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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달래 꽃 만발한 고향의 봄 - 강화 고려산 진달래 축제
    국내여행/경기도 2011. 5. 9. 17:57


    온 누리에 따듯한 기운이 감돈다. 새로운 생명의 힘찬 박동 소리가 맑은 하늘 저 너머로 울려 퍼진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얇아지고, 점심 때가 지날 때까지 방금 전에 자다 깬 사람처럼 노곤함이 몸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일이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낮잠 한 숨 잤으면 딱 좋을 듯 한 햇살 속에서 어지러운 아지랑이가 맴맴 맴돈다.

    봄이다, 봄. 누가 말 해 주지 않아도, 굳이 달력을 보지 않아도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그 계절, 봄이 다시 찾아왔다. 봄은 그렇게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시나브로 내 곁에 다가와서 어느새 배를 착 깔고 엎드려 있다. 삭막한 빌딩 숲에서 생활하는 신 인류가 봄을 알아차렸을 때, 이미 봄은 중천에 뜬 태양처럼 한창을 맞이하고 있다. 봄은 그렇게 시골을 야금야금 집어 삼키다가 아무도 모르게 살금살금 도시로 다가와 우리를 포위해 버렸다.

    겨울이 가버린 것이 못내 애달파도 어쩔 수 없다. 이제 봄을 두 손 두 발 다 들고 환영하며 맞이할 수 밖에. 그 옛날 울긋불긋한 꽃들이 산에 들에 온 마을에 지천으로 깔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이제 또 봄을 보내면 언제 또 어디서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이 봄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몸 속에, 마음 속에 묵은 때를 훌훌 털러 나가야 한다. 세월이 지나면 이제, 간단히 버스 한 번 만으로 봄 기운을 만끽하러 나갈 수 없을 지도 모르니까.



    봄 하면 뭐니뭐니해도 꽃놀이가 제격이다. 여기저기 울긋불긋 피어난 꽃들 속을 걸으면,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봄볕 만난 병아리마냥 사뿐사뿐 걸음을 떼지 않을 수 없다. 대자연이 선물하는 고운 색깔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모든 근심 걱정 잠시나마 잊어버리고, 밤새 어두웠던 얼굴에는 노란 빛깔 햇살이 드리우고, 겨울내 힘들었던 마음에는 붉은 빛깔 열정이 다시 피어난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강화도에 있는 고려산이다. 매년 4월 중순 경부터 온 산을 진달래가 붉게 물들인다 하여 다소 먼 걸음을 했다. 꽃놀이야 여러 번 해도 질리지 않는 것이지만, 벚꽃이나 다른 꽃들을 놓쳤다 해도 진달래 꽃 만큼은 꼭 한 번 봐 줘야 하지 않겠는가. 예부터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던 그 꽃 진달래를, 영변의 약산은 아니지만 한 번쯤 걸어봐야 비로소 제대로 봄을 맞았다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진달래 꽃 만발한 길을 걸어 본 사람이면 안다. 진달래 꽃 아름 따다 뿌려 놓은 길, 놓인 그 꽃을 즈려밟고 가라는 것이 얼마나 간절한 애원인지를.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어찌 그 피눈물 같은 마음 하나하나를 사뿐히 즈려밟을 수가 있겠는가. 그 애절한 마음, 그 간절한 마음, 진달래는 그렇게 예부터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꽃이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인가. 보릿고개를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고, 살짝 그런 시절을 넘어서 살았던 세대라 하더라도 진달래 꽃 한 움큼 쥐고 질겅질겅 씹어가며 온 산을 헤매던 기억을 간직한 이도 있을 테다.

    물론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지천에서 볼 수 있었던 그 꽃이 이제 더 이상 아무데서나 볼 수 없다는 것은 다들 잘 알 테다. 기껏해야 관상용으로 조금 심어놓은 화단에서나 볼 수 있을 뿐, 옛날 그 많던 진달래 꽃들은 다 어디로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는지, 세월의 무상함을 탓 할 뿐이다. 그래, 그러니 진달래 꽃을 보러 가자. 오래 전 즈려밟고 지나왔던 그 추억을 따라, 한없이 무상한 세월의 한을 따라, 그 맑고 붉고 다정한 진달래 꽃을 보러 가자.




    고려산은 강화 6대산 중 하나로, 옛 이름은 오련산(五蓮山)이었다. 고구려 장수왕 4년에 인도인지 중국인지에서 온 천축조사가 절터를 찾던 중, 고려산 정상의 연못에 피어있는 다섯 가지 색상의 연꽃을 날려서 떨어진 곳에 각각 절을 세웠다 한다. 색깔별로 절 이름을 백련사, 흑련사, 적석사, 황련사, 청련사라 지었는데, 그래서 이 산을 오련산이라 불렀다 한다.

