전 세계적으로 3,500 여 명의 아티스트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문화적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제각기 다른 직업과 다른 분야의 종사자들이 모여서 문화를 공유하고 창작활동을 하기위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그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 디렉터로 참여해 만든 것이 바로 이 '광주 쿤스트할레'인데, 이 공간에서 처음으로 전시한 것은
스위스 아티스트 그룹인 '이토이(etoy)'의 작품들이다. 이토이 아티스트 그룹은 독특한 형태의 창작단체로, 현대의 테크놀로지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고수하면서, 그들이 만든 작품들을 이용해 대중과 소통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한다.
사실 '광주 쿤스트할레'가 컨테이너 박스 형태로 지어진 것은 이토이 그룹의 영향이 컸다 한다. 이토이 그룹은,
이토이 코퍼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90년대 중반에 조직되었는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컨테이너 박스를 회사 건물로 이용하고 있다 한다. 배에 실려서 세계 여러곳을 떠돌아다니는 컨테이너 박스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한다고 한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의 메타포, 쿤스트할레 광주
아문단 측은
아시아 문화전당을 건립하기 전에,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쇼케이스가 필요했는데, 그때 마침 눈에 들어온 것이
이토이였다고 한다. 플래툰과 이토이가 아문단이 추진하는 사업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기에, 아시아 문화전당이 생기면 어떤 일들을 어떻게 할지 미리 보여줄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한다.
플래툰은 일단 전 세계적으로 아티스트 그룹을 형성해서 운영중인 아트 커뮤니케이션 그룹이다. 이부분은 아문단이 아시아권 아티스트들의 커뮤니케이션 그룹을 형성하려는 것과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이토이의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실험적인 예술 행위들. 이것 또한 아문단이 추진하려는, 첨단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예술활동 지원과 전시, 공연 등에 부합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향후 아문단의 방향을 설정하고, 재정립하는 데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이토이를 통해서 향후 수익사업의 형태 또한 모색하고 탐구해 보는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왜냐면 이토이(eToy)는 아티스트 그룹이면서도, 하나의 회사다. 회사의 주 목적은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고, 아트를 팔아먹는다해도 그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아문단이 영리를 주 목적으로 하지는 않겠지만, 조직은 운영하고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수익창출 부분을 여기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성격을 잘 맞추고, 잘 기획한 것은 참 좋은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있다. 이토이가 보여준 것은 철저한 현대미술이라는 것이다. 이게 미술이냐 싶다면, 그냥 영어로 해서 모던아트(modern art)로 이해하자.
현대의 예술작품들은 아방가르드(Avantgarde)라는 말이 식상할 정도로, 거의 모든 작품들이 전위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말이 좋아 포스트모더니즘이지, 사실은 주체할 수 없는 정신적 공항상태에 이르러 길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며, 계속해서 이건가 저건가하며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것이 바로 현대의 예술들이다.
이토이의 작품들은 이 모던아트 중에서도 상당히 전위적인 축에 속한다. 예술품에 첨단기술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도 증명이 된다. 아주 단적인 예를 들자면, 이토이 작품 중 '미션 이터너티 타마타(mission eternity tamata)'에서는, 작품이 맥북으로 프로그래밍한 소프트웨어로 움직일 정도다. 웬만한 아티스트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기술이고, 웬만한 엔지니어들은 흉내낼 수 없는 창의력이다.
새로운 시도, 참신한 소재, 다양한 분야의 융합, 그리고 테크놀로지. 그런것들 또한 아문단이 추구하는 방향들 중 일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가히 아문단 사업의 메타포라고 하기에는 손색이 없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정말 잘 기획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관람객들이었다.
쿤스트할레 광주와 이토이 작품들을 본 관객들의 반응
출입구에서 몇몇 관람객들을 인터뷰했다. 가장 먼저 돌아온 답변은, "잡지 광고를 보고 오긴 왔는데, 뭔지 모르겠어서 중간에 나가려는 참이다"였다. "뭔가 비엔날레랑 연관이 있는 것도 같은데, 아는게 없어서 할 말이 없어요"라는 답변에서 오히려 내가 참담함을 느꼈다.
광주에서 활동중인 조각가라고 밝힌 한 사람은, "상당히 인상깊고 쇼킹하지만, 작가 입장에서 이해가 잘 안 된다"라고 말했다. 쿤스트할레 내부와 작품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깔끔하고 깨끗한 이미지여서 사진 찍기는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외국인들에게도 이 쿤스트할레에 대해 물어봤다. 영어 선생님으로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다는 세 여성들이었는데, "인상적이고 독특한데, 이해하기는 어렵다"라는 답변이었다. 또다른 서양인 남성 또한, "특별하고 뭔가 다르지만 솔직히 이해는 안 된다"라는 대답을 남겼다.
