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주는 푸르다 - 경기도 양주시 1박 2일 1/2국내여행/경기도 2011. 6. 3. 02:07
양주는 푸르다. 양주시 어딜 가도 나즈막한 산과 푸른 초목들이 아담하게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늦은 봄볕이 점점 열기를 뿜어내자, 나무 사이로 구슬땀 같은 햇볕이 방울방울 쏟아져 내렸고, 그 아래 한 줄기 실개천은 이제 여름이 왔다고 조잘조잘 낮은 소리로 노래하며 흐르고 있었다.
양주는 서울 종로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되는 거리였다. 지명이 낯설어 검색을 해 보아도 외국 술 양주만 검색 돼 나와 난감했던 곳. 포천, 의정부, 파주는 잘 알면서도, 그곳들로 가기 위해 지나는 양주시는 정작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정말 그런 곳이 있긴 있나 하며 의아했던 곳. 차라리 장흥이 더욱 알려져 있어서, 장흥이라고 하면 그나마 이름은 들어 봤다고 할 만 한 곳. 그곳으로 1박 2일 동안 양주시가 진행한 투어를 다녀왔다.
장흥자생수목원
간밤에 설친 잠으로 아침 일찍 시간 맞춰 양주시티투어버스에 탑승하니 이내 잠이 쏟아졌다. 비몽사몽 중에 조금씩 막히는 주말의 서울 도로를 가다가 서다가 하기를 한 시간 남짓. 서울 시내를 빠져나가자 버스는 푸른 초목 뒤덮힌 아담한 시골길을 시원스레 달렸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눈부신 초록이 무방비 상태인 나를 와락 덮쳐왔다.
구름 한 점 없는 오월의 파란 하늘과, 반짝반짝 부숴지는 햇볕 속에 빛나던 산과 초목들. 굳이 초록을 찾아 또 들어가지 않아도 양주 전체가 초록이었는데, 그 속에 또 수목원을 찾아갔으니 초록에 내 가슴이 새파랗게 물 들 정도였다.
부드러운 바람 속에 나직하게 속삭이는 초목들의 낮은 속삭임, 하늘처럼 높고 곧게 뻗은 나무와, 결혼식에 입장하는 신부처럼 화사한 오만가지 꽃들. 그 속에서 맞이하는 늦은 아침은 한 달 동안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 주고, 새롭게 활기찬 하루를 시작할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의기소침하고 짜증났던 때가 언제였던가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을 시원하고 상쾌하게 만들어 준 수목원은, 이어지는 여행의 시작을 상쾌하게 맞이하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장흥자생수목원은 장흥관광지 안에 있는 자연생태수목원으로, 기존 산림과 식생을 훼손하지 않고 계명산 형제봉 능선 자연림 7만 평을 이용해 만든 수목원이다. 자연스럽게 잘 꾸며진 수목원 사이를 걸으며 평소에 잘 접하지 못했던 식물들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 곳 해설사의 재미있는 해설을 들으며 숲을 거닐면 또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보통 해설을 듣는다는 것을 마치 딱딱한 수업을 듣는 것인 양 생각하기 쉬운데, 이 곳 해설사들은 정말 재미있게 식물들이 요모조모를 설명해 주었다. 해설사들을 이 곳 명물로 알리고 키워내도 독특한 수목원이 될 수 있을 정도다.
장흥조각공원
장흥조각공원은 규모 면에서 봤을 때는 그리 크지 않은 공원이다. 양주시에서 조각가들을 지원하고, 그 조각가들이 만든 작품들로 공원을 구성했다는 데 의의가 있지만, 그리 많은 구경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뭔가 많은 볼거리를 찾아 간다면 실망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지쳤을 때나,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기분좋게 앉아 쉴 곳이 필요하다면 한 번 쯤 찾아볼 만 한 곳이다. 공원 안쪽에는 작은 강도 흐르고 있어서, 호젓하게 발 담그고 앉아 느긋하니 오후 햇살을 즐기기도 좋다. 여름에 수위가 좀 높아지면 어린아이들은 물장구 치며 놀기도 좋은 곳이다.
