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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존을 향한 위대한 사투, 웨이 백 The Way Back
    리뷰 2011. 4. 11. 04:12

    1939년 러시아 국경 근처에 살고 있던 한 폴란드 장교가 러시아 군에게 체포된다.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하던 그는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온갖 고문을 받으며 거짓 진술을 하도록 강요받았고, 결국은 죄인의 신분으로 극한의 동토에 자리잡은 수용소로 보내진다.

    영화에서는 단지 2차 세계대전 당시라고 대충 알려주고 넘어가지만, 사실 1939년은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해다. 독일과 러시아가 비밀리에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협공하는 것으로 세계대전의 효시가 올랐다. 처음에 폴란드는 독일을 상대하며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독일만을 상대하기도 벅찬데 러시아까지 협공하니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그 후에 독일과 러시아의 무자비한 학살로 저항할 만 한 사람들은 모조리 처리돼 버린 상황에서 암울한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사실 폴란드는 그 이전부터 비극의 나라다.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프러시아, 러시아, 오스트리아 3개 국가가 점령하여, 20세기 초까지 폴란드라는 나라는 아예 지도에서 지워져있었다. 그러다가 1918년 독립하여 새로 건립된 나라에서 열심히 살기를 다짐한 지 이십 년 만에 다시 나라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 후 1944~45년 사이에 러시아가 독일군을 폴란드에서 몰아내면서 폴란드는 형식적으로 다시 국가를 되찾았지만, 그 후 오랜 시간동안 구 소련의 영향권 아래 놓인 나라가 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차례 크고작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대통령제로 정치체계가 구성되어 차츰 국력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해외여행을 나오는 폴란드 인들도 가끔 볼 수 있는데,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시끄럽게 떠든다는 이유로 유럽인들이 싫어하기도 한다. 사실 폴란드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아직도 그리 많지는 않기 때문에, 나로써는 아직 알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웨이 백(The Way Back)

    어쨌든 '웨이 백'이라는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해에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시베리아의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진 한 폴란드인에 대한 이야기다. 극중 주인공 이름은 '야누스'인데, 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 이름은 '슬라보미르 라비치'이다.
     
    영화 홍보에 '실화'를 크게 강조하는 것 처럼, 이 이야기는 실존인물의 자서전 형식의 책을 토대로 한 영화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2003년에 출판된 책 '얼어붙은 눈물'이 원작인데, 영어로 된 원제는 'The Long Walk' 이다. 실화라고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대게 그렇듯이, 이 영화 또한 원작과는 약간 다른 부분들이 있다. 아마도 영화적 재미와 감동을 위해 조금 각색한 것이 아닌가 싶다.

    체포과정을 간략하게 묘사하고, 강제노동수용소까지 가는 길은 아예 묘사도 하지 않고 넘겨 버렸지만, 그래도 영화는 133분 이라는 엄청나게 긴 상영시간을 자랑한다. 

    책에서는 수용소까지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던 걸로 묘사되었는데,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짐짝 취급을 받으며 가축처럼 열차를 타고 이동한 것은 무난한 편에 속한다. 바이칼 호수 근처에 내려서 수용소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쇠고랑을 찬 채 걸어서 이동한 것에 비하면 말이다. 이런 이야기까지 영화에서 다 묘사했다면 아마 영화는 충분히 세 시간을 채우고도 남았을 테다. 그만큼 이 이야기는 실화지만 그 어떤 이야기들 보다도 믿을 수 없는 놀라움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다.


     






    잔인한 대자연에서 펼쳐지는 생존의 대서사시

    영화에서 주로 담고 있는 내용은 수용소를 빠져나온 사람들이 장장 6,500 킬로미터를 걸어서 탈주하는 모습이다. 수용소에서 높은 직위의 간수가 말 한 것 처럼 수용소 주변 자연들이 모두 감옥이고, 탈주자들에게는 현상금이 걸리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간수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단순히 러시아를 벗어나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로 가봐야 다시 죄수가 될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수용소를 벗어나, 바이칼 호수를 지나 몽골 국경까지 갔지만, 이미 공산화 된 몽골을 보고는 다시 도망길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중국 또한 공산화 된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고비사막을 넘고,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향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수용소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됐더라면 다들 한 번 쯤은 다시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지금 시대에서도 그 길을 걸어서 간다는 것은 거의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어쨌든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계속해서 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 영화 홍보 문구나 수많은 매체들의 평가에서 '자유를 찾아'라는 상투적인 문구를 쓰는데, 내가 보기엔 이 영화는 철저히 '생존'을 목적으로 한 여행길의 픽션형(혹은 재현형) 다큐멘터리다.

