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뮤직페스티벌이 시작된 지난 8월 26일 밤, 광주 구 도청 앞에 위치한 아시아 문화마루(쿤스트할레 광주)에서는 '아티스트 네트워킹 파티'가 열렸다.
이 행사는 비록 월드뮤직페스티벌 프로그램 안에는 있었지만, 일반 관객은 사전에 접수한 30명만 입장 가능했던 클로우즈 파티(close party)였다. 월드뮤직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과, 이번 아시아 문화주간에 참여한 여러 아티스트들을 위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역할 중 하나가 아시아의 문화와 사람을 하나로 엮어내는 것이므로, 아티스트들이 단지 공연만 하고 떠나버리는 다른 축제들과는 다르게, 아티스트들 끼리 서로 교류하고, 함께 놀며,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이런 파티를 기획한 것이다.
▲ 파티 시작 전에 이미 실내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강한 비트의 음악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메일 주소를 나누기도 했다.
파티 시작은 밤 10시 반이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파티를 위해 그나마 드럼통으로 된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를 놓긴 했지만, 사람들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말 그대로 스탠딩 파티. 한국인들도 그렇지만, 아시아 각국에서 온 사람들도 이런 류의 파티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듯, 처음에는 삐쭉삐쭉 어색해 했다. 물론 서양인들이라고 다 이런 파티에 익숙한 것도 아닌 듯 했다. 벽면에 착 붙어서 혼자 맥주를 홀짝거리던 서양인들도 꽤 있었으니까. 어쩌면 아티스트들 성향 자체가 외향적이지 못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파티 입장객에게 주어진 맥주 쿠폰 두 장. 안 쓰면 아깝다는 투철한 정신으로 다들, 맥주 안 마시는 친구 쿠폰까지 뺏어서 맥주로 바꿔 마시는 아름다운 풍경. 넘실대는 맥주의 거품들과, 정신없는 사람들의 움직임, 그리고 이미 실내에 틀어놓은 강한 비트의 음악 때문에, 파티는 이미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 비교적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니, 다들 뭘 하고 노는걸까 하며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라며, 과거는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 친구와 함께 2층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고 있던 외국인 여성들. 아직 파티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심취해 있었다.
▲ 아직 파티가 시작되지 않아서 다들 워밍업 중이겠거니 싶었다. 나중에는 하나둘 자리를 일어나 무대로 다가갔겠지?
2층으로 올라가 보니, 아시아 쪽 아티스트들이 한 쪽 구석에 대거 모여 앉아 있었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서로서로 이야기도 거의 없었다. 아마 이들도 이런 종류의 파티에는 그리 익숙치 않는 듯 한 눈치였다.
사실 클럽같은 분위기에, 낯선 사람들만 잔뜩 들어차 있는 스탠딩 파티는, 혼자 가면 뻘쭘하기 이를 데 없다. 보험 외판원에 버금가는 넉살과 외향성이 있다면 또 모를까, 일반적인 한국인이라면 분명 주눅 들고 말 테다. 그래서 재미없네 하고 가버리면 자기만 손해. 이런 파티를 즐기려면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제일 쉽고 편한 것은 술을 홀짝이면서 음악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며 혼자 즐기는 방법이다. 눈치 볼 것 없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신경 쓰면 또 어쩔 텐가, 박자 안 맞는다고 경찰이라도 부를 텐가.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하며 박자를 느끼며 술을 홀짝이다 보면, 술이 나인지 리듬이 나인지, 무아지경에 이를 수 있다. 어느덧 파티에서 도를 깨닫고 나갈 수도 있는 일이다.
조금 어려운 방법으로는, 아무 테이블이나, 아무 사람이나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일단 어느 정도 그룹화가 돼 있어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이 파티에 참여했는지 알고 있는 경우라면 대화 나누기가 더 쉽다. '당신은 어디서 온, 어떤 아트 하는 사람이냐' 질문하면, '뻑규, 꺼져!' 할 사람 아무도 없다.
나름 마음 맞으면 현장에서 즉석으로 함께 아트 하나 만들어도 되고. 뭐 어떠냐, 이미 술은 들어갔고, 어두워서 누군지는 모르고, 정 부끄러우면 다음날부터 모르는 사람인 척 하면 되고.
어쨌든 사람마다 나름의 파티 즐기는 방식은 있기 마련이다. 다만 그런 기회가 많지 않아서 아직 개발을 못 해 냈을 뿐. 한쪽 구석에 앉아 사람만 쳐다보고 있어도 즐겁다면 그것도 나름 즐기는 방법 중 하나. 기회가 있다면 이런 파티에, 두려워하지 말고 참여해 보도록 하자.
▲ 이런 파티는 정말, 사람들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 이런 파티에서는 모르는 사람들과도 쉽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술이 싫으면 음료수만 마셔도 상관 없다.
