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산 정상에서 나무로 된 산책로를 따라 약간 내려가면 진달래꽃 군락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북쪽 사면에 넓게 자리한 군락지를 시원스럽게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기에 등산객들의 발걸음 또한 자연스레 이곳으로 옮겨진다. 그래서 전망대 주변은 축제기간 내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데, 인파는 나무로 된 산책로가 끝나는 곳까지 줄을 잇는다.
이윽고 편한 산책로가 끝나면 여느 산에서나 볼 수 있는 흙 길이 펼쳐지는데, 이즈음 돼서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길을 택해서 흩어진다. 대부분은 산을 내려가서 다시 출발했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등산로를 택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능선을 따라 앞으로 놓인 길을 계속해서 밟아가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만 하다.
아마도 몰고 온 승용차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대중교통 편을 이용하기 위해 출발점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듯 하다. 하지만 이왕 고려산까지 갔는데 낙조봉을 안 보고 온다면 나중에 후회하고야 말 테다. 쉽게 자주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닌 만큼, 조금만 더 일찍 출발해서 조금만 더 서두른다면 강화도가 자랑하는 관광지를 하루에 두 군데나 볼 수 있다.
고려산 정상에서 낙조봉으로 가는 길은 능선을 타고 가다가 진달래 군락지를 벗어나면 솔숲 속으로 이어진다. 솔숲과 갈대밭이 뒤섞여 있는 모양새를 보니, 진달래 피는 봄뿐만 아니라 여름이나 가을에도 훌륭한 경치를 볼 수 있을 만 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시사철 이곳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또 찾아내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다면 여러모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아기자기한 산으로 이름을 떨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낮은 산인데다가 면적도 그리 넓은 편이 아니라서, 솔숲이나 갈대밭으로 유명한 다른 산들과 견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고려산은 이곳만의 독특한 볼거리들이 있는데, 전설 속의 오래된 사찰들과 백제의 유적들, 그리고 고인돌이다.
이중에 고인돌 군은 낙조봉으로 이어진 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산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볼거리로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사실 이곳에 고인돌이 있다라고 울타리를 치고 표시를 해 놓았기 때문에 아 있는가 보다 하고 다시 보게 되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그냥 모르고 지나칠 돌들이다.
북방식 고인돌 하나는 고인돌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지만, 나머지는 자연적인 붕괴가 이루어져 많이 훼손된 상태다. 그래서 표시가 돼 있어도 이게 고인돌인지 그냥 돌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도 고인돌 석재를 채석한 흔적이 있어서 고인돌 축조과정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곳이라 하니, 역사적 현장으로 한 번쯤 눈 여겨 봐 둘만 하다.
고인돌 군을 지나 다시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몇 번 하다 보면 어느새 낙조봉이다. 낙조봉은 전설의 사찰들 중 하나인 적석사 바로 위쪽의 봉우리인데, 바다와 가까운 곳에 자리해 있어서 바다가 어우러진 섬의 한 단면을 조망할 수 있다. 바로 아래로 고려저수지와 그 주변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그 너머 얕은 산 하나와 바다가 보인다. 강처럼 펼쳐진 바다 너머 석모도가 보이고, 그 섬 너머 또 바다가 보인다. 첩첩 산중이 아니라 첩첩 해중이랄까.
낙조봉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낙조로 유명한 곳이다. 강화8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낙조봉의 낙조를 바로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처음 낙조봉에 들어서면 아무것도 없는 허한 봉우리가 참 멋 없어 보이기도 하는데, 막상 낙조가 펼쳐지면 그 실망감 또한 붉은 태양이 집어삼키고 만다.
낙조봉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큰 석불이 놓여있는 낙조대가 있는데, 이곳은 일몰 장면을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전망대가 꾸며져 있다. 낙조전망대는 낙조봉 바로 아래에 있는 전설의 고찰 적련사에서 사람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낙조봉과 견주어 어느곳이 더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편하게 있기는 전망대 쪽이 나은 편이다.
한 시간을 기다려 낙조를 보았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과정 전체가 낙조라고 본다면, 한 시간동안 낙조를 봤다고 해야 옳을 테다. 딱히 바람막이가 될 만 한 것이 없어서 매서운 바람 속에서 몸을 떨어야 했던 것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산과 바다, 그리고 꽃과 석불이 만들어 낸 낙조는 참 독특한 이미지를 선물했다. 그 모습을 어떻게 한 두 문장으로 표현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라, 그건 따로 소개를 하도록 하겠다.
산행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잘 알겠지만, 산에서 해가 지면 아직 빛이 있을 때 빨리 내려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차 하는 사이에 깜깜해져서 큰일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자마자 더이상 지체없이 서둘러 하산 했다.
▲ 고려산 정상에서 시작되는 나무로 된 탐방로는 진달래 군락지가 끝나는 곳까지 이어져 있다. 천천히 진달래를 구경하며 걸어가면 나도 모르게 길이 끝나는 곳까지 가 있게 된다.
▲ 고려산 정상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진달래 군락지 전망대가 있다. 꽃이 만개하면 이 전망대에서는 화려한 꽃의 축제를 관람할 수 있다. 꽃이 없더라도 강화도에 납짝 엎드린 모양새를 하고 있는 정겨운 산의 모습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 아직 꽃이 만개하지 않아 다소 황량한 모습인데, 꽃이 피면 이 주위도 모두 진분홍 진달래 꽃으로 뒤덮인다. 보아하니 여름에도 초목이 뒤덮인다면 이곳은 싱그러운 여름 바람을 한껏 만끽할 수 있을 듯 싶다.
▲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 낙조봉으로 향하는 길을 걷다보면 고인돌들을 만날 수 있다. 오랜 세월 시간과 싸워 온 것들이라 형체가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래도 산 위에 고인돌 군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독특한 등산로라 할 수 있다.
▲ 낙조봉 근처는 억새밭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저수지와 바다가 보인다. 고려산 정상보다는 낙조봉에서 오히려 고려산이 섬에 있는 산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고려산의 진면목을 보려면 꼭 낙조봉에 올라보기를 권한다.
▲ 낙조봉에서 계단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낙조전망대가 나온다. 그리고 적석사 또한 그 근처에 있다.
▲ 낙조봉 전망대는 석불과 함께 낙조를 보기 좋게 꾸며져 있다. 다만, 바람을 막아 줄 것이 없어서, 거센 바람을 그대로 다 맞아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날이 아무리 좋아도, 낙조를 보려거든 옷을 잘 챙겨 입고 가야 한다.
▲ 내내 불어오던 바람이 잠시 머뭇거릴 때 쯤 해가 졌다. 태양은 마중나온 진달래 꽃의 작별인사에 뒤도 안 돌아보고 무심히 가버렸다. 이내 사방은 어두워졌고, 세상은 침묵 속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