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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쨌든 우리도 언젠가 죽는다 -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5
    리뷰 2011. 9. 12. 20:42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5


    일단 이 영화를 보는 이유는, ‘잔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거나,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는 짜잘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거나, ‘볼 영화가 없어서’ 혹은 ‘극장표가 남아서’, ‘바람맞고 들어가 보니 이 영화더라’, ‘파이널 판타지 영화인 줄 알았다’ 등등 많은 이유가 있을 테다.

    이 시리즈를 계속 봐 온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이미 설정된 내용 속에서 주인공들이 어떻게 죽느냐를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한 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을 테다. 그리고 인간의 잔인성도 어느 한 구석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을 테고. 어찌됐든 이 영화를 찾아가서 보는 이유는 다양다향 할 테다. 영화를 보는 이유로는 천 만가지 대답을 댈 수 있으니까.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찝찝함’을 호소한다는 거다. 이미 결말도 다 알고 있고, 어떤 것이 관전 포인트인지도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영화인데, 그래도 보고 나면 찝찝하다. 그건 왜 그럴까. 사람들이 너무 잔인하게 죽어서 그럴까.

    물론 그런 이유도 있을 테다. 하지만 그것 만으론 제대로 설명이 안 된다. 왜냐면, 등장인물들이 잔인하게 죽는다는 것도 이미 대부분 다 알고 본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 내 마음대로, 이 영화가 찝찝한 이유를 대 보겠다. 그건 바로, 이 영화가 진실이라 말 할 수도 있을 만 한, '피할 수 없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다들 잘 아는 사실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99%는 80년 안에 다 죽을 거라는 것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그 중에는 과학이 발달해서 앞으로 수천만 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약간 옆으로 새자면, 과학이 발달하면 뭐하나, 지금 현대의학으로도 마음만 먹으면 최대한으로 생명연장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돈이다. 그럴 돈 없으면 일찍 죽는다는 것 또한 이미 다들 잘 아는 사실이다.)


    특히 현대문명사회에서는 오늘 하루 무사히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와 이부자리에 들었다는 것마저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굳이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에서 보여준 다양한 죽음의 방식처럼, 일상의 모든 것들이 죽음을 부를 수 있는 공포스러운 도구들임을 상기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 일상의 평안을 위협하는 것들은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무수히 많다. 가장 흔한 것이 교통사고부터, 각종 범죄와 사고들이 시시각각 여기저기서 우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 영화의 카피문구인 ‘아직도 살아 있는가?’라는 문장은 참으로 잔인하면서도 현실적이다. 우린 그 질문에 ‘네, 내일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으니까.




    죽을 운명은 어차피 죽는다


    ‘죽을 운명은 어차피 죽는다’. 영화 전체를, 그리고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다. 주인공들도 영화 중반쯤 되면 그 사실을 알아채고, 이 시리즈를 한 번이라도 본 관객들은 시리즈 전체가 그 주제의 변주곡임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등장인물들 중 아무도 사과나무를 심지 않는다는 거다.

    사람들은 흔히 재미 삼아 묻고, 고민한다. 내일 당장 죽는다면 오늘 뭘 해야 할까라고. 나름 답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아닌 사람도 있을 테고, 매번 물을 때마다 답이 바뀌는 사람도 있을 테다. 그런데 그 질문에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그 답을 실천에 옮겨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등장인물들이 당장 죽음을 받아들이고 사과나무를 심지 않는 이유도, 영원히 살 것 같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막상 죽음에 직면하면 어떻게 죽을까, 무엇을 남길까, 어떤 마지막 삶을 살까 보다는, ‘죽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에 온통 휩싸이는 인간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않고, 관객들 또한 그것을 당연하다 생각할 때, 죽음은 또 한 발자국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축하한다, 여러분들, 그리고 나는 또 하루 죽음 앞에 다가섰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5




    불확실한 미래


    마치 어제의 일상이 오늘로 연결된 것처럼, 오늘의 삶이 또 당연히 내일로 옮겨질 것이라 믿는 사람들처럼, 우린 그렇게 산다. 그런 믿음이 뒷받침 되지 않고, 삶이 온통 불확실성에 가득 찬다면, 우리는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테다.

    그건 마치, 당장 배고프면 돈만 들고 뛰어가면 음식들이 가득한 상점들이 항상 우릴 반겨준다는 사실처럼 당연히 지속되어야 하는 현상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일상을 무너뜨리는 폭동이라든가, 약탈 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사건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모두들 그걸 안다. 그래서 집에도 어느 정도 먹을 거리를 비축해 두고, 저축도 하고, 문도 잠그는 거다. 그런 식으로 죽음 또한 준비할 수 있지는 않을까. 마치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듯이, 혹은 혹시 모르는 도둑을 대비하듯 말이다.

    그러니까, 아아, 좀 더 우아하게 죽는 삶을 연구해 보자. 막상 급하게, 갑자기 죽음을 맞닥뜨리면 분명히 허겁지겁, ‘난 죽고 싶지 않아’하면서,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 할 테니까.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천천히 우아한 죽음을 맞이해 보자.

    그러려면 어찌해야 할까. 그건 제각각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제각각 다른 생각과 판단들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각자 알아서 맞이해야 하는 죽음이기에, 더욱 두렵고 어찌할 바를 알 수 없는 어떤 사건으로 인식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우리는 죽는다. 당장 이 순간 키보드 버튼 하나가 팅 튕겨나서 형광등을 때려 폭발하면서 불길에 휩싸여 죽을 수도 있는 일이고, 내일 전철이 탈선해서 죽을 수도 있는 일이고, 혹은 내년에 지구가 멸망해서 죽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당장 ‘죽으면 어떡하나’하며 조급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사과나무나 심지 뭐’라는 대답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대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것 또한 어디까지나 아름답고 우아한 삶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인간에게나 적용되는 것이지만.

    하긴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타인에게 전가하면 천년만년 살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타인의 등골을 빼먹고, 남을 이용하며, 사기치고, 협박하고, 깔보고, 무시하며, 자신의 생명연장(돈벌이)에 이용한다.

    어차피 세상이 그런 바에야 애초에 우아한 삶이란 있을 수 없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현대사회가 타인의 주머니를 털어 자신의 입에 갖다 넣는 구조이고, 우리 모두가 이미 공범이니까. 아아 그래도, 그래도, 차마 ‘인간답게’라는 말은 부끄러워서 꺼낼 수 없다 하더라도, 조금 우아하게 삶을 꾸려나가 찬란한 죽음을 맛 보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제발 가능했으면 좋겠고, 제발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죽음이 도둑처럼 창문을 넘어 들어오기 전에 말이다.





    p.s. 결론: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죽는다.
    어차피 죽을 인생, 밥이나 먹고 죽자(?)
    죽을 인생, 밥이라도. 죽보다는 밥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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