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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틱 아트로 공학과 예술의 벽을 허물다 - 테오얀센 전, 국립과천과학관전시 공연 2010. 10. 10. 03:18
국립과천과학관, 테오얀센전
테오 얀센 (Theo Jansen)
'21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현존하는 최고의 키네틱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붙은 '테오 얀센(Theo Jansen)'.
네덜란드 헤이그의 작은 해변마을에서 태어나, 물리학을 전공하고 화가의 길을 택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움직이는 예술작품을 뜻하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에 주력한 것은 1990년부터였다. 키네틱 아트에 주력하면서 테오 얀센은,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인 '해변동물(strandbeest)' 시리즈를 만들어 냈다.
플라스틱 파이프와 비닐을 이용해, 마치 공룡 뼈대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해변동물 시리즈. 놀랍게도 이 작품들은 모양만 그럴듯 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불린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진화를 하며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학과 예술의 장벽을 허물고, 그 사이에서 독특한 영역을 구축해낸 테오얀센은, 2006년 BMW 광고를 통해 세상에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과 공학 사이의 장벽은 우리 마음에서만 존재한다".
아니마리스 쿠렌스 벤토사(nimaris Currens Vantosa). 벽에 붙어있던 동물이 스스로 걸어서 관객들에게 다가왔다.
아니마리스 쿠렌스 벤토사(nimaris Currens Vantosa)
13,000원이라는 입장료 때문에 마지막까지 망설임은 있었지만, 일단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거대한 뼈조각같은 것들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기본적인 지식도 없이 그냥 찾아갔던 탓에, 처음에는 이 작품들이 움직인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저 거대하고 신기한 전시물들이 있다길래 호기심이 일어, 알 수 없는 끌림에 무작정 찾아 들어갔던 전시장. 마침 전시장 안쪽에서 작품 하나를 실제로 움직이며, 설명도 해주고 있었다. 냉큼 달려가서 사람들 틈에 끼었는데, 생소한 작품에 얽힌 내용들도 놀라웠지만, 이 거대한 물체가 움직인다는 것에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시연을 보여준 이 작품은, 이제 거의 죽을 때(?!)가 다 된 작품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장소가 협소한 실내라서 그런지, 유연한 움직임을 보여주진 못했다. 동영상에서 보이는 것처럼 시원시원한 움직임 또한 기대할 수 없었다. 그저 날개 퍼덕퍼덕 움직이는 것과, 다리로 약간 걷는 것을 보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을 뿐.
하지만 이런 물체가 움직인다는 것, 그 움직임을 실제로 본다는 것 자체만 해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제서야 작품을 자세히 보니, 각 마디, 각 관절들이 정말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람을 받아 움직이는 날개와, 그 동력을 전달하는 장치들. 발을 움직이게 하는 각 전달부와 관절들, 그리고 바람을 저장하는 장치까지. 정말 하나의 생명체같은 모습과 움직임이었다.
'아니마리스 쿠렌스 벤토사'라는 이름의 이 생명체(!)는, 원래는 날개로 바람을 받아 움직이는 작품이다. 바람을 받으면 발이 움직이는데, 이때 등에 있는 40개의 페트병에 공기가 저장되는 방식. 그리고 이 저장된 공기는 바람이 안 불 때 꺼내 쓸 수 있다.
실내에서는 바람이 불지 않으니까, 이 페트병에 인위적으로 공기를 저장해서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시간간격을 두고 사람들에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놀랍게도 3시간을 충전하면 4~5분을(!) 움직인다고 한다.
BMW 광고를 위해서 특별히 만든 작품. 부드러운 움직임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키네틱 아트(Kinetic Art)
테오 얀센의 '해변의 동물들' 작품 시리즈는 모두 '키네틱 아트' 장르의 예술품이다. 키네틱 아트(Kinetic Art)는 작품 그 자체가 움직이거나, 작품에 움직이는 부분을 넣은 예술품을 말한다. 키네틱 아트는 단순히 움직임을 표현하거나 변화를 나타내는 것과는 다르다. 대체로 조각형태로 실제로 움직이는 물체를 보여주는 형태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모빌'이라는 작품을 키네틱 아트 최초의 작품으로 꼽는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표현해서, 자전거 바퀴 하나 덜렁 갖다놓고 전시한 작품이다. 전시된 그 자체로는 움직이지 않으므로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손으로 움직이면 바퀴가 돌아가므로 움직이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작품이 움직인다는 의미에서 나름(?)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그 후 '나움 가보(Naum Gabo)'라는 조각가가 '키네틱 스컬프처(Kinetic Sculpture)'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이 사람은 그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금속판, 플라스틱, 나일론 등으로 작품을 만들었고, 그런 소재들로 공간에서 움직임이 보이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는 기존의 3차원적 예술품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4차원적 예술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대표적인 예술가다.