    중간에 극심한 굶주림에 몰려서 동료들을 잡아먹자는 사람이 나오기도 하고, 물을 마시지 못해서 갈 길을 두고 다투는 등의 갈등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갈등들을 그냥 조그만 에피소드로 다루고 은근슬쩍 넘어가고 만다. 어찌보면 저 압도적으로 무시무시한 대자연 속에서 그런 에피소드들은 그저 조그만 사건에 지나지 않는 스케일인 것을 알고 애초에 크게 다루기를 포기해 버린 건지도 모른다. 사실 두 시간 넘는 상영시간 동안 내내 유지되는 가장 큰 갈등은 초라한 인간과 거대한 대자연이기 때문이다.
     
    수용소를 탈출할 때 마음은 '자유'의 갈망이었는지 몰라도, 그 후의 상황은 철저하게 '생존'으로 점철되는 그 숭고한 생명의 사투. 어쩌면 수용소에서도 '이러다 분명히 죽고 만다'라는 공포가 없었다면 탈출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영화는 어쩌면 처음부터 끝까지 '생존'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쭉 연결되는 이야기다.

    물론 자유라는 키워드가 상당히 자극적이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로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아이템이긴 하다. 가난한 자들부터 자타공인 부자라는 사람들까지 자유를 갈망하는 세상이니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현대 상업주의에서는 자유라는 것을 상당히 추상적이고도 상대적인 개념으로 널리 사용하면서 감성에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명확한 사실은,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아니 외계인까지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게 '생존'이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도 고결한 기본욕구다. 자유 이전에 절실히 확보되어야만 하는 생명체 공통의 기본 권리가 바로 생존권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자유라는 단어보다는 생존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이 영화는, 이 이야기는, 인간 본연의 욕구와 갈망을 그린 거대한 서사시라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아기자기하게 짜여진 스토리나, 기승전결로 잘 짜여진 이야기를 바란다면 이 영화는 한없이 지루할 수 있다. 요즘은 다큐멘터리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승전결 류의 이야기 구조가, 이 영화에서는 아예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터전인 얼음이 녹아서 굶어 죽어가는 북극곰을 보며 애처로운 마음으로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 또한 하나의 동물 다큐멘터리로써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말을 조금만 더 덧붙이자면, 이 영화를 보면서 좀 아쉬웠던 점이 있다. 이 당시 이 탈주자들이 갔던 티벳(Tibet)과 시킴(Sikkim)은, 그 때만 해도 독립국 상태를 유지하던 곳이었다. 이 나라들에 대한 묘사를 조금만 더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서 세심하게 해 주었더라면, 상당히 매니악하면서도 좀 더 훌륭한 가치를 가진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게다가 원작 책에서는 이들이 히말라야 전설의 설인이라는 '예띠'를 보았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도 다 빼버렸다. 그런 것들을 모두 담다보면 영화가 산으로 갔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너무 네셔널 지오그래픽적인 자연 다큐만을 지향한 것이 못내 아쉽다. 물론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볼거리는 많았지만. (이 영화의 큰 교훈 중 하나는, 보석도 씻어야 예쁘다 랄까.) 






    참고자료:

    * 자유 찾아 나선 대장정 7000km
    : 슬라보미르 라비치, 얼어붙은 눈물 책 소개 기사. 읽어볼 만 하다. 현재 '얼어붙은 눈물'은 절판이고, '웨이 백'이라는 책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개정판으로 책 내용은 그대로인 듯 하다. 영화와 책은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 영화는 책의 일부 내용만 편집하고 각색했다.

    * 영화사 홈페이지(크게 볼 것은 없음)
    국내 www.thewayback.co.kr
    해외 www.thewaybackthemovie.com/
    : 국내 홈페이지의 경우 영화 에피소드 별로 4개의 지점이 지도에 표시되어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수용소의 위치를 러시아 서쪽으로 설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원작에 나오는 수용소의 위치는 완전히 다른 곳이다. 원작에서 나오는 수용소의 위치는 '야쿠츠크'인데, 이곳은 겨울 평균 온도가 영하 40~50도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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