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9일부터 24일까지 홍대 서교예술실험센터 지하1층에서, '세계 퍼포먼스 아트 미디어 아카이브'전이 열렸다. 이 행사는 전시회 형태로 마련되었는데, 라트비아, 영국, 이스라엘, 일본, 핀란드, 한국을 포함한 총 10개국 37개 작품이 상영되었다.
전시회 주최는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이었다. 한국실험예술정신은 매년 홍대에서 '한국실험예술제(KEAF)'를 주최하는 곳이기도 하고, 홍대앞에 '씨어터제로(theater0)'라는 곳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세계 퍼포먼스 아트 미디어 아카이브'전이 열리기 이전에, 블로거들을 초청해서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들을 감상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름 서브컬쳐(하류문화?)에 관심을 좀 가지고는 있었지만, 퍼포먼스 아트에 대해서는 아주 무지한 상태. 이 자리에서 개인적으로는 보고, 듣고, 배운 것이 꽤 있었다.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초청해 준 주최측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행사와 퍼포먼스에 대한 이야기는 참 풀어내기가 난감하다. 그렇다고 포스터 한 장 떡 붙여놓고 홍보를 해 주는 스타일은 또 아니다. 그래서 머리를 싸매다가, 이렇게 잊고 넘어가면 발전이 없겠지 싶어, 마음가는 대로 주절여보려 한다.
퍼포먼스(performance)를 사전적 의미로 풀어보면, 완결된 작품을 보여 주기보다는 우연성이 뒤섞인 표현 행위 자체를 작품화하려는 시도의 총칭이다.
대체로 미리 정해진 대본 없이, 미술, 음악, 육체 표현 등의 모든 표현수단을 동원해서 일회적 표현을 한다. 그리고 그 속에 관객까지 참여시켜, 창작의 과정을 함께하는 형태를 띄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표적인 퍼포먼스 아티스트로는
존 케이지, 백남준 등이 있다. 존 케이지의 '
4분 33초'라는 작품은 대표적인 퍼포먼스 아트 작품이라고 할 만큼 유명하다.
예전에 '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TV드라마를 보신 분이라면, 이런 장면 기억 나실테다. 강마에가 시장의 요구로 굴욕적인 연주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관객들 앞에 나가서 지휘봉을 들고 가만히 서 있던 장면. 악기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군중들이 영문을 몰라 웅성거리는 장면이 펼쳐졌다.
그 장면에서 연주(?)한 작품이 바로 존 케이지의 '4분 33초'다. 아티스트는 장소와 분위기만 마련해주고, 실제 연주는 관객들이 하는, 그래서 관객이 곧 연주자로 공연에 참여하게 되는 형태. 그 4분 33초 동안 공연장 안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가 바로 음악이라는 의미. 이 작품은 클래식 작품으로도 통하지만, 퍼포먼스 작품으로도 꼽힌다.
이런 퍼포먼스 장르는 사실, 시간 날 때마다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좀 생소한 분야다. 가끔 길거리에서 이상한 짓(?)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저게 대체 뭔가 하고 조금 지켜보다가 지나갈 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의미는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특히 홍대는 이미 이런 퍼포먼스들을 모아서 매년 행사를 연지 이미 십 년 째에 접어들고 있다. 올해도 홍대 앞 일대에서 7월 말경 펼쳐진
한국실험예술제(KEAF)가 바로 그것이다. 올해 9회째 행사가 이미 끝났고, 내년에는 10회째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이 행사를 주최한 한국실험예술정신은, 내년 10회 행사를 맞이해서, 한국의 퍼포먼스 10년을 정리하고, 공론화하며, 알리고 싶다는 의지에서 이런 행사를 기획했다고 한다.
한국실험예술정신 측은 일단 퍼포먼스와 퍼포먼스 아트의 정의부터 다르게 내렸다. 퍼포먼스는 관객들이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형태인 반면, 퍼포먼스 아트는 능동적인 참여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퍼포먼스 아트는 아티스트와 관객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리얼리티를 더욱 고조시킨다고 한다.
사실 퍼포먼스건 퍼포먼스 아트건, 일반인들이 보기엔 별 다르지 않다. 다만
퍼포먼스 아트(performance art)라는 용어는, 퍼포먼스를 예술에서의 위치를 획정하기 위한 노력이라 볼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형태를 표상할 수 있는 특정한 의미의 영역으로 규정짓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해도 기존 퍼포먼스가 가진, 탈 장르적, 탈 획일적 모호한 경계와 다양한 시도들이 달라지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한국실험정신 측은 퍼포먼스 아트를 또 다섯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그 다섯가지는 아래와 같다.
개념 퍼포먼스: 보이지 않는 이면의 개념을 중시함.
상징 퍼포먼스: 작가의 사고, 감각 체계에서 발현되는 자각적, 무의식적인 미적 세계를 보여줌.
미디어 퍼포먼스: 디지털 기술과 예술의 결합, 사운드 아트의 즉흥적 연주로 나타나는 형태.
제의 퍼포먼스: 샤머니즘을 통한 축제적 의식이 구현됨.
하드코어 퍼포먼스: 신체 상해, 파괴 등 가학적 방식 동원, 누드의 실재 영역을 제시하는 형태.
이번 '세계 퍼포먼스 아트 미디어 아카이브'전에서 행사를 진행했던 분이, 행사를 끝내며 이런 말을 남겼다.
"퍼포먼스라는 것이 사실 익숙치 않고, 낯설고 지루한 느낌도 있다. 그리고 더러는 대중이 좋아하지 않을 내용들도 있다. 하지만 음식도 맨날 먹는 음식이 질려서, 다른 음식도 한 번 먹어보고 싶을 때가 있듯, 예술 장르 또한 그럴 때가 분명히 있을 테다. 그런 의미에서 퍼포먼스 아트 쪽도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면, 모르고 있던 것을 새롭게 발견하고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테다."
