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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휴일에 디자인 나들이 - 서울 디자인 한마당 2010, 잠실종합운동장전시 공연 2010. 9. 29. 17:52
서울 디자인 한마당(Seoul Design Fair)은 서울특별시가 세계 산업디자인단체 협의회(ICSID)가 선정하는 세계디자인수도(WDC) 사업에 2010년 사업 도시로 지정되자, 국제적인 디자인, 문화 중심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마련한 도시 기반의 종합 디자인 이벤트이다.
서울특별시의 구상에 따르면, 이 행사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새롭게 부각시키고, 도시가 중심이 되어 디자인을 활용하여 경제를 발전시키며, 디자인을 통해 문화를 풍요롭게 하고, 시민의 삶의 질을 개선해나가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고 한다.
매년 개최를 목표로 2008년부터 서울 잠실종합운동장과 서울도심에서 개최되었는데, 처음에는 서울디자인올림픽(Seoul Design Olympic)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올림픽(Olympic)'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그래서 2010년에는 명칭을 '서울디자인 한마당(Seoul Design Fair)'이라 바꾸고 9월 17일부터 10월 7일까지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나름 올림픽 경기장에서 연다면서, 디자인 올림픽이라는 이름도 붙여봤지만 무산되고. 어쨌든 행사는 아직도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열리고 있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어디선가 불쑥불쑥 나타나는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저 위에 서 있는 꼬마는 알까, 호돌이가 이미 스물두 살 이라는 것을.
이번 행사는 잠실종합운동장 외에도, 서울의 네개 구역에서 동시에 펼쳐진다. 4대 디자인 클러스터라고 이름붙은 이 지역은, 마포홍대지구, 동대문DDP지구, 구로디지털지구, 강남 신사동 지구이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디자인한마당 공식 홈페이지 참고. (http://sdf.seoul.go.kr/)
몇 번 본 사람들이야 이제 익숙한 풍경인데, 처음 가 본 사람들이라면 운동장을 이렇게 꾸며놓았다는 것에 신기함을 느낄 수도 있다. 점점 갈수록 전시관도 많아지고, 전시 규모도 조금씩 커지는 것 같은데, 이상한 것은 전시품은 그에 맞춰서 점점 더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 뭔가 사정이 있겠지라고 짐작할 수 밖에.
디자인한마당이 펼쳐지는 경기장 입구에서 팜플렛을 나눠준다. 그 팜플렛에는 각 구간마다 이름을 붙여놓고 뭐라뭐라 설명을 해놨다. 도시 디자인전, 한중일 생활전, 푸드 디자인전, 서울국제디자인 공모전 등, 나름 이름을 붙여놓고 제각기 뭔가 특색있는 구역을 설정하려고 애 쓴 모습은 보인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선 그런 것 딱히 신경 쓸 필요없다. 그냥 운동장을 안으로 한 바퀴, 밖으로 반 바퀴 돌기만 하면 다 볼 수 있다. 딱히 꼭 찾아서 가야만 하는 구역도 없고, 딱히 주목할만 한 구역도 없다. 전체적으로 돌아다니면서 개인적 취향에 맞는 부분에서 발걸음을 멈추면 그만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건 현대미술이 아니니까 딱히 어렵다거나 해석을 해야 한다거나 그런 것이 없으니, 그냥 편하게 보면서 지나가면 된다는 것.
"올해는 마켓기능과 함께 산업디자인 전시를 한층 더 강화해 디자인이 곧 돈이 되는 장으로 마련했다. 해외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참여하는 서울디자인마켓에서 디자이너들은 자체 브랜드와 제품을 홍보, 판매하며, 시민들은 현장에서 직접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라고 소개 돼 있지만, 막상 가보면 일상에서 언제든 살 수 있는 물건들을 팔고 있을 뿐이다. 딱히 기대는 하지 말고, 나른한 오후 산책삼아 놀러 간다는 느낌으로 가시기 바란다.
산업디자인을 끌어들였다고해서 가봤더니 떡하고 버티고 있는 갤럭시 에스. ㅡㅅㅡ;;;
그래도 나름 재미있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기는 하다. 일상에서 볼 수 없었던, 혹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꽤 있으니, 미감을 어느정도 충족시키는 데에는 손색이 없다.