▲ 부부끼리 와서 서로 사진 찍어주며 노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러면 낯선 남자, 여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가 좀 껄끄럽잖나.
이윽고 본격적인 파티 시작을 알리며, 이병훈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장과, 인재진 총감독이 함께 나와 간단한 인사말을 했다. "광주에서 아시아 아티스트들을 위한 아시아 시티를 만들고 있으니 기대해 달라"는 말과 함께, "오늘 행사는 아티스트들이 친구를 만드는 시간이고, 우리 모두를 위한 시간"이라며 행사 시작을 알렸다.
아시아 문화마루의 정유진 매니저는 "이번 행사는 월드뮤직 쪽에서 준비한 네트워킹 파티"라 했다. 콘서트 뮤지션들을 비롯한 예술인들과 예술 관련인들을 모두 모아서 콘서트 형식의 파티를 기획한 건데, 아티스트들이 공연만 하고 덩그러니 돌아가기 보다는, 서로 교류하고 친구도 만드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해서 마련된 행사라 한다.
▲ 인재진 총감독과 이병훈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장.
▲ 정유진 아시아 문화마루 매니저. 이번 행사를 개략적으로 설명해 줬다.
▲ 실내는 사람들의 열기가 워낙 뜨거워서 에어컨이 감당을 못 하는 듯 했다. 차라리 바깥이 시원할 정도. 파티를 꼭 파티장 안에서만 즐기라는 법은 없다.
▲ 니나노 난다. 내겐 너무 난해한 그녀의 퍼포먼스.
본격적인 파티의 시작은 '니나노 난다'의 무대로 열렸다. 10여 년 동안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활동을 해 온 여성 보컬리스트 '장군'과, 자신이 직접 개조하고 제작한 악기로 실험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신행'이 함께하는 이 프로젝트 팀은, 21세기 우주 친화적 프로젝트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이 하는 음악은 미래와 과거, 인간과 기계, 동양과 서양, 지구와 외계가 조화롭게 만난 '퓨쳐 판소리'라는데, 그 설명만큼이나 참 오묘한 음악이다. 이들의 무대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무대에서 펼치는 연극적 퍼포먼스 또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퍼포먼스 아트로 분류되기도 한다.
우연히 여기저기서 이들의 공연을 몇 번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좀 난감해서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을 보면, 아직 이들의 음악은 안드로메다 인의 심금을 울려 주기엔 무리가 있나 보다. 아니면 내가 너무 감성이 메마른 우주인이든지. 어쨌든 다른 사람들이 즐겁게 즐기고 있으니 그걸로 끝.
▲ 니나노 난다는 공연 중에는 너무 격렬하게(?) 움직여서 제대로 찍힌 사진이 없다. 서 있는 이런 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절대로 정적이지 않다.
▲ 니나노 난다의 음악과, 술과, 사람들. 밤이 빨갛게 타고 있다.
▲ 파티장 내부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이름 교환(?). 사랑의 싹은 아무데서나 먼지처럼 폴폴 떠다니는 거다.
▲ 광주는 정말 빨간 조명을 너무 좋아한다. 월드뮤직에도 빨간 조명 엄청 많이 나오더니.
▲ 바깥에는 좀 더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슬슬 모여들었다. 안에서 이야기하다가 스파크가 파바박 튀면 밖으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
▲ 꽃마저 빨간 꽃.
니나노 난다의 무대가 끝난 뒤에는 문 팡즈(Moon Fangz)라는 아티스트 그룹이 나와서 광란의 무대를 선보였다 한다. 여러가지 문제로 파티를 끝까지 지켜보지 못해서 좀 안타까웠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곳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즐거운 파티를 즐겼기를 바래 본다.
이 파티에 참가한 아티스트들 중에는 전통춤을 선보였던 학생들도 있었고, 각종 악기 연주를 했던 학생들도 있었다. 그리고 영상, 퍼포먼스 등을 하는 예술가도 있었고, 월드뮤직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뮤지션도 있었다.
국적과 연령이 굉장히 다양하고, 피부색 또한 다양했지만,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파티를 즐기고, 그 와중에 서로 안면을 트고 인연이 닿아, 훗날 위대한 어떤 아트 하나가 탄생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 바탕이 된 곳이 바로 대한민국 광주의 쿤스트할레 였다고 한다면, 우리 역시도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테다.
그래서 이번 파티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역할을 그대로 보여준 축소판이라 할 수 있었다.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들이 흥겹게 즐기고 교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역할, 그것이 바로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지향하는 거니까. 이런 형태의 교류와 네트워크라면, 앞으로도 여기서 열릴 행사들이 많이 기대된다.
아시아 문화마루(쿤스트할레 광주)에서는,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런 류의 파티들이 수시로 열리기도 하니, 홈페이지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가 기회 될 때 냉큼 잡아채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