예술이라는 것이 다 마찬가지지만, 특히 퍼포먼스는 관객이 중요하다. 특히나 관객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원하는 작품이라면, 관객은 정말 중요한 예술도구 중 하나이다. 그들이 없으면 작품 자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술작품을 좀 더 재미있게, 능동적으로 즐기려는 생각이 있는 분들이라면 '퍼포먼스 아트' 쪽에도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사실 '재미있게 즐기고 싶다'라는 바램에 장르따윈 별 상관이 없을 테니까.
최근 한국실험정신(KoPAS)에서 또 다른 퍼포먼스 행사를 준비했다.
씨어터 제로(theater zero)에서 열리는 '
2010 DANCE 2000 FESTIVAL'이다.
2010년 11월 11일부터 11월 21일까지 홍대 씨어터제로에서 열린다.
참고사이트
씨어터 제로(theater zero) 홈페이지(
http://theater0.com)
댄스 2000 페스티벌(11월 11일~21일) 안내 페이지
9회 한국실험예술제 홈페이지(
http://www.keaf.co.kr/)
서교실험예술센터 카페(
http://cafe.naver.com/seoulartspace/)
한국실험예술정신 홈페이지(
http://www.kopas2000.co.kr/)
'세계 퍼포먼스 아트 미디어 아카이브'전 다른 블로거의 포스팅:
http://blog.naver.com/garden_soap/115720442
덧붙이는 말
여기까지 '세계 퍼포먼스 아트 미디어 아카이브'전에 대해 소개를 했지만, 사실 일반 관람객들은 이런 분류에 별 관심도 없고, 알고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사실 딱히 몰라도 상관 없는 부분이다.
제이슨 므라즈의 음악이 좋으면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그의 음악 장르가 팝이건, 댄스건, 테크노건, 판소리건, 그딴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거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전시회는, 이미 퍼포먼스에 어느정도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크게 흥미를 끌 만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단지 한국실험정신 측이, 한국에서 펼쳐진 퍼포먼스 아트 10년을 정리하고, 분류해서, 체계화 시켰음을 보여줬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아야 할 테다. 그 자료들을 DVD로 만든 것까지도 좋긴 한데, 솔직히 그것이 많이 팔리지는 않으리라. 누가 봐도 지금 상황에선 뻔하다. 차라리 이렇게 분류한 퍼포먼스 자료들을 인터넷에 쫙 풀어버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러면 그래도 어느 정도 관심을 끌 수는 있을 테니까.
사실 이번 블로거 초청 행사에도 참여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마도 주최측은 우리나라의 현 시점에서 퍼포먼스라는 예술장르에 대한 인식과, 사람들의 관심을 탓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부분에 문제가 있긴 하다. 내 주위에도 연극표가 있다고 해도 지루하다고 안 간다는 사람이 수두룩하니, 퍼포먼스는 오죽하랴.
하지만 그 이전에 주최측, 한국실험정신 측의 문제도 상당히 크다는 것을 지적해 주고 싶다. 자잘한 것들은 다 떼고 딱 두가지. 대체 이 행사가 뭘 하려는 행사인지 알 수 없다는 것과, 무엇을 홍보하고 싶은지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 듯 하다는 것.
'세계 퍼포먼스 아트 미디어 아카이브'전의 경우는 메일을 받았을 때는 물론이고, 모임에 참가하고 나서도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전시회라곤 하는데 일반인들이 찾아왔을때 어떤 것들을 어떤 형식으로 볼지 도무지 감히 안 잡혔다. 윤곽을 그릴 수가 없으니 섣불리 소개하고 추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2010 DANCE 2000 FESTIVAL'도 마찬가지다. 주최측이 보내온 것은 달랑 포스터 한 장. 솔직히 나 자신도 이게 뭐 하는 것인지 모른다. 알 수 없다. 보는 사람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일테다.
뭔가 호기심을 느껴 홈페이지를 방문해봐도 아무것도 없다. 그냥 보고 올테면 오라는 식이다. 뭔가 재미있겠다는 느낌이 들어 관련된 상세자료를 찾아봤지만, 없다. 행사에서 입장료를 받는지 안 받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래놓고 사람들이 오길 바라다니, 화가 날 지경이다. 사실 화라도 내면 다행이다. 그것보다 무서운 건 무관심이니까.
게다가 이런 행사를 마련하고, 이런 홍보물을 보내 주면서 대체 어떤 부분을 홍보하고 싶고, 어떤 부분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인가 등을 고민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런 고민을 해서 행사를 만들었으리라. 행사에 가보면 굉장히 많이 노력한 흔적을 찾아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어쨌든 그건 일단 행사에 가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제 아무리 피를 깎는 노력을 해서 뭔가를 만들어도, 알려지지 않으면 그 뿐. 특히나 이런 행사는 최소한의 사전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포스트 한 장 달랑 보고 찾아갈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야말로 낚싯대 들여놓고 기다리는 것 뿐이다.
작가와 작품은 불친절하더라도, 기획사는 그러면 안 된다. 그리고 행사 자체에 아무리 공을 들이부었다 하더라도, 알려지지 않은 행사는 실패한 행사일 뿐이다. 아무쪼록 주최측과, 그리고 이런 행사, 혹은 각종 문화공연, 또 리뷰를 부탁하시는 분들은 이런 사실들을 좀 알았으면 싶다. 말을 꺼내려고 해도 꺼낼 껀덕지가 없는 걸 어떡하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