다만 이 작품들이 미술품인지 디자인 제품인지 헷깔리는 것이 있다는 게 흠. 물론 아티스트들이야 그걸 작품으로 생각하고 만들었을 수도 있고, 패션계처럼 메타포라고 내놓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디자인이라는 것은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예쁘면서도 고유의 용도를 잃지 않고, 실용성과 편리성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디자인이 예술작품보다 어려울 수도 있는 것. 그런데 그런 점들을 싸그리 무시하고 예쁘게만 만든다면 그게 과연 디자인이라 할 수 있냐는 의문.
안그래도 세상 고민 다 짊어지고 있는데, 또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며 걷고 있었다. 이윽고 빛이 쏟아져 나오는 통로. 꺅꺅거리며 즐겁게 놀고 있던 세 명의 여중생(으로 보이는 꼬맹이들) 중 한 명이, 통로에 벌러덩 누워서 친구들에게 자기 사진을 찍어 달란다. 그래, 저게 정답일 수 있지.
뭐, 파고들면 한도끝도 없을건 뻔한 이치니까, 어차피 무료관람인 거, 저렇게 한순간 즐겁게 즐기고 끝내면 이 또한 아름답지 아니한가. (물론 서울 시민들에게 이 행사가 완전 무료라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는 것 뿐)
입장할 때 나눠준 책자에는 QR코드들이 잔뜩 붙어 있었는데, 여기도 막상 작품 설명판에는 그런 것이 안 보였다. 아직은 우리가 꿈꾸던 최첨단 21세기가 펼쳐지지 않은 모양이다. 언젠가는 다섯살짜리 꼬마가 스마트폰이나 타블렛 PC를 들고, QR코드를 인식시켜서 작품 설명을 들으며 스스로 학습을 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그날이 오면, 박물관에서도 메모지에 빼곡히 깨알같은 글자를 적어넣는 어린이들의 수고를 엄청나게 덜어줄 수 있을 테다. 기술이란, 디자인이란, 그러기 위해서 있는 것 아닐까.
운동장 잔디밭에는 조립식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날리는 가족들이 꽤 보였다. 어디서 가져왔나 했더니 '디자인 마켓' 코너에서 사 온 것이었다.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라면 이렇게 휴일 한나절을 보내도 괜찮을 듯 싶었다. 예쁘게 꾸며진 운동장은 마치 하나의 공원같은 분위기이기도 했으니까. 굳이 비싼 놀이공원 가지 않아도, 함께라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공간이다.
이번 '서울 디자인 한마당'에서 좀 이상하다 싶었던 부분은 바로, 경기장 통로 부분이었다. 잔디밭 깔린 안쪽 말고 경기장 외곽으로 나 있는 통로부분에, 작년에는 국내외 업체들과 학교들의 작품전시들이 가득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게도 참여한 업체 수나 학교 수가 예년같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점점 체계가 잡혀가고 있는 것도 같고, 어떻게 보면 점점 행사가 빈약해지는 것도 같고. 아직 내 머리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작년과 비슷했던 것은 아직도 통로에 불쾌한 냄새가 난다는 것. 오래 있으면 머리가 띵할 정도.
대학의 한계일까. 각 대학 부스들은 매년 엇비슷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이젠 굳이 애써 발길을 옮기기도 귀찮을 지경. 그래도 혹시나하고 발품을 팔아보면, 저번에는 없었던 새로운 것들이, 혹은 좀 더 나아져서 눈길을 끄는 것들이 간혹 있긴 있다.
아프리카를 소재로 한 문구용품 디자인은, '대학 탐구전'에서 가장 내 눈길을 잡아 끈 작품이었다. 실제로 판매가 되고 있는 건지, 그리고 판매가 된다면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일정액이 쓰여지는 건지, 자세한 이야기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저런 시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인 일. 조금 더 이야기를 만들고 스토리를 붙이면 충분히 상품성도 있고, 매니아 층도 생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 쳐도 좀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행사. 씁쓸하게 돌아나오니 야구장엔 사람들 함성이 와글와글. 경기 시작 전에 팔다남은 치킨을 싸게 해 준다길래 덜렁 사들고 돌아오는 길. 그래, 디자인이고 뭐시고, 일단 먹는게 중요한 거지.
심심한 휴일 날, 멀리 가기는 귀찮고, 그렇다고 집에 있자니 갑갑하고, 뭔가 아름답고 예쁘장한 것들을 보고싶은 사람들은 한번 즘 찾아가 볼만 함.
집에 가는 길은 썰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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