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만 펼치면 지구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지구는 넓고, 작은 방 안에서 전 세계 소식을 접할 수 있지만 우리가 평생 가볼 수 있는 곳은 몇 안 된다. 당장 길거리로 나가보면 수많은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보이지만 그래도 세상에 만날 사람은 많으며, 각종 미디어로 보아오던 모습 외에도 세상에 볼 것은 많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 골목골목을 모두 다 알지 못하듯 저 밖에는 아직 내가 모르는 길들이 많이 있고, 길이 없는 곳에도 세상은 있으며 사람들은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저 바깥 세상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어떤 길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을까.

누구나 한 번 쯤 생각하고 꿈 꿔 보지만, 발을 옭아매는 현실이라는 족쇄에 얽혀 엄두도 못 내며 주저앉아 있을 때, 유럽의 젊은이들이 다소 무모하고도 멋진 도전을 시작했다. 트럭 두 대로 지구를 한 바퀴를 돌겠다고 여행을 시작한 사람들. 영국을 출발해 유럽을 지나, 저 넓은 러시아 대륙의 모래먼지를 건너온 사람들. 바로 '어스서킷(earthcircuit)' 팀이다.


트래블로, 어스써킷 earthcircuit, 르꼬숑
(어스서킷 팀이 달려온 경로(적색)와 앞으로 갈 길(흑색))


트래블로, 어스써킷 earthcircuit, 르꼬숑


지난 12월 10일 저녁, 강남 도곡동 매봉역 근처 길 모퉁이 작은 프랜치 식당 르꼬숑에서는 특별한 모임이 있었다. 세계여행 전문 커뮤니티 사이트로 태어나기 위해 막바지 작업을 한창 진행중인 '트래블로(www.travelro.co.kr)'가 주최한 'Travelro & Friends 그 첫 번째, 맛있는 여행' 행사였다.

이 모임은 트래블로 사용자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역할도 있었고, 르꼬숑이라는 독특한 프랜치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기능도 함께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모임의 주 목적은 어스서킷 팀과의 만남이었다. 벌써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온, 그것도 캠핑카를 운전해서 달려온 사람들. 가끔 인터넷 뉴스나, 해외토픽 정도로만 접할 수 있었던 그런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트래블로, 어스써킷 earthcircuit, 르꼬숑
(도곡동 매봉역 근처 프랜치 레스토랑 르꼬숑이 임시 갤러리로 사용되었다)


트래블로, 어스써킷 earthcircuit, 르꼬숑


어스서킷 팀은 오스트리아인 코니(Conny), 포르투갈인 듀니아(Dunia), 영국인 앤디(Andy), 체코인 라드카(Radka), 그리고 고향이 인도인 강아지 바가(Vaga)로 이루어진 단체다. 이들은 영국의 치즈팩토리라는 곳에서 창작활동을 하다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의견을 모았다.

두 대의 차로 2년 간의 세계여행, 그것이 계획의 전부였다. 중고 트럭 두대를 개조해서 여행을 시작한 이들은, 남들이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자는 생각으로, 세부적인 스케줄도 없이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있었다. 자유로운 여행자들 답게 마음에 들면 머물렀다 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국이 마음에 든다며 이미 한국에만 두 달 가량 머물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떠나긴 떠나야 할 텐데, 그들도 언제 떠날지가 문제라고. 네 명 모두가 동의를 해야 떠날텐데, 오늘 떠나자 싶다가도 내일 아침엔 또 마음이 바뀌곤 해서 문제란다.



트래블로, 어스써킷 earthcircuit, 르꼬숑


트래블로, 어스써킷 earthcircuit, 르꼬숑


이들이 특별한 것은 단지 캠핑카로 세계일주를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언론이나 각종 스폰서 없이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도 좀 특이하지만, 그것보다도 현지인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려 한다는 것이 특별한 점이다.

러시아 대륙을 횡단하면서도 그곳 사람들과 캠핑도 하고 친하게 지내며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한다. 한창 달릴 때는 하루에 300 킬로미터도 달렸지만, 좋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면 잠시 머물렀다 가는 여유를 가진다고. 그래서 러시아의 작은 마을에서, 작은 규모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한국에 이렇게 오래 머물수 있었던 것도 우연한 만남 때문이었다. 부산의 독립문화공간 아지트(funnystreet.cyworld.com)와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되어, 그곳 지원으로 사진을 인화하고 전시회를 열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비행기를 타고 들어오는 여행자들과는 좀 다르게, 어스서킷은 부산에만 한 달 넘게 있었다.

그리고 이제 트래블로와 인연을 맺게 되어, 이렇게 서울에서 전시회 겸 현지인들과 만남의 자리도 가지게 됐다.



트래블로, 어스써킷 earthcircuit, 르꼬숑
(어스서킷 팀은 다니는 곳마다 엄청난 양의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트래블로, 어스써킷 earthcircuit, 르꼬숑
(트래블로 운영 팀장님이 예뻐보이는 건 내가 사진을 잘 찍었기 때문임)



어스써킷 팀은 두 대의 캠핑카로 세계일주 중인데, 캠핑카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캠핑카에는 '내 방, 내 공간'이 있기 때문이란다. 한마디로 움직이는 집이어서, 지구 그 어디건 내 집을 가지고 움직이니 좋다고 한다. '내 방'이 있으니, 현지인들을 자기들 집에 초대도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캠핑카의 매력을 살짝 느낄 수 있었다. 

