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눈이 많이 내렸거나 혹은 내리고 있다면 한 번 가볼만 한 곳으로 '어리목'이 있다. 제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740번 시외버스를 타면 약 40분 정도 걸려서 한 번에 갈 수 있으니 접근하기도 편하다. 물론 버스 정류소에서 내려서 약 10분을 더 걸어 들어가야 어리목 광장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 길도 차가 별로 안 다니는 날엔 나름 걸을만 하다.
시외버스에서 방송에 맞춰서 내리면 되므로 졸지만 않으면 어려운 건 없다. 영어 안내 방송은 어리목을 '에요리목' 같이 발음을 한다는 게 특징. 버스에 탑승한 외국인들도 '어리목'과 '어승생악' 발음하기를 굉장히 어려워 했다. 발음을 들어서는 바로 어디를 말하는지 알 수 없어서, 그냥 글자를 보여줄 정도. 그래서 영어로 된 지도는 한글이 함께 표기되어 있는 게 좋은데. 외국인이 길 찾거나 물을 때 손가락으로 짚어주면 내국인들이 바로 알아볼 수 있으니까. 영어로만 표기된 지도는 한국인들도 잘 알아보기 힘들어서 난감할 때가 있다.
어쨌든 1100 도로를 타고 한라산 지대를 넘어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있으면, 차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사실 힘들게 산행하는 것보다 따뜻한 버스 안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창문만 좀 깨끗하다면.
버스 안에서는 승용차를 이용할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자리가 없어서 서서 가야할 때도 있고, 만원버스에 꽉꽉 끼어서 가야할 때도 있고... 이효리가 살고있는 소길리가 5년 만에 땅값이 거의 열 배가 뛰었다는 말이라든가, 요즘은 어느 지역이 땅값이 미친듯이 뛰어오르고 있다든가... 뭐 다 쓰잘데기 없는 정보지만. 그런 대화 사이에서 토박이들이 외지인(육지것)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늬앙스를 읽을 수 있다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 토박이 입장에서는 조용한 마을에 외지인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와 개발이랍시고 땅 파헤치고 집값 땅값 올려놓고 하는 게 마땅찮을 수 밖에. 근데 조용한 삶을 찾아서 내려간 외지인 입장에서는 그런 토박이들 사이에서 살기 좀 힘들겠다 싶기도 하고.
어쨌든 버스 정류장에서 대략 10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어리목 광장 입구가 나온다.
어리목은 '어리+목'으로, 어리는 어름의 변음으로 추측하고 있다. 목은 '통로 가운데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중요하고 좁은 곳'을 뜻한다. 따라서 어리목은 '얼어있는 곳'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 이름 그대로 어리목 광장은 눈도 많이 쌓여 있지만, 바람때문이 눈이 많이 날리기도 했다. 마치 안개처럼 자욱하게 날려서 가만히 있어보면 세상이 온통 흑백. 어떤 때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 안개가 자욱하게 끼기도 한다. 어리목의 멋이라 할 수 있겠다.
사방이 온통 눈밭인데, 이 춥고 험한 날에도 중국인 관광객들 소리가 왁자지끌 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대체로 한라산 등산로 입구 쪽의 눈밭에서 사진을 찍으며 노는 추세였다. 어승생이 입구 쪽이나 어리목 탐방안내소 쪽은 비교적 한산한 편. 그에비해 어승생악 쪽은 서양인들이 꽤 올라가는 분위기였다. 이런데서도 각각 노는 스타일이 다르구나.
뭔가 쓸 게 있긴 했는데 다음 기회로 넘기고, 이번엔 그냥 어리목 입구 쪽 사진들만 줄줄이 올리는 걸로 해야겠다. 따지고보면 딱히 쓸 말도 없고.
사실 어리목을 연 이틀에 걸쳐 찾아왔다. 한 번은 영실 코스로 산행을 하기위해 왔고, 한 번은 어승생악을 올라보려고 왔고. 각각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긴 하지만, 사진이 많아서 어리목만 따로 간단히 올려본다.
시간이 없거나 간단히 눈밭을 구경하려면 어리목 휴게소만 들러서 잠시 놀다가도 괜찮을 듯 하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올 정도로 꽤 훌륭한 눈밭이 펼쳐져 있으니까.
버스로 어리목 가능 방법과 다른 정보들은 아래 글들 참조.
* 제주도 740번 시외버스 노선 & 시간표 - 한라산 어리목, 1100고지, 영실 등
* 겨울 한라산 설경을 편하게 즐기려면 - 한라산 1100 고지 휴게소 & 습지
* 한라산 1100 고지 휴게소와 습지 탐방로에서 간단히 즐기는 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