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기역에서 경희대 올라가는 골목길엔 벽화들이 있다. 초행이라도 가기 쉬운 큰 길을 버리고, 골목길로 올라가야 한다는 게 약간 어렵긴하지만, 독특한 벽화를 보면서 산책 할 요량이면 선택할만 하다.
요즘 여기저기 벽화가 많아서, 벽화가 있는 골목이 그리 신기하진 않다. 하지만 경희대 벽화는 던져주는 메시지가 있어서, 예쁘기만 한 다른 동네 벽화들과는 좀 다르다. 굳이 벽화 때문에 찾아가기는 좀 그렇지만, 이왕 갈 일이 생긴다면 한 번 쯤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회기로 21가길이었던가. 경희대 올라가는 큰 길에서 벗어나 골목길을 택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볼 수 있는 벽화들. 공주가 왜 꼭 백인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이겠는데, 근데 백설공주는 백설처럼 하얗다고 백설공주니까 피부가 하얀게 맞을 텐데... 하진 저 공주가 백설공주라는 증거도 없으니까. 어쨌든 신데렐라나 인어공주는 왜 황인이나 흑인이면 안 되는 걸까.
각종 SNS의 벽에 갇혀있는 저 모습은 정말 공감이 갔다. 카톡,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SNS가 인기를 끌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만큼 나도 사용하고는 있지만, 쓰면 쓸 수록 뭔가 모자라는 듯 한 느낌이 있다. 어떤 때는 모든게 거짓인 것 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SNS를 이용하기 때문에 더욱 서글프고, 초라하고, 외로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사용을 좀 줄여야지.
어디 면접이라도 보러 가는 걸까. 제대로 다 차려입고, 힐을 신은 채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여인.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을 표현해 놓은 듯 싶다.
매트릭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꾸는 꿈이지만, 사실 매트릭스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네오를 보라, 뭔가 사건들이 터지기 전에 일단 백수가 됐다. 그러니까 매트릭스를 벗어나려면 백수가 되는 게 먼저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각을 계속하다가 쫓겨나는 게 먼저인지도.
심정은 알겠지만 저건 정말 찌질하고 나쁜 짓이라는 걸 잊지 말자. -_-;
면접자들처럼 보이는 똑같은 사람들. 사실 신입사원 뽑는 면접자리 가면 다들 저런 모양이긴 하다. 번호는 임의로 붙인 듯 한데, 아마 최근에 벽화를 그렸다면 24601을 붙이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 동네 벽화는 이런 식(?)이어서 대중들에게 널리 홍보되어 인기를 끌기는 조금 무리겠다 싶었다. 그래도 뭔가 의미 있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하겠지.
'아직도 그를 믿으십니까?'. 마치 도를 믿으십니까 처럼 들리는 말. 아직도 백마 탄 왕자를 꿈 꾸고 있나요?
이건 어느 가게 벽에 그려진 벽화. 가게가 음악다방 혹은 음악감상실 같은 분위기를 하고 있던데, 마침 문을 닫아서 들어가보진 못 했다. 이 동네, 은근 끌리는 가게들이 많다. 카페도 나름 조그맣고 오붓한 분위기인 곳도 많고. 단지 몇몇 중국인들이 동네 떠나가라 떠들고 있다는 게 좀 흠이긴 하지만, 걔네 조그만 카페에서도 떠들려나?
다국적 커피기업이 아무리 멋지게 홍보하고, 좋은 말로 얼기설기 설득하려 들어도, 걔네는 현지인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메시지. 고급 커피의 대명사라며 요즘 뜨고 있는 에티오피아. 거기서 커피 농사 짓는 사람들은 정작 제대로 된 커피를 못 마신다는 불편한 진실.
재벌천국 서민지옥. 아아 정말 이 동네 벽화들 분위기 좋다. 후훗
이건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백설공주가 '애플'을 받게 됐다는 것만 객관적인 사실. 나머지 해석은 스스로 해야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테니, 더이상 말은 하지 않겠다.
이것저것 툭툭 던져주는 화두들을 머릿속으로 답하며 걸어가다보면 어느새 경희대 정문 앞이 나온다. 그림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대학교 구경까지 겸하면 좋은 산책이 될 수 있을 테다. 주위에 크게 볼거리나 놀거리는 없기 때문에, 많은 걸 바라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