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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천전곡리 구석기축제 & 전곡선사박물관
    국내여행/경기도 2011. 4. 3. 23:45


    '연천 전곡리'하면 뭔가 떠오르는 것 없는가? 옛날 국사시간 때 다들 아마 구석기 유적지와 신석기 유적지를 구별하는 시험문제 한 번 쯤은 풀어봤을 테다. 듣도보도 못 한 지명을 쭉 나열한 다음 이게 구석기고, 이게 신석기고 하면서 달달 외워야 했고, 외워도 시험문제로 나오면 헷갈려서 틀리기 일쑤였던 그 지명들. 그 중 연천 전곡리는 구석기 선사유적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학창시절 혹은 공무원 시험 같은 곳에서만 잠시 나오는 그 이름. 그리고 먹고 사는 데 별 도움 되지 않아 쉽게 잊혀지고, 잊어버리는 지식. 거기가 구석기 유물로 유명한 곳이다 달달 외우기만 했지,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유물들이 나왔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등의 의문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쉽사리 뒤로 묻히곤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잠시 동안은 새겨져 있었지만, 곧 잊혀지고 쓸모 없는 이름이라 기억되던 그곳이 축제라는 이름으로 다시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 웬만큼 전국 방방곡곡 축제들을 확 꿰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그 이름도 생소한 '연천 전곡리 구석기 축제'가 바로 그것이다.

    올해로 이미 19회 째를 맞이하는 이 축제는, 올해 5월 4일부터 5월 8일까지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 일대에서 펼쳐진다. 개장을 코앞에 앞둔 이 행사를 미리 한 번 찾아가 보았다.








    연천 유적지는 조각 몇 개와 토층전시관 등으로 이루어진 넓고 황량한 벌판이었다. 아마도 유적지를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섣불리 개발을 할 수 없어서 뭔가 휑해 보이는 공간을 그대로 놔 둔 게 아닌가 싶다. 그 벌판에 들어선 첫 느낌은 유적지에 왔다기보다는, 넓은 자연공원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듬성듬성 놓여진 조각들로 볼거리를 제공하려 하기 보다는, 요즘 한창 유행하는 생태공원 테마로 단장하고 접근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황량하지만 나름 운치가 있어서 가족이나 연인들끼리 가서 사진을 찍기엔 좋은 곳이었다.

    유적지 안쪽에 마련된 토층전시관에는 유적 발굴 현장 모습을 보존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규모여서 대충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면 그 뿐이지만, 여기서는 아이들의 눈길을 끌만 한 것이 있었다. 작은 강당에서 10분 가량의 3D 입체 영화를 상영해 주는 것. 선사시대에 대한 지루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라, 어린아이와 주먹도끼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입체만화였다. 아이들과 함께 가족들이 구석기 시대 모습을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는 짧은 영화로 볼 만 했다.











    이번 축제를 위해서 구석기 시대 퍼포먼스 경연대회도 연다고 한다. 1등 상금이 무려 500만 원 이니까, 용돈 궁하고 등록금 마련해야 하는 대학생들은 눈에 불을 켜고 한 번 도전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일반적으로 티비에서 볼 수 있는 얼룩무늬 옷을 입고 나와서 춤만 춘다면 입상은 어렵지 않을까. 뭔가 기발하고 독특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할 텐데, 그걸 생각하는 건 머리 아파 못 하겠고, 나는 그냥 어떤 재미있는 퍼포먼스가 나올까 기대하며 축제에 가서 보는 쪽을 택하련다.

    유적지 한 가운데 있는 매머드 동상은 굉장히 비싸게 제작한 거라고 한다. 몸집이 거대한 걸로 봐서 재료비만 해도 꽤 들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드넓은 유적지를 풍요롭게 채우기는 역부족이었지만. 적은 비용으로 뭔가 풍성해 보이도록 장식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 텐데 라는 안타까움이 자꾸 드는 건, 내가 짠돌이여서 일까.

