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

"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 영화는 이 짧은 나레이션 하나로 시작한다. 영화를 위해 그럴듯한 식당을 하나 차리고, 식당 여기저기에 카메라가 감춰진다. 그리고 진짜로 영업을 했고, 마침내 방송이 미끼를 덥썩 물었다.

홍보대행사와 브로커, 프로덕션 그리고 방송국. 맛집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좀 많은 사람들과 얽히게 된다. 그리고 뒷돈. 그 돈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정확히 추적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돈을 내라는 말과 함께 돈을 건낸 증거까지 확실히 확보한다.

촬영은 한 편의 코미디다. '트루맛쇼'에서 미리 준비한 가짜 손님들을 방송국에서 섭외해 데려다 놨다. 제법 대본까지 있고, 즉석에서 연기 지도까지 한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던 연기자도 카메라를 들이대니 연신 '맛있어요'를 외친다. 조연급 영화배우를 해도 될 정도다.  

2010년 3월 셋째주 지상파 TV에 나온 식당은 총 177개. 1년으로 환산하면 9229개. 1년에 대략 9천여 개의 맛집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맛집으로 흘러 넘친다. 트루맛쇼의 식당도 정식으로 공중파를 탔다. 함께 한 스탭들 모두가 둘러앉아 그 방송을 씁쓸하게 지켜보고, 가게 문을 닫는다.







허구, 또 허구의 허구

'트루맛쇼'를 말 하면서 흔히 언급되는게 영화 '트루먼쇼'다. 감독 자신이 그 영화에서 제목을 따 왔다고 밝힌 바 있고, 제목도 상당히 비슷하니까. 진중권씨는 컬럼을 통해, 트루먼쇼와 트루맛쇼의 연관관계를 '매트릭스'까지 끌어들여 잘 설명해 놓았다([진중권의 아이콘] 사실은 만들어진다).


진중권씨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언급하며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이런 것도 이해하는 잘난 나, 우훗'하며 끝나려면 이 글을 살짝 언급만 하고 끝내는 게 좋다. 하지만 난 미학도 모르고, 영화 이론 공부도 한 적 없는 '못난 나'니까 나름대로 생각을 확장해 본다.



한마디로 진중권씨의 논지는 '트루맛쇼 역시 만들어진 영화이므로, 또 다른 허구일 수 있다'라는 것. 그건 트루맛쇼라는 영화를 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트루먼쇼'라는 영화에서 말 하는 '사실과 허구'를 트루맛쇼에 적용해서 그렇게 된 거다.

여기서 트루맛쇼와 진중권씨의 시각이 합치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방송에서 나오는 '맛집'은 '시뮬라크르(허구)'라는 거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과연 그걸 모르고 있었을까. 맨날 똑같은 대사에 똑같은 포즈, 똑같은 형식이 반복되는데 의심 한 번 하지 않았을까.





매스미디어라는 그림자

방송은 원래 허구다. 드라마가 그렇고, 광고가 그렇다. 드라마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울고, 광고처럼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산다. 어느 정도 교육도 받은 사람들이, 부조리한 사회현상에 분노할 줄도 아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이 광고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제품을 사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매스미디어다.


방바닥에서 라면이나 퍼 먹는 못난 나를, 저 산해진미에 황홀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에게 감정이입 하는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재미로 본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재미'를 위해 보는 TV에서 굳이 또 시커머죽죽한 현실을 들여다 보고 싶지 않다. 그런건 내 주위에 널리고 또 널리고 깔리고 도배 돼 있으니까. 현실을 잊기 위한, 일종의 마약이다.



매스미디어에서 내보내는 컨텐츠들은 그렇게 대부분이 페이크 다큐(fake docu) 혹은 모큐멘터리(mockumentary)다. 보는 것만으로 만족일 뿐, 찾아갈 필요는 없다. 방송사에서도 시청율만 높이면 될 뿐, 광고효과까지 책임지지는 않는다. 광고효과라는 기대감은 업주의 또다른 환상일 뿐.