    그 후 고려가 몽골군을 맞아 항쟁하며 수도를 강화로 천도하면서 이 산 이름을 고려산으로 개명했다. 그래서 고려산은 고려와 똑 같은 한자를 쓰고 있다. 지금은 세 개의 사찰과 한 개의 암자가 수천 년의 역사를 지켜오고 있고, 몇몇 연못 터가 전설을 뒷받침 해 주고 있다.

    고려산에서는 해마다 진달래 꽃 필 무렵에 ‘고려산 진달래 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축제가 열린다. 평소에 조용한 산행을 좋아하는 성향이라도, 지천에 꽃이 만발해 들뜬 분위기를 더욱 흥겹게 장식해 준다는 의미에서 한번쯤 축제 속에 몸을 담궈 보는 것도 좋겠다.



    고인돌 광장에서 백련사 쪽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택해서 올라가니,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초입에 조그맣게 미술품들이 설치된 공간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주위에는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인심 좋아 보이는 웃음을 얼굴 가득 머금은 노인장이 커피를 팔고 있다.

    그 길을 따라 쭉 각종 먹거리나 농특산물 판매 장터가 들어서 있는데, 느릿느릿 구경하며 걷다 보면 맛보기로 떡이나 차를 얻어먹을 수 있다. 행여나 정상에 올라 먹을 간식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이 즘에서 떡 한 봉지 사 들고 가는 것도 좋다. 평소에 거들떠 보지도 않던 가래떡이라 하더라도 이런 데서 먹으면 또 꿀맛이라는 거, 산행하는 분들이라면 아마 다들 잘 알 테다.

    이제 갓 태어나 생전 처음 소풍을 가 보는 꼬맹이들처럼 늘어선 노란 개나리 손짓을 옆으로 받으며, 한길로 쭉 뻗어 있는 아스팔트 길을 걷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또 가족이 오순도순 손 잡고 오르기에 딱 좋을 만큼 적당한 산책길이라 생각하면 된다. 단지 길이 너무 완만하고 긴데다가 아스팔트라서 걷는 맛이 나지 않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일행을 뒤로하고 아스팔트 길을 빠져 나와 산길로 발길을 옮겨봤다. 흙 길이지만 길이 잘 정돈되어 있는 등산로였는데, 바글바글 줄 서서 걸어가는 아스팔트 길과는 달리 등산로는 몇몇 등산객들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는 한적한 곳이었다.

    아스팔트 길을 쭉 따라가면 백련사를 볼 수 있지만, 중간에 산길로 빠지면 그것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길을 걷다 보면 갑자기 뻥 뚫린 공터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산 아래 큰 호수와 마을들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오히려 정상보다 이곳이 경치가 더 좋아 보이니, 한 번쯤은 옆길로 빠져 보기를 권하고 싶다.

    해발 400여 미터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오르락 내리락 하다 보니 평소 부족했던 운동량 때문에 숨이 가빠온다. 아, 이러다 산 속에서 죽는 것 아닌가 싶을 때쯤 커다란 군부대 시설물이 보이고, 이내 정상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오르막길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낮아도 산은 산이라고, 정상에 오르니 이미 온몸은 땀 범벅이었다. 더군다나 등산로를 따라서 조금 힘들게 왔더니 봄볕에 얼굴도 조금 그을었다. 정상에서는 그 모든 노력들을 보상해 주듯 맑고 깨끗한 바람이 불었고, 한낮의 봄볕이 비추는 강화도의 풍경을 발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고려산 정상에 오르면 능선을 따라서 넓게 펼쳐진 진달래 꽃들을 볼 수 있다. 지도에 ‘진달래 군락지’라고 표시되어 있는 곳인데, 만개한 군락지를 본다면 아마도 열 일 재치고 고려산으로 달려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테다. 하지만 우리가 택한 날은 아직 진달래가 만개하지 않은 때라, 절정의 화려함을 구경할 수는 없었다.

    약간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많은 진달래 꽃을 볼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괜찮다며 자족할 수 밖에. 갑자기 어린 시절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봄이면 온 산으로 진달래 꽃을 한 움큼 쥐고 뛰어다니다가 해 질 무렵 배시시 웃으며 집으로 들어선 나에게, 진달래는 귀신을 부르니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라며 무서운 얼굴로 나무라셨던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았는지, 그 후로는 진달래가 너무 많이 피어 있으면 좀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그 빨간 손짓에 나는 또 진달래 꽃밭을 마구 뛰어다녔지만.



    어릴 때 생각이 나서 정상 근처에 판을 펼친 주막을 기웃거려봤다. 행여나 진달래 화전이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집에 진달래를 한 움큼 쥐고 들어온 날이면 할머니는, 이제 먹지도 않는 걸 뭘 이리 많이 들고 들어왔냐며 야단을 치셨지만, 그 다음날 낮엔 항상 진달래 꽃으로 화전을 부쳐 주셨다.