물론 인터뷰에서 모두 부정적인 말만 나온것은 아니다. "현대미술이 어려워서 도슨트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보아서 즐거웠다. 비엔날레와는 또다른 예술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라는 대답도 있었다.
쿤스트할레와 서브컬쳐
인터뷰를 하면서 크게 느낀 점 하나만 꼽자면, 전시된 작품들을 이해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문단 측에서는 쿤스트할레 오픈 이후에 도슨트를 배치하고 작품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한다. 언듯, 그냥 듣기에는 별 문제 없어 보인다. 신기한 작품이 있고, 도슨트가 설명해주고, 들어서 이해하면 되는 거다. 과연 그런가?
여기서 모던아트에서 말하는
서브컬쳐(subculture)의 특징과 병폐가 나온다. 서브컬쳐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행동양식과 가치관이라는 전체의 문화 내부에 존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부분적 문화를 뜻한다. 예를 들자면 상류계층 문화라는 것, 혹은 농민 문화, 도시 문화, 군대 문화(?), 조폭 문화(?) 등이 모두 서브컬쳐다.
이 정의를 사용하면 모던아트 또한 하나의 서브컬쳐다. 그런데 이 모던아트에서 또 서브컬쳐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독특한 부류와 집단을 분류하거나 묶거나 가르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거두절미하고 복잡한 설명 넘겨서 한마디로 다시 결론을 요약하자면, 현 상황의 모던아트에서 말하는 서브컬쳐는 매니아 문화라는 거다.
아시다시피 매니아 문화는 대중문화가 아니다. 너네들이 이해하든지 말든지 상관 없다, 우리는 우리 식대로 만들고, 우리편끼리 즐기고, 우리 방식대로 놀 거다, 라는 것이 바로 매니아 문화다. 일반 대중을 배척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또 굳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서 뭘 해보겠다고 하지도 않는다.
이번에 아문단에서 한 '광주 쿤스트할레'가 바로 그런 것이다.
만약 주최측이 '광주의 매니아를 모으고 싶었다'거나, '광주에서 매니악한 이벤트를 펼치고 싶었다'라는 의도였다면 상관없다. 결국 아시아 문화전당도 그런 식으로 매니악한 어떤 곳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면 성공이다.
그런데 만약, 대중적으로 알리고 싶었다거나, 문화전당이 대중적인 어떤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릴 의도였다면, 이번 쿤스트할레는 실패다. 차라리 비엔날레와 좀 더 긴밀하게 연계하는 편이 대중들에게 좀 더 호소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말 나온 김에, 최근 이런 문화공연들을 준비하고 운영하는 분들에게 꼭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서브컬쳐는 상류문화가 아니다. 이런 류의 서브컬쳐를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의 문화적 질을 끌어올리고, 수준을 높이겠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그건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아문단이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브컬쳐는 서브컬쳐일 뿐이다. 높은 것도 아니고 낮은 것도 아니다. 학교 안의 동아리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동아리에 들어가면 수준 높은 거고, 들어가지 않으면 수준 낮은 것인가? 그건 아니다. 대중들이 이런 서브컬쳐에 관심을 가지든 안 가지든, 그건 개인들 자유고 선택일 뿐이지, 수준이 낮다든가 문화적인 공감의 폭이 좁다든가 해서는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이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리저리 복잡한 말들을 꺼냈는데, 말하고자하는 내용의 핵심은 이렇다. 서브컬쳐 문화를 내세우며 준비한 전시나 공연에 대중성을 바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문단의 사업 중에 매니악한 부분이 있기는 있다. 문화의 창조 부분은 대중적일 수가 없다. 일반인이 참가한다 해도, 매니아들만 참가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바로 창조다. 그러니 그런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이번 쿤스트할레 또한 굉장히 매니악하게 가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잘 못 느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매니악한 아티스트와 작품들을 펼쳐놓고는, 어정쩡한 대중성을 걸쳐 놓으니 죽도 밥도 안 됐다는 느낌을 받아서 하는 말이다.
아무쪼록 아문단은 이번 쿤스트할레와 함께, 앞으로 해 나갈 수많은 사업들의 성격과 방향을 좀 더 세심하게 잘 조정하고 배분했으면 싶다. 예를들어, 아시아 뮤직 페스티벌이 대중성을 지향한다면, 쿤스트할레는 매니아 층을 공략한다든지 하는 차별적인 전략 수립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모든 사업이 무조건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좀 더 다양하고 재미있고 새로운 시도들을 과감하게 좀 진행해 보셨으면, 하는 당부와 바램을 조심스럽게 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