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로 가는 길은 멀다. 도시를 돌아돌아 쉬엄쉬엄 덜컹이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자면, 어느덧 근질근질해져서 어디라도 좀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앉아 있을 때도 그렇지만, 서서 갈 때는 정말 허리가 끊어지는 듯 한 고통을 맛보아야만 겨우겨우 다다를 수 있다. 그래서 사람 많이 몰리는 주말에는 되도록 버스로 가지 않으려고 피하는 곳이 바로 소래. 그래도 종점에서 내려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어느새 활기찬 분위기에 동화되고 마는 곳이다.
'소래'하면 염전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포구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둘 다 그만큼 유명한 곳이고, 거리도 별로 떨어져 있지 않다. 사진을 찍거나 조용한 경치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은 염전 쪽에 좀 더 관심을 가질 테고, 회를 먹거나 떠들석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포구 쪽으로 발걸음을 할 테지만, 특별한 목적 없이 답답한 방구석이 싫어서 바람 쐬러 나갔다면 둘 다 둘러보는 것이 일종의 여행 코스화 되어 있다.
규모에 비해 사람이 별로 없고 한적하며 대체로 황량한 느낌을 주는 염전 쪽보다는, 사계절 내내 오가는 사람이 많아 활기찬 포구 쪽이 그래도 좀 더 집중해서 널리 알리기 좋은 탓인지, 소래포구에서는 매년 축제가 열린다. 이름은 간단하게 '소래포구 축제'. 올해로 11회를 맞이한 꽤 오래된 축제로, 이번에는 '소래야 놀자'라는 슬로건으로 지난 10월 중순 경 축제가 열렸다.
소래 염전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3년에 만들어졌다 한다. 그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로도 소래 염전은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한다. 이 염전에서 나는 소금을 운송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수인선 협궤열차로, 성인 한 사람이 걸어가면 꽉 찰 정도의 폭의 아주 작은 열차였는데 지금은 운행이 중단되어 역사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소래 염전은 바닷물이 드나들어 넓은 갯벌로도 유명했다는데, 지금은 바닷물 수위가 점점 낮아져서 내륙 깊은 곳까지 물이 들어오지 않아 갯벌로써의 기능을 잃은 곳이 많다 한다. 그래서 이 지역은 일부 갯벌과 함께 일부는 습지로 남게 됐고, 염전 역시 폐염전으로 신고되어 그 옛날 번화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렇게 황량하게 남게 되어 가끔 찾는 사람들만 드문드문 방문하던 곳을 생태공원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생태공원 하면 대체로 수목이 우거지고 꽃이 만발한 식물원 같은 이미지가 퍼뜩 떠오르는데, 소래 염전은 염전과 습지, 갯벌 등이 어우러진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제 생태공원으로 거듭나면서 '소래습지생태공원' 혹은 '소래해양생태공원'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는데, 이름이 너무 길고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냥 소래 염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여름에는 폐염전에서 가끔 소금 결정을 볼 수도 있고, 습지나 갯벌로 내려가면 많은 생명체들을 만날 수도 있으며, 이곳의 역사와 번화기 모습 등을 보고 싶으면 전시관을 찾아가면 된다.
소금창고를 주제로 하거나 배경으로 한 사진 촬영 포인트는, 더이상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 이 공원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가꾸어 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하니, 아직 채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자연미를 느끼고 싶다면 서둘러 가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소래 마을은 소래 염전이 생기고 철로가 놓이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곳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포구로 유명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1974년 인천항이 준공되고 나서 1톤 미만의 새우잡이 어선들이 소래 포구로 드나들면서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다.
그 이후 갓 잡은 싱싱한 해산물들이 철마다 종류를 달리하며 들어오는 곳으로 유명해져서,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관광 뿐만 아니라 철마다 회나 대하, 각종 조개 등을 맛보기 위해 모여드는 곳이다.
바닷가를 따라 형성된 시장에는 횟집만 수백 개가 있다 하고, 늦가을에서 초겨울에 이르는 계절에는 새우젓 등을 사려고 모여든 주부들로 시장이 와글와글 정신 없이 돌아가기도 하니, 얼마나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지 굳이 말 할 필요도 없이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시끌벅적한 풍물소리를 뒤로하고, 소래포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작은 다리 위를 올랐더니, 가까이는 외국 선박의 출입을 막기 위해 만들었던 포대가 조그맣게 자리잡아 공원을 이루고 있고, 그 앞쪽 바다에는 작은 어선들이 줄줄이 꼬리를 물고 포구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었으며, 그 너머로는 한창 공사중인 수인선이 보였다.
수시로 드나드는 어선들을 보니, 아직도 각종 해산물 시장과 횟집으로 유명한 이곳이 건재함이 느껴졌고, 새로 생길 수인선이 완공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이곳을 찾아들어, 포구는 더욱 강한 생명력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옛날 수인선의 향수와 추억을 되새길 수 있을만 한 전철이 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바다를 가로지르는 열차니까 개통되면 한 번 쯤은 이용해 봐야겠다 싶었다.
소래포구 축제에는 각 동네 주민들이 줄을 이으며 풍물놀이를 하기도 했고, 동네별로 만들어진 부스에서 각종 전시나 작은 행사들을 열기도 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큰 길 가에서는 소방대원들이 어죽을 무료로 나누어 주기도 했으며, 또 한쪽에서는 넓은 야외 푸드코트가 자리잡아 수많은 사람들의 미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일부는 축제를 위해 임시로 만들어진 행사용 설치물이기도 했고, 또 일부는 늘 그자리에 있던 것들이 축제 때문에 더욱 돋보이기도 했다. 특히 저녁에 펼쳐질 가수들의 공연 무대 옆쪽으로는,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미리 줄을 서 있은 청소년들의 모습들 때문에, 소래는 더욱 인산인해를 이루어 시끌벅적한 시장 분위기를 한껏 발산하고 있었다.
특히 나는 여기저기 가판에서 튀기고 있는 새우튀김의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많이 기웃거렸는데, 이것도 소래라는 이름값을 하는지라, 서울 시내에서 볼 수 있는 속은 작은데 밀가루 옷만 외투처럼 두껍게 입은 그런 새우튀김이 아니고, 아주 큰 새우가 하의노출 패션 같은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아주 요염해 보여서 쉽사리 눈길을 땔 수가 없었다. 소래 가서 새우튀김만 배 터지게 먹고 와도 본전 뽑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소래는 사람도 많고, 먹을 것도 많다. 사시사철 드나드는 어선들로 항상 풍년인 것 처럼 수많은 먹음직한 음식들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곳. 그 속에서 사람들은 이미 맛있는 냄새에 한없이 넓어진 마음으로, 어깨를 부딪혀 가며 좁은 시장통과 횟집 골목 사이를 오가면서도 크게 인상 찌푸리는 일 없었다.
이제 축제는 끝났지만, 소래포구는 항상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이것저것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자리잡아 많은 볼거리가 있는 곳이고, 일반적으로 비싼 음식들을 비교적 싼 가격에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소래는 앞으로도 계속, 꽤 먼 거리를 빙빙 돌아 달렸어도 항상 풍요로움에 따뜻해 질 수 있는 곳으로 남아, 가끔씩 생각날 때 찾아가도 늘 풍성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을 테다.
p.s.
소래포구를 가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지만, 서울의 강남, 서초, 양재 쪽에서 편하게 가려면 M6410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에 내려서 소래포구까지는 약간 걸어야 하지만, 여러번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이 없다. 혹은 강남 쪽에서 9900번을 타고 인천 논현주공 14단지에 내려서 20번 버스로 갈아타면 쉽고도 빠르게 찾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