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을 간직한 미소들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고려가 사라지고 70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사람들은 고려에 대한 기억을 잊어갔고, 결국엔 고려청자를 필두로 한 몇몇 기억 말고는, 찾기도 보기도 힘들어져 버렸다.

고려불화 또한 마찬가지였다. 후삼국 시대의 혼란과 분열을 정리하고, 새로운 통일왕조로 사회를 통합하고자 했던 고려였다. 그래서 사회통합과 저마다의 안녕과 기원을 위해 불교를 숭상했으니, 당연히 불화를 그렸을 거라는 추측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그림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제대로 본 적은 없이 다만 그렇게 문자에 적혀 있는데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의 것, 우리의 것, 목놓아 소리쳤던 것이 부끄러울 만큼, 고려불화를 본 사람 수는 그리 많지 않다.



700년 만의 해후. 그들이 돌아왔다. 수많은 세파와 다양한 시대적 상황들 속에서, 본의아니게 뿔뿔이 흩여졌던 그들.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을 먼저 탓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타향살이. 안타깝게도, 이번 귀환 또한 영원한 귀국이 아니다.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돌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개관 5주년 기념으로 특별히 열리고 있는 '고려불화대전(大展)-700년 만의 해후'. 그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은 700년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 언제 다시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그 오랜 시간을 지나, 그 먼 바다를 건너,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아련한 별빛같은 그들을 한 번 만나보자. 



(좌) 고려불화, 아미타팔대보살도, (우) 일본 중요문화재, 여의륜관음도
(좌) 고려불화, 아미타팔대보살도, (우) 일본 중요문화재, 여의륜관음도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준비기간만 2년, 전 세계에 160여점 뿐인 작품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고려불화대전'은, 한 달 정도의 전시를 위해 준비한 기간이 2년 정도라 한다. 그 2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장은 물론이고, 최광식 박물관장까지 직접 발로 뛰어, 여기저기서 작품들을 빌려왔다.



고려불화는 전 세계에 남아있는 것을 다 합쳐도 160여점 가량이라 한다. 일본에 130여점, 미국과 유럽에 10여점이 소장되어 있고, 국내에 있는 것은 약 10여점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 보고싶다고 아무때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시가 있다 해도 겨우 몇 점만 들여와서 볼 수 있을 뿐이다.

하나하나가 그렇게 귀한 작품들이다보니, 여러나라에서 고려불화를 빌려오는 것 또한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특히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한국에 전쟁이 터지면 작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우려도 있었다 한다. 그래도 어쨌거나 일본을 비롯해서 미국, 유럽, 러시아 등에서 작품들을 빌리는 데 성공했고, 그 노력 덕분에 우리는 한 자리에서 편안히 고려불화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게 됐다.



세계에 160여점 밖에 없으니 다들 명품 중의 명품인 셈. 모든 작품들이 다 소중하고, 저마다의 우여곡절이 숨어 있을 테다.

그 중 이른바 '물방울 관음'이라 불리는 일본 도쿄 센소지(淺草寺)의 '수월관음도'는, 일본 내에서도 좀처럼 공개하지 않아서 실물을 본 한국인이 거의 없다 한다. 그런 것을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직접 가서 절을 하고 모셔왔다 하니, 이번 전시에 쏟은 그의 노력과, 고려불화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좌) 고려의 수월관음도, (우) 서하의 수월관음도
 (좌) 고려의 수월관음도, (우) 서하의 수월관음도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고려불화대전의 구성



'고려불화대전'은 주제에 따라 다시 몇개의 소주제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전시실에 들어서면 어떤 소재와 방법들을 이용해 고려불화를 그렸는지, 또 고려불화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등을 설명해놓은 코너를 만날 수 있다. 그 옆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주제별로 불화들을 잘 분류해놓은 전시실들을 연달아 만날 수 있다. 



부처를 그린 그림과 함께, 그 신앙의 형태들을 다양하게 조명한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는 '깨달음의 존재 부처'.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보살들의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는 '중생의 구제자 보살'. 불제자로서 수행 끝에 최고의 단계인 아라한과를 얻어, 일체의 번뇌를 없애고 지혜를 얻은 성자인 '나한'의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는 '수행자의 모습 나한'.   

나한을 넘어가면 이제 고려를 살짝 벗어나게 된다. 우리의 고려시대와 동시대에 중국과 일본에는 어떤 불화들이 그려졌는지 살펴볼 수 있는 '이웃 나라의 불보살'. 특히 이 전시구역에서는 러시아의 박물관에서 빌려온 서하시대 불화들을 볼 수 있다. 고려불화의 기원을 서하(西夏)로 보고 있지만, 학자들마저도 그 서하시대 진품을 본 사람이 없다 한다. 그런 귀중한 작품을 일반인들도 편히 볼 수 있는 기회이다.

끝으로 '전통의 계승'에서는 고려불화가 어떻게 전통을 이어가면서 변화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조선시대 불화들로 전시를 마무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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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세심한 구성의 묘미가 느껴지는 전시



특히 이번 전시는 고려불화전이라고 해서, 그림들만 덜렁 전시하고 있지는 않다. 비록 양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지만, 고려시대 유물들과 조각품들도 전시해 놓고 있다. 이 전시품들은, 다들 엇비슷한 불화들을 보면서 자칫 지루하고 따분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다시 흥미롭게 바꿔주는 데 한 몫 하고 있다. 당연히 불화만큼이나 볼만 한 유물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불화들의 어떤 점을 주목해서 보면 좋을지 설명해놓은 판넬과, 각 작품마다 쓰여져 있는 간단한 설명들도 관람을 돕고 있다. 특히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 그림들의 일부분을 판넬에 정리해서 깨끗한 그림으로 볼 수 있도록 한 부분은, 이 전시를 얼마나 세심하게 정성들여 준비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다.