    그 옆쪽으로 늘어서 있는 허름한 움막집들에는 나무와 장작들이 쌓여있다. 안내하시는 분 말로는, 이 주변에서 바베큐 파티가 열릴 거라고 한다. 사실 나 역시도 구석기 축제를 하면 대체 가서 뭘 하는 걸까 궁금했다. 그런데 의외로 할 게 많다. 어떤 것들이 있냐면, 가보면 안다. 라고만 적으면 너무 무심한가.

    연천 구석기 축제에서 펼쳐질 행사는 대략 이렇다. 연천 농특산품 판매, 14개국 선사유물 전시 및 전문가 시연, 대형 석재 끌기 체험, 바베큐 체험, 구석기 퍼포먼스 컨테스트, 선사시대 석기 제작, 집짓기 체험, 벽화 그리기, 찰흙 공작, 구석기 퍼레이드, 불꽃놀이 등이다. 대강 면모를 보면 어떤 형태일지 짐작이 가지만, 그래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솔직히 유적지는 그저 황량한 벌판일 뿐이라서 그다지 눈길을 끌지도 못했고, 흥미도 생기지 않았다. 축제가 펼쳐져서 이런저런 이벤트들이 있고, 사람들이 바글바글 한다면 또 다르겠지만, 미리 가 본 유적지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여길 왜 왔나, 이곳은 어디인가, 나는 누구? 라는 깊은 질문으로 들어가려던 찰라, 눈 앞에 이상한 형태의 건축물이 떡 하니 보였다. 모양도 우아한 곡선으로 신기하게 생긴데다가, 껍데기마저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서, 마치 UFO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조형물인가 싶었지만, 다가갈수록 건물인 것이 확실했다. 안내자는 이곳이 곧 개관할 '전곡선사박물관'이라고 소개했다. 

    전곡선사박물관은 아직 내부 준비중인 박물관이다. 정식 개관은 2011년 4월 25일 날 한다. 그래서 내부는 아직 빈 곳이 많고,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는데, 외형 뿐만 아니라 내부 모습마저도 여태까지 잘 볼 수 없었던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기 때문이다.

    최첨단 컨텐츠들을 수용하는 건물들도 내부를 이렇게 꾸미기 어려운데, 박물관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니! 정말 놀라울 뿐이었다. 그 동안의 박물관에 대한 이미지를 한 순간에 확 깨어주기 딱 좋은 곳이니만큼, 개관하면 꼭 찾아가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정식으로 개관하면 전시물들을 모두 유리로 둘러쌀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전시물들 주위에 유리판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더욱 개방된 느낌을 주었고, 그런 개방성은 유물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이끌어 주었다. 통유리가 가운데 떡하니 가로막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너와 나는 다른 존재라는 인식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개방된 형태로 유물들과 전시물들을 보고 있으니, 이 사람(?)들이 나와 상관 있는 사람들이구나라는 알 수 없는 친근감이 들었다.

    더군다나 건물 자체는 최첨단 사이버 스페이스 형태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 들어있는 내용들은 선사시대를 주제로 하고 있으니, 뭔가 이질적인 듯 하면서도 묘하게 조화로운 느낌이다. 그건 아마도 미래를 지향하는 듯 한 건물에, 현재를 살아가는 관람객이 들어와, 과거를 구경한다는 박자가 척척 맞아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결국 미래와 과거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연결돼 있다는 것을, '나'라는 현재가 연결고리가 되어 스스로 인지할 수 있게 해 주는 공간이었다. 가만히 들어가 앉아만 있어도 스스로 학습이 되는 듯 한 느낌. 학교가 이랬으면 나 정말 공부벌레가 됐을 지도 모르겠다 (말은 그렇게 하는 거다 원래).















