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1일 토요일 홍대앞 상상마당에서는 제20회 열린포럼이 열렸다. 상상마당에서는 올해 '문화생태계: 그 변화와 징후'라는 대주제로 열린포럼 시리즈를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그 열번째 주제로 '2010 독립적 목소리, 잡지를 말하다'라는 제목의, 독립잡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김경주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포럼에서는, 김봉석 브뤼트(BRUT) 편집장, 강선제 보일라(Voila) 편집장, 윤재원 칠진(chilzine) 편집장, 하은혜 클(cle) 편집장이 패널로 참석했다.
왜 독립잡지인가: 브뤼트 BRUT 김봉석 편집장
브뤼트는 KT&G 상상마당의 지원 하에, 상상마당 소식과 인디문화를 비롯한 각종 문화계 소식들을 전하는 잡지다. 편집권의 완전 독립이 보장되기 때문에 기꺼이 이 일을 맡아 즐겁게 하고 있다는 김봉석 편집장이, 포럼의 서론을 펼쳤다.
김봉석 편집장은 요즘은 잡지가 잘 안 된다는 말로 입을 뗐다. 큰 출판사에서 펴내는 잡지도 어려운 마당에, 하물며 독립잡지는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행여나 독립잡지로 잘 하면 어쩌다 대박이 날 수도 있지 않나라는 생각은 위헙하다. 독립잡지는 수익이 전혀 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일을 해서 번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고된 일이라고 처음부터 엄포를 놓았다.
그런데도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독립잡지를 만드는 것은, 소위 주류라 불리는 문화의 대안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뭔가 재미있는 것이나 새로운 것을 찾는 욕구가 다양화하고 세분화함에 따라, 기존 매체가 주지 못하는, 기존 주류 미디어에서 찾을 수 없는 컨텐츠들을 담기 위함이다. 게다가 독립잡지는 놀면서, 즐기면서 제작하고 공유하는 컨텐츠로, 책보다 쉽게 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잡지 제작 자체가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도 있다.
최근 인터넷이 미디어의 하나로 주목 받으면서 기존 미디어를 위협하고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이익이지만, 수익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거의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인디잡지는 글을 쓰고 싶다거나, 미디어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로 접근해야하고, 매번 자신의 돈과 시간을 투자할 각오를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열망의 지구력: 보일라 Voila 강선제 편집장
보일라는 2002년 부산에서 창간한 잡지로, 주로 부산의 문화를 주로 다루다가, 최근에는 전국을 무대로 삼고 있다. 8년 째 꾸준히 발행하고 있는 전통있는 독립잡지다.
보일라가 창간할 당시에는 수많은 잡지들이 쏟아져 나와, 잡지가 붐을 일으켰다. 그 때 부산대 쪽은 문화적 욕구는 많았지만 문화적인 것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강선제 편집장은 그 당시, 왜 부산은 열악하고, 거리공연이나 전시같은 것이 없을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또한 그 당시 친한 친구의 그림을 교수가 도용했는데, 선배들은 물론이고 학교 측에서서 조용히 무마시키려고 했다. 그 사건을 접하며, 저 친구가 단 한 번이라도 매체에 소개된 적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처참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다. 그래서 부산의 문화를 소개하고, 작가들을 소개하는 잡지를 만들 결심을 했다 한다.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서 창간 첫 호는 자취방 전세금을 빼서 펴 냈다. 그래도 그 때는 학생 신분이라 과 출신 선배들과 지연 등을 이용해 광고를 많이 유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학생 때일 뿐이고, 학연, 지연으로 광고를 유치하는 것은 안 먹힌다며 쐐기를 박았다.
잡지를 계속 해 가면서 인쇄 쪽으로 일이 조금씩 들어왔다 한다. 그 돈으로 어떻게 한달한달 넘기며 제작비를 충당했다. 사실 인쇄비보다는 디자인비가 더 비싸다며, 혹시나 잡지를 만들 생각이면 인쇄비보다 디자인을 해결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현실은 현실이기에 자본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은 그리 바람직한 모델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보일라는 처음에 천 원이라는 돈을 받고 배부했지만, 곧 무료 배부로 정책을 바꾸었다. 그러면서 배부처도 점점 늘어났는데, 어느 순간부터 부산보다 서울의 배부처가 더 많아졌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서울쪽 컨텐츠가 주를 이루고 있다.