여행자들은 거의 대부분 현지인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고, 현지인들의 집을 방문한다. 내 나라, 내 집에 대해서는 안타깝지만 보여주고 경험시켜 줄 것이 거의 없다. 어스서킷처럼 캠핑카로 여행한다면, 현지인들을 내 집에 초대해서 조금이라도 나에 관해 보여줄 수 있을 테다. 진정 서로 오가는 교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당연히 불편한 점도 있다. 일단 캠핑카 안에 화장실이나 샤워시설이 없기 때문에 불편하다. 그리고 도시에서는 주차문제도 있다. 서울에서도 처음에는 과천 경마장에 있었는데, 주말에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자리를 옮겨서 우여곡절 끝에 평화의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캠핑카로 여행을 한다고 하면 흔히들 부자들이 유유자적하며 여행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들은 오히려 돈을 아끼기 위해 이런 방법을 택했다고 한다. 숙박비도 안 나가고, 음식도 해 먹을 수 있기 때문. 게다가 이동비도 웬만하면 차에 넣는 기름값이 전부니까.



트래블로, 어스써킷 earthcircuit, 르꼬숑
(어스서킷 팀)


트래블로, 어스써킷 earthcircuit, 르꼬숑


먼 길을 달려 색다른 경험을 하고 온 여행자들 답게, 이들은 우리에게 약간의 여행 팁과 조언도 나누어 주었다. 가장 솔깃하고 중요한 정보는, 유럽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새 도로가 닦아지고 있었다는 것. 지금 쯤은 완전히 완성되었을 거란다.

그런 정보와 함께 이들은 우리에게 물었다. 러시아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인데, 왜 거기로 여행하지 않느냐고.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이나, 위험하다는 경고, 정보의 부족함 등은 유럽도 마찬가지라고. 그리고 소문에서 듣던 그런 험한 일은 당하지 않았다며, 막상 가보면 그리 두려운 곳은 아니라고 말했다.

물론 이렇게 여행하는 자기들을 미쳤다고 말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다. 하지만 그건 모든 나라에 다 있는 일이었을 뿐, 러시아의 문제는 아니다. 나 역시 세계일주의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하자, 블라디보스톡에서 유럽까지 오토바이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슬슬 바람을 넣어 주신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한국의 속초까지는 동춘페리 여객선을 타고 왔다. 캠핑카 두 대를 모두 싣고 왔을 정도니까, 웬만한 운송수단은 다 이동할 수 있을 테다. 어떤가, 이정도 정보라면 러시아 대륙을 차나 오토바이, 혹은 자전거로 횡단하고 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오르지 않는가. 사실은 내가 가고싶다!



트래블로, 어스써킷 earthcircuit, 르꼬숑
(어스서킷 팀이 영국에서 공동 작업실로 사용하던 치즈팩토리 내부 모습)


트래블로, 어스써킷 earthcircuit, 르꼬숑


여행자들에게 질문하기는 좀 예민한 문제이긴 한데, 금전에 관한 질문도 약간 해 봤다. 그런데 이들은 중국이 자동차로 여행하기엔 너무 비싸다고 판단되어 과감히 중국을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돈이 많아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정신 하나로 여행하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들.

캠핑카로 이렇게 여행 할 정도면 GPS같은 것 하나 쯤은 장착했을 만도 한데, 그런것 살 돈으로 밥이나 사 먹겠단다. 유럽에서 한국까지 그때그때 종이 지도를 구해서 온 것이다. 가끔 지도가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느낌'으로 운전했다고. 애초에 그런 계획을 세웠을 때는 사람들이 비웃었겠지만, 어쨌든 이들은 그런 식으로 지금 여기, 한국에 떡하니 와 있다!



이제 한국을 떠나면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로 갈 계획이다. 그런데 캐나다까지 캠핑카를 배로 운반하는 데, 한 대당 5천 달러 정도가 들어간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캐나다에 도착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을 거라고. 하지만 어떻게든 될 거라는 뜬금없는 낙관론으로 그들의 표정은 더이상 어두워지지 않았다.

아, 정말 어떻게든 될 것인가. 설마, 알고보니 영국 왕실 자손 이런 건 아니겠지? 어떻게해서 어떻게 될 것인지 참 궁금한 사람들. 앞으로 그들이 어떤 길을 어떻게 헤쳐 나갈런지 정말 궁금하다.



트래블로, 어스써킷 earthcircuit, 르꼬숑


어찌보면 참 대책 없지만, 한 번 쯤 꿈만 꿔 봤던 여행을 실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캠핑카로, 집을 가지고 다니며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여행이라는 점이 많이 끌렸다. 게다가 한 팀으로 함께 움직이기에 또 부럽기도 했다.

어떤 때는 여행을 떠날 때,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참 서글프고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런데 그 긴 시간을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이번 여행은 충분히 가치있고 의미있지 않을까. 아무쪼록 별 탈 없이 앞으로도 계속 좋은 여행 하길 바라고, 한국에서 남은 시간 즐겁게 보내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나도 조만간 어떻게든 길을 떠나리라 결심을 다시 다져본다.



*참고
트래블로 : http://www.travelro.co.kr/
EarthCircuit : http://www.earthcircuit.org/
EarthCircuit facebook page : http://www.facebook.com/group.php?gid=37756269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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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