나중에 '라슬로 모호이너지'라는 사람이 이러한 움직이는 작품들을 '키네틱 아트(Kinetic Art)'라고 부르면서, 이 작품군들은 예술작품의 한 장르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키네틱 아트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기 전까지 그런 작품들은, 단순히 '움직이는 조각품' 정도의 독특한 예술작품 정도로만 취급되었다. 하지만 키네틱 아트라는 장르가 생기면서, 의식적으로 그런 작품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중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Stirling Calder)의 일군모빌이나, 장 탱글리(Jean Tinguely)의 기계조각 등이 유명하다.
테오얀센은 그런 예술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현재 전시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이 모두 키네틱 아트이지만, 이것 말고 또 다른 키네틱 아트를 한 번 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Kinetic sculpture at the BMW Museum (You Tube)
친환경 작가의 친환경 작품
테오 얀센의 작품들은 주로 바람을 동력으로 움직인다. 네덜란드가 원래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고, 또 바닷가에서 주로 이 작품들을 작동시켰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다. 물론 바람은 무공해 자원이기도 하고, 무한대로 공짜로 제공되는 에너지이기도 하다.
그런 친환경적 작업을 통해 환경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공로로, 2009년 7월 유엔환경계획(UNEP)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그가 작품에 주로 사용하는 것은, 네덜란드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노란 플라스틱 관이다. 한국에선 주로 청회색인 그 플라스틱 관. 비록 버려진 것을 재활용 했다고는 하나, 플라스틱을 이용했는데 친환경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그 자신도 그런 고민을 해서, 몇번은 나무판자를 이용해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나무판은 '해변의 생물'이라는 주제에 너무 안 맞는 소재였다고 한다. 바닷물이 닿으면 썩기도 하고, 팽창하기도 해서 금방 부숴져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플라스틱 관으로 만들고 있는데, 지금도 계속 다른 소재들을 고민중이라 한다.
참고로 날개로 쓰여진 비닐은 한국에서는 절대로 구할 수 없는 비닐이라고 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널리 쓰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썩는 비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작품에 날개로 쓰여진 비닐은 이미 많이 상해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테오얀센이 작업에 쓰는 도구들도 전시되어 있다.
아니마리스 루고수스 페리스탈티스. 쐐기벌레 모양으로 벌레처럼 몸을 움직이며 전진한다.
진화하는 작품들
테오 얀센은 이 해변동물들을 오랜 기간동안 제작해왔는데, 특정 시기에 제작기술이라든가 움직임 방식 등에 큰 변화가 있을 때는 세대가 변한 것으로 정했다.
예를들어, 열풍기를 이용하여 플라스틱 관을 구부린 시기는 4세대의 '칼리덤(Calidum)기'였다. 그런데 고온으로 구부린 관절이 잘 부서지자, 이것을 저온으로 구부리는 방법을 도입했다. 이 방법을 도입하면서 세대가 바뀐 것으로 하고, 이름을 '테피뎀(TEPIDEEM)기'라고 이름 붙였다.
그 후 6세대 '리냐툼(Lignatum)기'에는 무게가 2.5톤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의 '해변동물'이 등장했는데, 이 시기에는 사람이 탑승할 수 있는 작품도 등장했다. 큐레이터가 말해준 여담에 따르면 이 작품이 아직 있기는 한데, 한번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소음이 발생해서, 주민들의 항의와 신고를 받기도 했다 한다.
처음에 이 전시에서도 사람이 탑승할 수 있는 '아니마리스 리노체로스 트란스포르트(Animaris Rhinoceros Transport)'를 들여오려 했다 한다. 그런데 그 엄청난 크기와 무게를 도무지 운송할 방법이 없어서 포기했다고.