부산의 문화를 이야기하고자 만든 잡지가 이제 서울쪽 기사가 더 많게 된 이유는 이렇다. 일단 부산을 3년 동안 취재하고 나니 더이상 취재할 것이 없더라고. 게다가 부산에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기자들이 모두 서울 쪽으로 취직해서 떠나갔다 한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이제는 보일라에 서울 쪽 기사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보일라는 8년 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독립잡지로써 어느 정도 안정성을 확보한 상태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잡지를 발행하며 배운 점들이 있는데, 문화예술잡지는 지역을 따지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큰 배움이라 한다.
강선제 편집장은 잡지는 어차피 잡스런 책이기에, 내고싶다는 마음가짐으로 지구력을 가지고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다보면 돈도 떠나고, 사람도 떠나는데, 그 때마다 기죽고, 힘들어하면 잡지를 계속 꾸려나갈 수가 없다고. 계속 내고 싶다는 마음과 열망으로, 잡지를 내면서 느끼는 보람과 즐거움을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디지털보다 안전한 아날로그: 칠진 chillzine 윤재원 편집장
칠은 2006년 창간해서 비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있는 잡지로, 세 명의 친구들이 합심해서 만들고 있다. 회화를 전공한 친구들끼리 처음에는 친구들의 작업을 실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곧 이 잡지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독특한 잡지가 되었는데, 칠 이라는 제목을 집 근처 페인트 집 글자에서 따 왔다는 에피소드에서 그들의 엉뚱함을 약간은 짐작해 볼 수 있을 테다.
칠은 다른 일반적인 매체들처럼 보도, 취재, 발견을 담는 잡지가 아니다. 감각에 포커스를 두고, 직관에 충실한 발명의 형태로 컨텐츠를 만들고 채워간다. 어디서 본 듯한 내용은 철저히 배제하고, 자신들만의 감각과 느낌으로 내용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다. 그 감각이 너무 독특해서, 다른 곳에서 작업 제의가 들어온 적도 있었지만, 결과물을 보고는 두 번 다시 연락이 없더라며 아픈 웃음을 내보이기도 했다.
인터넷 시대에도 종이책은 분명히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며, 칠진의 모든 작업과정은 아날로그로 이루어진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금도 칠진은 웹진에서는 접할 수 없는 아날로그 적인 것들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를들면 3D 책자나, 스티커, 소책자, 잘라붙여 만드는 공작 등이 제공되는 것이다. 칠은 어째서 아직 종이책이 필요한가를 잘 보여주는 좋은 모델이라 볼 수 있다.
여행의 경험이 잡지로: -클 -cle 하은혜 편집장
클은 2008년에 떠났던 자전거 여행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자전거 잡지다. 일본으로 자전거 여행을 갔다가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는데, 그 때 생각해내고 만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잡지라고 한다.
자전거 잡지라는 특정 분야 속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재미있게 공유하자는 모토로 제작되고 있는 클. 이 잡지는 하은혜 편집장이 직장에서 힘든 일을 하면서, 많지 않은 월급을 털어서 직접 만들고 있다.
클을 만드는 종이는 제지회사에 쌓여 있는 팔리지 않는 재고 용지들을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이 잡지의 발행부수는 전적으로 제지회사의 남는 종이 수량에 달려 있다고.
다른 잡지들에 비해 발행한 기간도 짧고, 크기도 작지만, 여행이라는 인생의 작은 한 부분이 동기가 되어 만들어지고 있는 잡지라는 측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동기부여가 되는 잡지다.
왜 종이인가
이른바 디지털 시대라 일컬어지는 요즘, 이들은 왜 종이 잡지를 고집하고 있을까. 각 잡지들의 소개와 자유발언에 이어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갔지만, 그 중에서 가장 관심이 있을만 한 왜 종이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만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다.
브뤼트의 김봉석 편집장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기존 매스미디어에서 해 주지 않으니까 이런 류의 잡지를 펴 내는 것이라며, 앞으로는 온라인 쪽으로 비중이 더 치우칠 것이라 말 했다.
보일라의 강선제 편집장은, 내가 종이를 통해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냐며, 종이책은 아날로그 시절 선배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매체라고 했다.