얼핏보면 다 비슷한 그림으로 보일 수도 있고, 보관상태와 조명 문제로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는 그림들도 있다. 그러니 이번 전시에서만큼은 꼭, 큐레이터와 함께 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오디오 설명이라도 권하고 싶다. 언제 다시 찾아올 지 알 수 없는 기회를, 그냥 그랬다라는 인상을 남기고 돌아가면 너무나 안타깝지 않을까.

또한 한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자면, 앞서 밝혔다시피 이 작품들은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작품들이다. 그래서 사진촬영을 엄격히 금하고 있기 때문에, 미리 숙지하고 주의를 하셨으면 한다. 이 블로그에 게시한 사진들은 모두, 국립중앙박물관 측의 허락을 받고 촬영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서하의 수월관음도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서하의 수월관음도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서하시대 수월관음도 앞에서 되새긴 그 마음들



고려불화들의 미려한 선과 은은한 색깔과, 시대를 넘어서도 풍겨져 오는 따스한 온기 같은 것들에 감탄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많은 불화들이 내 눈길을 끌어가서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불화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관심있게 본 것은 바로 서하시대의 수월관음도였다.

현재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을 빌려왔다는 서하시대의 수월관음도.  내 짧은 식견으로 보아온 불화들에 비해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기도 했거니와, 지금 티베트 승려와 불교의 모습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는 그림처럼 보여서 더욱 눈길이 갔다.



티베트 승려들의 휘날리는 인상적인 승복과 함께, 사원 안에서 낮고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경 읽는 소리. 그리고 따라서 암송하는 수많은 소리들의 울림과, 그 서늘한 사원 내부를 비추는 따스한 햇살. 큰 가마솥에 밥 짓는 모습과 물 긷는 모습. 어린 동자승의 해맑은 웃음과, 청년들의 즐거운 장난들.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들과 토론하는 모습들. 그리고 뒤돌아보며 웃던 그 기억들이, 오래오래 내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겨우 여기저기 구경 다니느라 치친것 뿐인 여행자에게, 말도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으로 차 한 잔 대접하는 고승의 모습에서 느꼈던 정겨움. 공부하는 자들은 어떤 상황에도 집중을 해야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들어와도 상관없다며, 설법시간 중간에도 흔쾌히 출입을 승락해준 그 사원의 따스한 햇살.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주어진 얼마되지 않는 밥을 내게 나눠주던, 그 어린 동자승의 눈에서 보았던 해맑은 웃음.
 


생전 처음 보는 그림이 내게 그런 기억들을 꺼내주고 다독거리며,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라고 말 하는 것 같아서 눈물이 핑 돌뻔 했다. 어쩌면 그 시대 사람들이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불화를 그렸던 이유를, 또 그 불화를 보려고 했던 이유를, 십분의 일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수월관음도 (물방울 관음)
일명 '물방울 관음'이라 불리는 이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는 이번 전시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700년의 세월을 마음으로 느껴보자



다들 저마다의 기억이 있고, 추억이 있고, 사연도 있고, 이런저런 일들도 있을 테다. 그리고 저마다 위로받는 대상도 다른테고, 위안받을 방법도 다를테고, 혹은 딱히 그런 것 생각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지금껏 잘 살아 왔다고 따스한 위로 한 마디는 언제든 필요한 법. 무뚝뚝한 주위 사람들이 그런 말을 건내기 쑥스러워 한다면, 또 부끄러워 그런 속마음을 내비칠 수 없다면, 700년 만에 방문한 편안한 손님들 앞에서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귀한 작품들이 왔다고 꼭 우리의 옛것을 봐야한다는 의무감에 이런 곳을 간다면, 혹은 다시는 이런 기회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으로 찾아 간다면, 엇비슷한 작품들을 눈 앞에 놓고 자칫하면 지루함에 별 거 아니더라 한 마디만 남기고 돌아올런지도 모른다. 제 아무리 훌륭하고 귀중하고 대단한 작품이라 해도, 나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내게 어떤 의미가 되지 못하는 작품이라면, 그저 수많은 스쳐지나는 인연 중 하나일 뿐.

이번 '고려 불화 대전'에 가서는, 마음 통하는 인물을 하나 찾아보자. 다들 인자한 미소를 띄고 있기에, 그 누구를 선택하더라도 말을 걸면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다. 혹시 딱히 말을 걸 대상이 없다 하여도, 그 따스한 온기, 그 차분한 미소, 그 편안함을 한 번 느껴보자. 어째서 이들이 그토록 귀한지, 어째서 그들이 고려와 별 상관도 없는 나라에서 그렇게 모셔지고 있는지, 눈과 귀를 벗어나 마음으로 한 번 느껴보도록 하자.




* 전시기간: 2010년 10월 12일(화) ~ 11월 21일(일) 

* 관람시간:
 - 화·목·금요일 : 09:00~18:00
 - 수·토요일 : 09:00~21:00
 - 일요일/공휴일 : 09:00~19:00
 - 11월 15일 월요일 특별개관.

* 입장료: 1,000 ~ 3,000원

* 참고 사이트
 - 국립중앙박물관 http://www.museum.go.kr

 - 세 번 절하고 고개 들어 그 그림을 보았습니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에세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02/2010110201920.html

 - "이 그림은 부처님, 밖으론 못나가" 그랬던 스님이 몇 달 만에 드디어…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07/20101107010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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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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