어쨌든 이런식으로 테오얀센의 '해변의 동물들' 작품 시리즈들은, 마치 공룡 연대기처럼 세대를 이어 진화하는 개념으로 계속해서 대를 잇고 있다. 지금은 8세대의 작품들이 제작되고 있는데, 이번 세대 해변동물들은, 위험요소를 인식하고 스스로 방어할 뇌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설명에는 그렇게 돼 있지만, 8세대 해변동물들이 실제로 어떤 컴퓨터 장치같은 뇌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람이 강하면 멈추어 선다든지, 축축한 모래에 빠지면 관절이 손상될 수 있으므로, 그것을 감지해서 뒤로 돌아나가는 장치 정도가 갖추어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원리이고, 장난감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진화'가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작가가 살아있을 동안은 계속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나가지 않을까. 이 해변동물들이 어디까지 진화를 해 나가는지, 관심을 가지고 틈틈이 지켜보는 것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흥미거리이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작품 이름에 붙는 '아니마리스(Animaris)'는 동물을 뜻하는 아니(Ani)와, 바다를 뜻하는 마리스(Maris)의 조합이라 한다. 합쳐서 '해변동물'이라는 뜻. 그리고 그 뒤에 붙는 이름은 각자 나름의 뜻을 가지고 있다. 예를들어 '아니마리스 불가리스(Animaris Vulgaris)'는 '일반적인 해변동물'이라는 뜻이다.
움직임, 진화 그리고 죽음
테오 얀센은 해변동물에 생명을 주고, '진화'의 개념도 넣었는데, 이와 함께 '죽음'의 의미 또한 부여했다. 초기에는 아무래도 자기가 공들여 만든 작품들이니까, 부서지고나 오래되거나 하면 부품을 교체하고 수리하기도 했다 한다. 그런데 오래돼서 도무지 어찌 손을 써 볼 방법이 없는 작품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사망' 진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작품 자체가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걸 한없이 유지보수 할 수도 없고, 고치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일. 작가는 그 한계를 느끼고, 자신의 작품들에 차례로 사망선고를 내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속에는 끊임없는 창조를 해내야 하는 작가의 시간 문제도 한 켠을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대체로 작품이 만들어진 후 2~3년 정도 지나면 사망선고를 내린다고 한다. 그러면 그 작품은 더이상 수리나 부품교체 등을 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서도 날개 등으로 쓰여진 비닐이 상해서 너덜너덜한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작품들은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거라서 자연스럽게 썩어가도록 놔 둔 거라고 한다.
테오 얀센이 대단한 것은, 단순히 움직이는 거대 물체를 만들었다는 것 뿐이 아님을 이 대목에서 알 수 있었다. 그의 작품세계에는 생로병사와 진화의 철학까지 들어가 있는 것이다. 가히 한 무리의 생명체 집단을 창조해 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공학'과 '예술'을 결합시켰다고 했지만, 그 두가지 외에 '철학'까지 훌륭하게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공기를 저장하는 패트병. 저장된 공기로 발을 움직이기도 한다.
아니마리스 쿠렌스 벤토사. 바람이 불면 날개가 움직인다.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움직이는 동영상을 꼭 보기 바란다.
아트,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마음
테오 얀센의 작품들은 사실, 공학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간 기계(machine)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이 예술로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브리태니커 사전에 따르면 예술(Art)의 정의는 이러하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심미적 대상, 환경, 경험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기술과 상상력을 동원·발휘하는 인간의 활동과 그 성과'.
한마디로 테오 얀센의 '해변의 동물들'이 예술작품으로 인정 받는 것은, 비록 공학을 기초로 하고는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심미적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의와 기준이라면, 이 작품들이 예술품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다.
그렇다면 프로그래밍 코드 또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 만큼 심미적이라면,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것이 일반인들과 공유할 수 있을 만큼 심미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예술이 될 수 없는 것 아닐까.
널리 쓰이는 흔한 것들에서 예술품이 창조될 수 있는 법. 컴퓨터가 일반화 된 요즘 세상에서, 프로그래밍 코드 혹은 프로그래밍에 관련된 어떤 것들도 예술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문제는 아이디어, 그리고 실험하고 도전하는 프론티어 정신이다.
이 즘 돼서 프로그래머 중에도 아티스트가 좀 나와줘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꼭 전산계통이 아니더라도, 다른 공학도들이라도 괜찮다. 하지만 이왕이면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획기적인 일들이 좀 일어났으면 싶은 것 뿐. 그러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공학과 예술의 벽을 훌륭하게 허물어버린 테오얀센의 작품들을, 한 번 쯤은 가서 구경하고 배움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아무쪼록 더욱 많은 아름다움을, 더욱 널리 공유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국립과천과학관 전철역 근처 모습. 테오얀센 덕분에, 이 구조물도 움직일 것만 같이 느껴졌다.
국립과천과학관 입구. 테오얀센전은 특별전시이고, 상설전시도 볼만한 게 많다고 한다.
참고: 테오얀센전 공식 홈페이지 (http://www.theojansen.co.kr)
p.s.
1. 2010년 10월 17일까지 열림.
2. 평소에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큐레이터의 설명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라도,
테오얀센 전에서는 꼭 설명을 듣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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