칠진의 윤재원 편집장은, 디지털과 기계에 불신을 가지고 있다 한다. 파일은 나를 배반할 수도 있지만, 종이는 누군가는 가지고 있을 거라고. 디지털은 기록이 불완전한 요소가 있고, 종이는 전기가 없어도 볼 수 있는 안전한 매체이기 때문에 종이를 고집한다 한다. 그리고 요즘 인터넷 기사들을 보면, 진지한 기사 옆에 낮뜨거운 광고들이 도배되어 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며, 컨텐츠에 집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종이 매체가 좋다고 했다.
그리고 클의 하은혜 편집장은 굵게 한마디로 '손맛'때문이라고 간략하게 말했다.
길었던 포럼을 짧게 마무리하며
독립잡지를 펴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독립잡지는 제로썸도 제대로 달성할 수 없는, 적자가 예정된 개인사업(?)이었다. 따로 직업을 가지고 다른 일을 하면서 틈틈이 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단순히 육체적으로만 고된 것도 아니다. 이런 매체는 블로그와는 또 다르기 때문에, 블로그에 글을 잘 쓰고 방문자가 많다고 해서 매체의 기사도 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분량과, 비교적 자유도가 떨어지는 형식 때문에, 인터넷에서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모이면 오히려 잡지의 꼴이 안 날 수도 있다 한다.
그런데도 독립잡지를 하고 싶다면, 정말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한 번 쯤 해 볼 만은 하다고 입을 모았다.
브뤼트의 김봉석 편집장은 이에 덧붙여, 요즘 창조적 작업 환경이 좋아지면서, 블루오션은 바로 내가 좋아하고, 잘 알고, 잘 하는 것을 하는 거라고 말했다. 아울러 일이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며, 하다보면 해쳐나갈 길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보일라의 강선제 편집장은 오랜 시간동안 잡지를 펴 내면서 참 행복했다고 한다. 지역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취재한 작가들이 커 가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보람을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돈을 못 벌었다는 손해가 있지만, 인생의 한 시기를 독립잡지를 만드는 데 바쳐도 괜찮은 듯 하다고 말했다.
이어 칠의 윤재원 편집장은 요즘 생산과 창조도 너무 소모적으로 일어나고 있지 않나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좋은 독자가 없다며, 아무리 좋은 매체와 컨텐츠가 있어도 좋은 독자를 만나야 빛이 난다는 따끔한 말을 남겼다.
클의 하은혜 편집장은 현재 대학로 공연기획 일을 하면서, 일이 가장 힘들 때는 관객이 없을 때라고 개인적인 경험을 털어놓았다. 마찬가지로 잡지를 발행하며 가장 힘든 것은 읽어주는 사람이 없는 것 아니겠냐며, 앞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방법, 즉 소통의 방법을 좀 더 고민하고 모색해 봐야 겠다며 힘차게 파이팅을 외쳤다.
이번 포럼은 독립잡지라는 주제로 여러 패널들의 이야기를 듣고,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며 거의 세 시간 동안 열기가 활활 타올랐다. 굳이 독립잡지를 출간하겠다거나, 독립잡지에 관심 있는 사람 뿐만 아니라, 웹진이나 블로그 등 다른 대안적인 미디어를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틀림없이 많은 도움이 되는, 값진 기회였다.
주제는 독립잡지였고, 패널들은 종이 매체를 발행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매체의 소재나 방법에 상관없이 앞으로 많은 다양한 미디어들이 발상을 전환하고 고정관념을 깨어 우리 앞에 나와 주길 기대해 본다.
또한 독립영화, 독립음악, 독립잡지 등, 독립이 들어가는 것들은 창작자 뿐만 아니라 소비자 또한 주체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독립문화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용기있게 다가가서, 능동적으로 자신에게 맞게 잘 받아들이는 훌륭한 관객, 독자 또한 여기저기서 많이 나타나기를 바래 본다.
아울러 이런 좋은 자리를 기획하고, 만들고, 개최해 준 상상마당에도 이 기회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p.s.
포럼의 정리된 내용은 상상마당 홈페이지, 열린포럼 자료실에서 볼 수 있다.
이번 20회 포럼은 아직 올라오지 않았지만, 곧 올라오지 않을까 싶다.
http://www.sangsangmadang.com/forum/bbs/libTxt.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