장흥자생수목원과 장흥조각공원 모두 장흥관광지(문화예술체험특구) 안에 위치해 있다. 양주시는 장흥 쪽에 관광단지를 조성해서 여러가지 보고 즐길 거리들을 만들어 놓았다. 장흥관광지 안에는 자생수목원, 조각공원, 아트파크, 송암스페이스센터, 청암민속박물관 등이 모여 있다. 그래서 장흥을 처음 찾는 사람들이나 시간이 별로 없는 사람들도 이 관광단지 안에서 한나절 머물다 갈 수 있게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양주나 장흥이 낯선 사람들은 일단 이곳으로 목적지를 잡고 한 번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대중교통이 그리 편리하지만은 않아서, 차 없는 사람들은 이동하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분들은 차라리 양주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청암민속박물관
민속박물관 하면 대개 조선시대 이전 모습들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청암민속박물관은 우리나라 50~60년대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20여 년 동안 수집한 물건들을 테마별로 전시해 놓고, 그 당시 생활상을 마네킹 등을 이용해 재현해 놓았다. 대략 70년대 까지의 모습도 볼 수 있으니, 자식들에게 '아빠 어릴 때는'이라고 말로 해 주는 것 보다 이런 곳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세대차이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가만히 둘러보면 모아놓은 자료들은 상당히 많은데, 지금 조성된 부지가 넓지 않은 편이어서 효과적으로 전시해 놓지 못 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쪽 구석에 무뚝뚝하니 쌓여 있는 물건들을 보면 더욱 그 시절 모습을 잘 표현해 놓은 듯 한 느낌도 들기에, 각자 취향에 따라 좋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할 모습이다.
박물관 입구 쪽에는 '피자성 효인방'이라는 피자집에 있다. 안내자가 우리나라 최초의 피자집이라고 소개하자, 그렇지는 않고 그 당시에도 서울 종로 지하 쪽에 몇몇 피자집이 있긴 있었다고 말 하는 주인장의 솔직함에 신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피자집들 중 하나임은 틀림 없다.
옛날에는 대학생들이 이곳까지 찾아와서 줄 서서 피자를 먹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워낙 가게들이 많이 생겨서 그런지 한적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직접 반죽하고 토핑하고 정성스럽게 굽는다는 원칙은 바뀌지 않아서,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제대로 된 재료들로 만들어진 피자를 맛 볼 수 있다 한다. 게다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단체로 피자 만들기 체험 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한다.
장흥 아트파크
장흥 아트파크 안의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 이런 촌구석에 저런 작품들이라니. 설마 진품일까. 이내 내 의문을 큐레이터가 와서 해결해 주었다. 모두 진품이라고.
지금 장흥 아트파크 내 미술관에는 Modern & Contemporary 라는 제목으로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미술에 조금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쯤 들어 봤을 만 한 사람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데미안 허스트, 백남준, 마크 퀸, 앤디 워홀, 케네스 놀란드, 로이 리히텐슈타인, 프랑크 스텔라,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사람들 말이다.
비록 전시된 작품 수가 그리 많지 않고, 그들을 대표하는 작품들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곳에서 그런 사람들의 작품들을 뜻하지 않게 만났다는 것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장흥아트파크는 미술관, 조각공원, 어린이체험관, 공연장, 작가가 만든 놀이터 등이 있는 복합문화체험 공간이다. 어째서 이런 곳에 이런 작품들이 걸려 있는지 의아했더니, 이쪽 지역에 우리나라 최고 미술작품 경매 업체인 서울옥션 수장고가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미술관은 본관 외에도 조그만 여러개의 분관 형태의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은 건물들 안에는 우리나라 젊은 예술가들 중 촉망받는 사람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가 들어본 이름들도 꽤 있었으니, 미술 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흥미로운 공간일 테다. 이런 공간과 컨셉을 잘 이용해서, 서울옥션과 함께 미술품 투자를 골자로 한 패키지 관광 등을 개발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미술품 투자를 엄두도 못 내는 사람들은 그냥 입장료 내고 볼 수 있도록 해 주고.
감히 비싸서 살 엄두도 못 내는 사람들에게 수장고를 열어서 눈으로나마 볼 수 있게 해 주면 좋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도 볼 수 있었던 것만 해도 이곳에 온 보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장흥 아트파크는 미술관 외에도 조각공원, 어린이체험관, 공연장, 작가가 만든 놀이터 등이 있다. 정문에서 입장권 하나만 사면 모든 곳에 출입이 가능한데, 미술에 관심이 없어도 넓게 펼쳐진 조각공원만 거닐어도 아름답고 여유롭게 오후 반나절을 보낼 수 있다. 다만, 미술관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입장료가 비싸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 흠이다. 미술관 만이라도 입장료를 따로 받아서, 전체 입장료를 좀 낮추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송암 스페이스 센터
사실 조각공원이라든지, 미술관이라든지, 박물관 같은 것은 다른 지역 관광지에 가서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들이다. 그런데 장흥관광지 안에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여행지가 있다. 바로 송암스페이스센터다.
