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연말이 찾아왔다. 어떤 사람은 연초에 생각했던 계획들을 기억조차 못 하고 있을 테고, 또 어떤 사람은 다이어리를 뒤적이며 안타까워 하고 있을 테다. 그 중 아주 소수만이 계획대로 잘 보낸 한 해를 뒤돌아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을 테다.
그건 누가 잘나서도 아니고 못나서도 아니다. 실행력과 결단력의 차이도 아니며, 빈부차이도 아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운이 좋고 나빴던 것, 그 뿐이다.
계획은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로 어긋나고, 비틀어지며, 수정된다. 그렇게 조금씩 수정했던 것은 어느새,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라져 버린다. 결국엔 어쩌다가 이렇게 흘러흘러 왔는지 알 수조차 없게 되어, 슬픔조차 느끼지 못하고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인생이 그렇고, 계획이 그렇다. 다들 알지 않는가, 세상 한 두 해 산 것도 아니고,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 그래서 내 경우는 아예 한 해 계획따위 세우지도 않는다.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또 있다. 대한민국에서 음악 좀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
크라잉넛'. 똑같은 말이라도 이 사람들이 하니까 뭔가 좀 있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정말 그런 말 할 자격도 있고, 또 그렇게 살아왔으며, 그랬는데도 훌륭해졌기 때문이다.
지난(12월) 16일, 홍대앞
상상마당에서는
YES24의 후원으로
크라잉넛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크라잉넛이 출판이라니? 좀 어울리지 않는 듯 싶기도 하고, 의아하면서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그들이 쓴 책의 제목은 무려, 인생을 논하는 철학책에서나 붙일 듯 한, '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거창한 책 제목과는 달리, 이날 모임은 그리 무겁거나 어두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소 크라잉넛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소곳함(?)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언제나 그랬듯 밝고, 활기차고, 기운이 넘쳤다.
두어 시간 동안 노래와 함께 관중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던 크라잉넛. 역시 뮤지션이 좋구나, 출판 기념회에서도 보여줄 게 많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한 번 그들이 부러웠던 자리였다.
크라잉넛 멤버 몇몇은 고졸 학력이다. 대학을 못 들어간 게 아니라, 대학을 다니다가 그만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짤렸다. 음악 때문이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연습하고, 공연 준비하고 하다가 그렇게 된 것. 그 정도로 음악에 미쳐 있었지만, 그들의 시작은 초라했다. 겨우 관객 3명 앞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제 크라잉넛 하면 모두가 알아준다. 물론 일부에선 아직도 그들이 악기를 잘 다루니 못 다루니, 곡이 좋니 안 좋니 따위로 왈가왈부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인정하고, 인정해야만 하는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가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 인디락의 시초였고, 인디밴드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의 관심 속에 들여놓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아직도 현역 인디밴드로 활동중인, 15년차 장수밴드라는 것. 그들은 바로,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들이 이렇게 알려지고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
즐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욕을 먹을 때도 있었지만, 욕 먹으면서도 즐기고, 또 하루하루 힘들지만 먼 미래를 바라보며 버텼다고 한다. 도전하고 깨지고, 멤버들간에 갈등도 있었지만, 술과 주먹다짐으로 잘(?) 풀어냈다.
그들은 어떤 절박감으로 처절하게 음악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음악이 좋으니까, 또 함께할 수 있어서 즐거우니까 신나게 놀았다.
물론 그렇다고 대책없이 논 건 아니었다. 남들이 보면 술만 마시는 줄 아는데, 술보다는 연습을 더 많이 했다고 한다. 자신감이 없으면 남들 앞에 설 수가 없는데, 그 자신감은 엄청나게 열심히 한 연습에서 생긴다고 한다. 열등감에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연습은 게을리 할 수 없다고.
크라잉넛은
미래라는 말에, '
단지 다음날 공연만을 생각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거창한 미래에 주눅들지 않고, 단지 오늘 할 수 있는 일과 내일 해야하는 일만을 생각하며 달려온 결과가, 바로 오늘의 크라잉넛을 만들었다.
그들의 노래 가사 중에 나오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말은, 꿈도 인생도 포기해버린 사람의 절망이 아니다. 하루하루 그날그날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의 피땀 섞인 외침이다. 지금 당장은 별 것 아니지만, 언젠가 멋진 나를 '꿈 꾸기만' 하는 사람들과는 굉장히 대조되는 부분이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사전 그대로 해석하면, '뜻하는 바를 이루어 냄'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크라잉넛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꿈꿔왔던 '음악 하면서 먹고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돈을 많이 벌거나, 엄청나게 유명해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한다는 그들. 그들의 이런 삶과 인생, 그리고 생각들을 묶어서 한 권의 책으로 펴 낸 것이 바로 '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크라잉넛, 서커스 매직 유랑단, 어떻게 살 것인가 출판 기념회)
음악평론가 임진모 씨의 진행과 함께, 관객들과 크라잉넛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크라잉넛 멤버들에 대한 질문도 있었고, 질문자 개인적인 질문도 있었으며, 책에 대한 질문도 있었지만, 그 중에 인디밴드(인디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다른 것들 보다는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아무래도 국가와 민족과 사회와 문화에 도움이 될 듯 하니까.
스웨덴에 가봤더니 공연장과 장비들이 다 갖추어져 있어서, 인디밴드들이 공연하기 좋게 잘 정비돼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고 한다. 크라잉넛은 우리나라도 이런 면에서 국가와 사회가 지원을 좀 해 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지원이 있기는 하단다. 그런데 뮤지션들이 이런 지원을 잘 모르는 경우도 많고, 정책도 늘 바뀌고 혼란스러워서 신청에 엄두를 못 낼 경우도 많다고.
스튜디오는 있는데 검증된 사람이 아니면 아예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는 것도 있고, 단순한 보여주기식으로 꾸며놓기만 한 곳도 있다고. 그래서 이런 지원들이 좀 체계적으로 정립되기를 바라고, 공익차원에서 꾸며진 스튜디오는 의식 있는 사람이 운영해서, 인디밴드들에게 많은 혜택이 주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내비쳤다.
사실 다른나라 중에는 인디밴드나 인디문화를 위한 국가적 지원이 많은 곳도 있다. 사회적으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곳도 있다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국가와 사회에 기대고 있을 수만은 없다. 기다리다 해 진다.
그러니 그런 지원과 제도가 갖추어지기 전에, 힘들겠지만 크라잉넛 같은 선구자들이 후진들을 위해 힘을 좀 써 줬으면 싶다. 자신들의 음악세계도 음악세계지만, 이제 슬슬 후진들과 함께 나누며 함께 생존할 줄 아는 지혜와 전략, 그것이 오래된 그룹과 연륜 있는 자의 책임이자 의무 아닐까. 아울러 우리나라에도 보노같은 훌륭한 음악가이자 활발한 사회운동가가 한 사람 정도는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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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 넛 (Crying Nut) 노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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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크라잉 넛 (Crying Nut) 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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