    이윽고 아직 오픈도 하지 않은 선사박물관의 예쁜 카페테리아에서 조촐한 설명회가 열렸다. 김규선 연천군수가 직접 나와서 구석기 축제와 연천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주로 연천에 대한 자랑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연천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는데, 이 분은 연천 자랑을 하루 종일 해도 모자랄 만큼 늘어놓았다. 그 중 일부만 여기에 옮겨 담아 보겠다, '말씀이 너무 많으셔서 다 삭제했어요'하면 군수님이 얼마나 슬프겠나.



    이번에 19회 째를 맞이하는 연천 전곡리 구석기 축제는 1970년대 한 병사에 의해 발견되었다 한다. 구석기 유적이야 세계 어디서든 얼마든지 출토될 수 있는 물건이지만, 전곡리에서 발견된 것은 아슐란형 주먹도끼였다. 그 당시에는 한국을 넘어서 아시아에서는 나올 수 없다고 여겨졌던 것인데, 그도 그럴 것이 아슐란형 주먹도끼라는 것은 자연에 있는 것을 그냥 갖다 쓴 것이 아니라, 머리를 써서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아시아 인이 그렇게 머리가 좋았을 리 없다며 무시했었고,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것이 한국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한다. 그런 것이 발견되었으니 국제적으로 이목을 끌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고, 국가적으로도 발굴에 힘을 기울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도 중국이나 일본이 자존심을 걸고 아슐란형 구석기 유적을 찾고는 있지만, 아직 찾지 못 한 상태라 한다. 그래서 김규선 연천군수는, 전곡리 유적지는 한국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전 세계에 마음껏 자랑해도 되는 훌륭한 유물이라 여러번 강조했다.

    이런 중요한 유적지를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축제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하여 시작한 것이 구석기 축제라 한다. 처음에는 대학교수 몇몇과 읍 사람들이 모임을 가지는 것이 전부였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규모를 크게 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재 구석기 축제를 이 정도로 크게 하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와 한국 두 나라 밖에 없다고. 특히 연천 전곡리 구석기 축제는 작년에 5개국을 초청해서 세미나를 연 것에 이어, 올해는 10개국을 초청할 예정이고, 더 나아가 나라마다 공간을 주어 선사시대 엑스포(expo)를 여는 것이 목표라 한다. 2015년 쯤에 국제 엑스포로 업그레이드 할 것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짜고 있는 중이니, 앞으로 기대를 해도 좋을 거라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구석기 시대라는 한정된 주제로 축제를 열다 보니, 내용을 꾸미는 데 적잖이 어려움이 있기는 있다고 한다. 유적지라는 것, 특히 구석기시대 유적지라는 것이 매장된 돌 덩어리 밖에 없는 곳이라, 딱히 뭔가 보여줄 것이 없다는 한계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컨셉이 바로 교육과 체험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축제는 가족끼리 오손도손 와서 선사시대를 체험하고,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주된 컨셉으로 가져가고 있다. 그 전략이 먹혀 들었는지, 작년에 열린 축제에서는 5일간 대략 80~90만 명 정도가 다녀갔고, 올해는 그보다 조금 더 많이 다녀갈 것을 예상하고 있다 한다.

    전곡리 뿐만 아니라 연천 일대는 유적지들이 많아서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한다. 연천은 사실 인구가 그리 많지도 않은데 수도권이라는 지형적 이유로 개발에도 제한이 많다. 게다가 군부대들도 있어서 더욱 지역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축제를 위한 각종 편의시설 등의 인프라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것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깨끗한 지역을 맛볼 수 있다는 장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일년 중 하루 쯤은 맑은 공기와 깨끗한 자연을 함께 맛보는 것을 기쁨으로 삼아보자. 이왕이면 축제기간이 좋겠지만, 시간 맞지 않고 오가기 불편하다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그저 바람 쐬러 간다 생각하고 휑하니 가서, 선사박물관이라도 보고 오자. 기존의 박물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확 깨는 신선한 충격을 시원한 바람과 함께 맛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테다.



    2011 연천 전곡리 19회 구석기 축제 홈페이지: http://www.goosukg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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