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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용이 뛰어 놀던 홍등의 거리 - 인천 중국의 날 문화축제, 차이나타운국내여행/경기도 2011. 6. 2. 01:17
삼삼오오 손 잡고 길 따라 걷는 사람들 소리만 울려 퍼지던 한낮의 뜨거운 하늘 아래, 어디선가 둥둥둥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축제구역이 그리 넓지 않기에, 북소리를 따라 걸어가니 이내 소리가 들려 오는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차이나타운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고, '인천 중국의 날 문화축제'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길거리 퍼레이드 공연'이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북소리가 워낙 크고 요란했기에 다른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며 슬금슬금 모여들었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로 '자장면 거리'는 금방 빽빽하게 메워졌다.
퍼레이드 행사에서 통제를 담당한 사람들은 군중을 원형으로 둘러 서게끔 했는데, 자꾸만 앞으로 밀려 나오는 사람들 때문에 일정한 원형을 유지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그 원 안쪽에는 김종길 인천관광공사 사장과 인천홍보대사로 하루종일 고생했던 크리스티나, 비앙카가 있었고, 송영길 인천시장은 퍼레이드 시작을 알리는 폭축에 불을 붙였다.
요란한 소리로 악귀를 쫓는다는 폭축이 하나씩 하나씩 폭발하며 쉴 틈 없이 타 들어갔고, 이내 거리는 자욱한 연기로 뒤덮였다. 그 속에서 번쩍이는 불꽃이 여기저기로 튀었는데, 그러니까 원 안쪽으로 자꾸만 모여들던 사람들도 주춤하며 뒤로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폭축이 악귀 뿐만 아니라 사람도 쫓는구나.
폭축이 다 터지고 나자, 약간 자리를 옮겨서 '스카이 힐' 입구 앞쪽 길거리에서 본격적인 길거리 행사가 펼쳐졌다. 북을 치던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고 무술 시범으로 이어졌다. 화려한 동작과 절도 있는 몸놀림에 사람들의 감탄사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짤막한 무술시범이 끝난 후에는 사자춤이 펼쳐졌다. 무술시범이 있었던 옆쪽 길에 간이 무대가 마련돼 있었고, 사람들은 또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애써 가운데로 파고들면 또 다른 곳에서 공연을 하고, 또 거기로 파고들면 또 자리가 옮겨지고 해서 사진 찍기는 참 힘들었다.
그냥 혼자 설렁설렁 놀러 나간 거였다면 구경을 포기하고 한적한 어딘가로 가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애써 사람들 속을 파고들어 부대끼며 구경하니 그것 또한 축제의 재미라 할 만 했다. 다행히도 이번 이 축제에는 이상한 사진사들이 오질 않아서, 서로 사진 찍겠다고 추한 행태를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요즘 축제장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주의 인물들로 꼽히는데.
사자 안에는 사람 두 명이 들어가 춤을 추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발 하나 올려놓을 정도의 발판이 몇 단 놓여 있어서 사자춤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줬다. 일반적으로 그냥 평지에서만 하던 것을 보다가 이런 장치 위에 올라가는 사자를 보니 더욱 신기하고 놀라웠다. 모여든 사람들 역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사자춤에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여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도 길거리는 북소리 말고는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사자는 한 계단, 한 계단 춤을 추며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맨 마지막 발판에서 높은 점프로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그냥 딛고 서기도 어렵고 위험한 발판을 사자 탈을 쓰고 춤을 추며 내려오는 모습에 사람들의 박수가 한여름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그 소리가 흥에 겨웠는지 사자는 막바지에 더욱 열심히 더욱 강렬하게 몸을 뒤틀며 춤을 추었고, 마지막에는 엎드린 사자 입에 송영길 인천시장이 빨간 봉투를 내미는 것으로 사자춤 행사는 막을 내렸다.
사자춤이 끝나자 이번엔 용이 나왔다.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여의주를 들고 앞에서 용을 조종하고, 파란 옷을 입은 남자들은 꿈틀대는 용의 움직임을 표현하며 멋진 동작을 보여줬다.
용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려니, 이건 춤과 무술과 묘기가 한 데 어우러져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자춤이 호흡이 척척 맞는 2인으로 구성된 춤이었다면, 용은 단합으로 뭉쳐진 팀 플레이였다. 단 한 사람이라도 호흡이 맞지 않으면 용의 움직임이 어색해지거나, 몸통이 찢어질 수도 있는 어려운 공연이었다.
이걸 보니 단연 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길거리 퍼레이드고, 그 중에서도 용춤은 꽃이라 할 만 했다.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이런 공연을 공짜로 보여줄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이런 공연을 길거리에서 하는데도 전혀 어색함 없이 와 닿는 것은, 이곳이 바로 인천 차이나타운이기 때문이었다.
용이 또아리를 틀고 여의주를 물려고 하는 모습으로 용춤도 막을 내렸다. 그 후엔 용과 사자가 선두로 나서면서 길거리 행진이 시작됐다. 길거리 퍼레이드는 옛 중국의 결혼식 행렬을 묘사한 것이었다. 각종 폐물과 장식품들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꽃가마와 함께 뒤따르는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맨 마지막에는 템버린을 손에 들고 율동을 하는 미녀들이 행렬의 후미를 장식하고 있었는데, 특히 할아버지들이 저기서 며느리감 찾아 봐야 한다며 난리였다.