이곳은 원래 옛날에는 '송암 천문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나사(NASA)에서 인정하는 공식 우주 교육 프로그램이 들어오면서 '스페이스 센터'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다 한다. 미국에서 초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인된 우주 교육 프로그램을 이곳에서 접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아시아에는 단 하나뿐인 시설이라 자부심이 대단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으로 알려져 있는 이소연 씨가, 우주비행을 위해 교육을 받던 중에 우리나라에도 나사에서 공인한 우주교육시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귀국하자마자 이곳을 찾았다는 일화도 있었다. 일정 인원의 청소년들이 단체로 신청해야만 제대로 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는 지 경험해 볼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사실 우주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챌린저 러닝 센터(Challenger Learning Center)는 일반인들에게 큰 관심을 끌 수 없는 부분이다. 초중고교생들이 학교나 우주소년단 같은 곳에서 단체로 신청해야만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 성인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청암스페이스센터는 원래 천문대였던 곳이 종합 우주센터로 확장된 것이기 때문에, 천문대 역할은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천문대에 가서 천체관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문제는 천문대에 오르려면 케이블카를 타야 하는데, 바람이 많이 불면 운행이 중단되기 때문에 운 없으면 천문대에 못 갈 수도 있다는 것. 우리가 그 운 없는 케이스였다.
천문대에 올라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플래네타리움(Planetarium)에 들어갔다. 이미 다른 곳에서 봤거나 해서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플래네타리움은 주로 별자리를 천정에 비춰 놓고 설명하는 형식의 일종의 교육시설이다. 그런데 그 옛날 기억을 가지고 별 기대 없이 들어간 플래네타리움 안에서 정말 깜짝 놀랐다.
옛날처럼 천구 모형에 불을 밝혀 천장에 비추는 형태가 아니라, 돔 형식의 천장 전체가 화면으로 돼 있었다. 영화관이 스크린이 천장 전체에 들러붙어 있다고 생각하면 상상하기 쉽다. 스크린 크기도 어마어마하게 큰 데다가, 영상이 완전 3D로 나오기 때문에 정말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요즘 유행하는 3D 영화들이 장난감 같은 안경을 써야만 되는데, 이 플래네타리움은 안경 같은 것 전혀 쓰지 않고도 3D 영상이 보인다. 여기를 한 번 가 보면, 지금 극장들의 3D는 얼마나 유치한 장난인지 알 수 있을 테다.
양주에서 하룻밤
양주에서 1박2일 여정을 보내기 위해 저녁에 도착한 곳은 아트시티 펜션이었다. 이 펜션은 양주 장흥면 돌고개유원지에 있는데, 각종 민박과 모텔들이 많은 언덕쪽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주인장이 시원한 전망을 위해 일부러 이 꼭대기에 펜션을 지었다는데, 그 노력이 헛되지 않게 펜션 맞은편으로는 겹겹이 쌓인 산들이 마치 파도처럼 넘실대고 있어서 고요하면서도 설레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줬다.
오르막길이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걸어서 오르는 데 조금 힘이 들기는 하지만, 그 정도 노력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전망을 보여준 곳이었다. 시간이 많으면 이 펜션에서만 뒹굴거리며 한나절을 보내도 좋을 듯 하다.
'국내여행 > 경기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천 차이나타운의 독특한 카페들 1 - 카페 립, 뽀야, 풍선넝쿨, 개항누리길 (1) 2011.06.27 알고 보면 매력적인 - 경기도 양주시 1박 2일 2/2 (0) 2011.06.03 축제는 끝나도 멈추지 않았다 - 주말마다 펼쳐지는 인천 차이나타운 거리예술제 (1) 2011.06.02 사자와 용이 뛰어 놀던 홍등의 거리 - 인천 중국의 날 문화축제, 차이나타운 (1) 2011.06.02 소소한 재미와 독특한 분위기 - 인천 중국의 날 문화축제, 인천 차이나타운 (0) 2011.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