    그 당시 그 마을 어른들은 진달래가 배고픔의 상징이었지만, 내 경우는 진달래는 눈으로 먹는 음식이었다. 진달래 화전이라고 해서 딱히 무슨 향기로운 꽃 맛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불그스름한 꽃이 큼직하게 떡 하니 박힌 화전은 분명 진달래 맛이 났다. 그 화전을 다시 한 번 입에 넣으면, 옆에서 ‘그게 그렇게 맛있나’하며 싱긋이 웃어주시던 할머니의 얼굴이 다시 떠오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막에 진달래 화전은 없었다. 자연보호 차원에서 그런 것인지, 이제 아무도 찾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발길을 돌려 아직 올라오지 못한 일행을 기다리며 모퉁이 한쪽 구석에 앉았다. 여기저기 불그스름한 기운들이 봄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그 옛날 어린 시절을 보내던 그 산골을 빙 둘러싼 산들에 꽃이 필 때는, 언제 피었는지도 모르게 자고 일어나면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많은 꽃들이 피어 있었다. 비록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바람에 치마저고리 날리듯 하늘하늘 날리는 진달래 꽃을 보니 그 마을이 다시 떠올랐다. 눈을 감으니 바람이 다시 나를 그곳으로 데려 가는 듯 했다. 봄이다, 봄. 이 먼 타향에서 무엇을 찾느라 헤매고 있는지, 아주 오랫동안 찾지도 들르지도 생각지도 못했던 내 고향, 떨어진 꽃잎 사뿐히 즈려밟고 떠나온 그곳에도 이제 봄이로구나. 


     

    ▲ 고인돌 광장에서 고려산 올라가는 길로 들어서면 작은 마을 하나를 만날 수 있다. 봄은 이곳 마을까지 이미 내려와 있어서, 보잘것 없는 길 가 틈새에서도 꽃들이 환한 얼굴을 내비치고 있었다.
     


    ▲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고려산 입구 쪽에는 여러가지 미술품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고려산 진달래 예술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꾸미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본격적인 축제기간 중에는 더욱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진다 한다. 예술제라는 이름에 맞게 더욱 많은 예술품들을 산 여기저기에 꾸며서 독특한 산을 만들어 갔으면 싶다.










    ▲ 일행이 들이댄 카메라에 당황하는 기색 없이 허허 웃으며 포즈를 취재 주신 커피 노점 주인장. 나중에 하산할 때 꼭 들러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했지만, 다른 곳으로 하산 하는 바람에 다시 들르지 못 했다. 고려산 입구엔 이 커피점 말고도 각종 특산품 판매점들이 쭉 늘어서 있어서 등산객들의 발길을 이끈다.



    ▲ 고인돌 광장 쪽에서 들어가는 등산로는 아스팔트 길로 쫙 깔려 있다. 그래서 등산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나, 어린 아이들도 쉽게 길을 따라 걸어갈 수 있다. 다만 길이 좀 길어서 걷다보면 늘어지는 감이 있고, 산 허리 즘으로 들어가면 딱히 볼거리가 없다는 게 단점이다.
     





    ▲ 밋밋한 아스팔트 등산로를 벗어나 산길로 빠져서 정상을 향했다. 아무래도 사람 많은 아스팔트 길 보다는 산길 쪽이 사람도 적고 등산하는 맛도 난다. 또한 꽃이나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경치도 이쪽이 훨씬 볼거리가 많다.
     





    ▲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사방이 탁 트인 공간에 누군가의 무덤이 나온다. 저수지와 멀리 바다까지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 고려산 정상 근처에서 진달래 군락지를 바라본 모습. 아직 꽃이 다 피지 않은 때 가서, 진달래 꽃 만발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군대군대 핀 꽃들이 이곳까지 올라온 수고에 보람을 느끼게 해 주었다.






    ▲ 꽃이 만개하면 군락지 전체가 진분홍 진달래 꽃으로 꽉 찬다. 그 멋진 모습을 보려면 진달래 축제 홈페이지를 참고해서 때를 맞추어 가면 된다.
     


    ▲ 고려산 정상에서 만난 한 외국인. 독일에서 왔다고 하는데, 어떻게 알고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는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곳을 누비고 다니는 외국인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 나무로 된 탐방로를 따라 쭉 걸어가면 진달래 군락지가 끝나는 곳까지 편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산을 내려가는 길을 택하든지, 계속해서 낙조봉으로 가든지 할 수 있다.






    참고)
    고려산 진달래 예술제 홈페이지:
    http://www.ghfestival.com/open_content/festival01/overview.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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