'블래어윗치', '파라노말 액티버티', '더 터널'처럼, 사람들은 그게 사실처럼 꾸며진 허구라는 걸 알면서도 본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게 정말 사실이라고 믿기도 하지만.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랴. 그게 사실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떠리, 어차피 그건 내 일 아니다. 난 그저 재미있게 즐겼으면 그 뿐이다. 



만약 언론이 갑자기 번개를 맞아서 정신을 차리고 대중을 계몽해야겠다고 나선다면, 그런 프로그램을 '클로버필드'나 '포스카인드' 혹은 '디스트릭트 나인'처럼 만들면 된다.

사람들은 그정도 스케일에 외계인까지 나와버리면 대다수가 '에이, 저건 가짜다'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외계인 섭외하기가 어려우니까. 어렵게 섭외했는데 출연료로 지구를 달라 하면 어쩌냐. 무섭지 아니한가.






매트릭스에서 매트릭스로 전이, 스테이지 체인지

그래서 결국 매스미디어는 그대로 간다. 보라, '트루맛쇼'가 나름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지만, 방송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꿋꿋하게 맛집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지 않은가.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은 채 말이다. 그 환상적인 환상이 바로 방송의 존재 이유고, 방송의 모든 것이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렇게 돼 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결국, 이제 매스미디어에서는 모든게 허구라 인식될 날이 올 테다.
 
아니 이미 왔는지도 모른다. 최근에 부쩍 뉴스에 의문을 제기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았나. 그리고 사실, 뉴스가 사실이라고 믿을 근거는 또 어디 있는가. 뉴스가 맛집과는 다르다는 걸 누가 보장하고 확신 시켜줄 수 있는가. 다 허구인데 뉴스만 허구가 아니라고 우기면 그게 더 웃기지 않은가.



오늘도 언론은 맛집을 방송하고, 맛집을 지면에 싣고 있다. 아주 작은 그 부분들이 자신을 집어삼킬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듯 하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블로거들에게 광고기사에 협찬유무를 표기하라는 지시를 했다. 하지만 언론사들에게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건 이미, 그 언론들의 내용들이 모두 허구라는 걸 인정했기 때문은 아닐까. 또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이미 기정 사실이기 때문은 아닐까.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매스미디어 기사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을 통한 지인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다. 대량 생산, 대량 유포되는 기존의 허구에 금이 가고 있다. 물론 지인이라는 사람들을 통해 접하는 그 소식들조차 허구일 수 있겠지만, 하나의 그림자에서 또다른 그림자로의 명멸은 순식간이다. 
 




살아 남는 자가 강한 건가

어쨌든 (길게 쓰니까 지치고 재미 없다), '트루맛쇼'와 '블로그 사건'에도 '거대 언론'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꿋꿋하게 서 있다. 겨우 그 정도 사건들 몇 개 터진다고 절대 무너질 권력이 아니다. 그림자에 돌 던진다고 부숴지는 것 봤나. 다만, 서서히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 가면서, 그림자가 옅어져 가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트루맛쇼'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 공중파를 때리니 제 발 저린 언론사들이 블로거를 잡아 내서 두들기는 일거양득 효과가 있었다. 감독은 공중파에 이어 블로그를 대상으로 작품을 만들어 볼 생각도 있다고 했는데, 이제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안타까운건 아직 신문사들이 제대로 맞질 않았다는 건데, 이 부분은 블로그들이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들고 일어날 줄 알았더니, 아주 점잖게 꼬리 감추고 숨어버렸네. 어쩔 수 없지 뭐. 이대로라면 언론에 무슨 일 터질 때마다 블로그는 동네 북이 되겠지.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남으면 영화를 누리려나. 훗.





p.s.
어쨌든 이 영화는 꼭 한 번 보시라. 핵심내용이 다 나와 있어도 직접 보면 느낌이 다르다.



참고자료:

- [진중권의 아이콘] 사실은 만들어진다
- 트루맛쇼와 베비로즈 사건의 공통점과 차이 (블로그 글)
- 트루맛쇼 감독 블로그: http://blog.naver.com/trueta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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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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