맨 앞에서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자는, 길을 가다가 몇몇 집 앞에서 춤을 추었다. 춤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 집 앞에 폭축을 터뜨려서 왔다는 걸 알리고, 주인이 나오면 사자 두 마리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 때 펼쳐진 사자춤은 축제 시작할 때 보여줬던 것보다는 훨씬 간단한 것이었지만, 두 마리가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이 독특해서 사자들이 집 앞에 멈춰 설 때마다 구경꾼들도 함께 멈춰서서 구경했다.
춤이 끝나면 사자들은 가게 주인 앞으로 가서 머리를 숙였고, 그러면 밖에 나와 있던 주인은 빨간 봉투를 사자 입에 넣어 주었다. 악귀를 쫓아주어 고맙다는, 혹은 좋은 공연 보여주어 고맙다는 표시인 셈이다. 빨간 봉투를 받은 사자들은 기분이 좋아 다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다음 집으로 향했고, 구경꾼들 또한 웃으면서 사자의 뒤를 따랐다. 행렬은 그렇게 한 발, 한 발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화교들이 다니는 학교인 중산학교 쪽으로 퍼레이드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잠시 행렬을 빠져나와 의선당으로 가봤다. 이번 퍼레이드를 시작한 곳이 의선당이라는 말을 들어서였다.
의선당은 스카이힐 옆쪽, 자장면 거리 바깥쪽으로 가다보면 길 모퉁이 쯤에 있는 조그만 규모의 사당이다. 인천 개항 후 이곳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서로의 화합과 정신적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라 한다.
의선당은 산동지방의 도교 식으로 1893년 경 세워졌다 하는데, 사당 안에는 관음보살, 관우상, 삼신할미상, 용왕상, 산신령이 모셔져 있다. 각각 내세의 안식, 돈 벌이, 자식, 뱃길과 산길의 보호를 의미한다.
이 사당은 한국전쟁 이후 화교들이 수가 줄어들어 무술수련장으로 쓰이다가, 2006년에 수리를 거쳐서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가다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시끌벅적한 자장면 거리와는 다른 어떤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의선당에서 조용히 들뜬 마음을 식히고 다시 차이나타운 이곳 저곳을 거닐다보니 어느덧 밤이 찾아왔다. 처음 들어와 섰을 때는 수많은 인파 말고는 별 볼 것 없이 느껴졌던 축제였지만, 점점 축제 속으로 파고들어 재미있는 것들을 열심히 찾아 다니니 은근히 볼 것이 많았다.
물론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가 쉴 새 없이 펼쳐진 것은 아니라서, 중간중간 비는 시간이 많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인천 차이나타운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 아닌 만큼, 예전에 왔더라도 한 번 더 동네를 둘러보며 구석구석 탐방하는 것도 좋았다. 이런 기회 아니면 또 언제 여기를 찾아올 지 알 수 없으니까.
자장면으로 가볍게 저녁을 먹고 길을 나섰더니 어디선가 몰려온 어둠이 천지를 한가득 뒤덮고 있었다. 해가 지고 가로등 불이 켜지기 시작할 무렵이 되니, 한낮의 그 많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동네는 순식간에 적막해졌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요란스런 북소리와 함께 길거리 퍼레이드가 펼쳐졌던 곳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고요한 정적이었다.
물론 중국집들이 밀집해 있는 자장면 거리는 밤이 되어도 수많은 차들과 사람들로 붐비는 편이었지만, 그쪽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직 전철 끊길 시간이 한참이나 남은 시각에 이미 문 닫은 가게들도 많았다.
낮이 뜨거웠던 만큼 밤은 쌀쌀하게 깊어 갔는데, 밤이 되면 차이나타운의 또다른 상징인 예쁜 홍등이 켜진 거리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또 여기저기 거닐어 봤다. 자장면 거리 근처에 듬성듬성 연결된 홍등과, 북성동사무소 벽면을 화려하게 장식된 홍등이 볼 만 했지만, 아직 홍등은 그리 많이 설치되어 있지는 않았다. 이왕 하는 김에 좀 더 촘촘하게 많이 장식했으면 밤에도 사람들이 머물며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 소문 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사람 없는 밤골목이 주는 한적함과 색다른 분위기가 있어, 짧은 시간이나마 조용히 한 바퀴 거닐어 볼 만 했다. 전철을 타고 꽤 오랜시간 가야 하기에 적당히 마무리하고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 동네에 머물면서 밤 늦게 거닐다가 아침 또한 맞이해 보고 싶었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비단 중국인 마을이라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가옥들과 한국인들의 흔적들이 한 데 뒤섞여 오밀조밀하게 남아있어서, 찾아보면 은근히 매력적인 것들이 소소하게 숨겨져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 참고 사이트
인천 차이나타운 홈페이지: http://www.ichinatown.or.kr/
인천 중국의 날 문화축제 홈페이지: http://www.inchina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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