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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내린 겨울철 한라산, 어리목 영실 코스 산행 - 5 영실 코스국내여행/제주도 2014. 12. 17. 23:59
어리목을 출발해서 영실로 넘어가는 한라산 등반 코스 마지막 편. 영실 탐방로 쪽은 급한 경사와 함께 탁 트인 시야로 멀리까지 넓게 눈꽃 덮힌 오름들과 풍경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다만 칼바람과 함께 얼어붙은 땅에 덮힌 눈이 미끄러워서, 급한 경사에서는 미끄러질 수도 있다는 게 흠. 길 중앙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을만큼 눈이 치워져 있기 때문에, 가이드 로프를 잡기도 좀 애매하고 힘들다. 그래서 미끄러운 경사를 내려갈 때는 아예 주저앉아서 슬슬 미끄럼을 타거나, 엉거주춤하게 로프를 잡고 내려가야만 하는 상황이 생긴다. 아무래도 겨울철 눈 덮힌 영실 루트는 올라갈 때 이용하는 것이 안전상으로는 좋을 듯 싶다.
영실 탐방로 쪽을 지날 때 누구나 감탄하는 것이 바로 병품바위와 영실기암(오백나한)이다. 다른 계절에 봐도 기이한 괴석들이 무겁게 자리잡고 있는 웅장한 모습이 볼 만 한데, 눈이 덮히니까 더욱 신비한 느낌을 줬다. 그 아래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면 아찔함도 느낄 수 있고. 아름다운 풍경에 정신이 팔려서 헛디디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 싶은 곳.
저 앞으로 이스렁오름, 어스렁오름, 볼레오름 등의 오름들이 보이고, 한쪽 옆으론 골짜기 너머로 괴석들이 즐비하게 보인다. 파노라마로 찍어볼까 하다가 손이 시리기도 시리지만, 오히려 그렇게 담는 것이 유치하게 보이겠다 싶어서 관뒀다.
느즈막이 올랐던 사람들이 나 말고도 몇몇 있긴 있었다. 눈길 내리막이 미끄러워서 모두들 하산 속도를 제대로 못 내고 줄을 서서 천천히 내려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르는 사람들 끼리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한데 뭉쳐서 갈 수 밖에 없었다. 다소 위험한 곳이라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앞에 뒤에 있다는 것이 어느정도 위안이 될 정도다.
영실 급경사 난코스는 사진이 없다. 로프를 잡고 거의 미끄러지듯 내려왔기 때문에 사진 찍을 여유도 없었고, 찍기도 힘들었다. 어쨌든 한동안 미끄러지듯 산을 쭉쭉 내려오다보면 어느새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숲길로 들어서게 된다. 한쪽 옆으로는 우뚝 선 산쪽으로 얼어붙은 폭포도 보이지만, 무수한 나뭇가지에 시야가 가려서 형체만 얼핏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급경사를 바짝 긴장해서 내려온 탓에, 편평한 곳이 나와도 다리가 후들거려 걷는 게 힘이 들 정도였다. 따지고보면 급경사만 끝나면 영실 쪽 숲길은 그리 길지 않은 편이지만, 워낙 힘들어서 그랬는지 언제 이 길이 끝이날까하며 살짝 조바심이 생기기도 했다. 잠시 쉬었다 가야하나 할 때 마침 등산로가 끝남을 알리는 조그만 탐방 안내소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직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남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일단 산행이 끝났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조그만 건물에 '영실통제로'라고 쓰여져 있는데, 여기가 영실 탐방로(등산로) 입구다. 영실 코스를 등반하려면 동절기엔 최소한 낮 12시 이전에 여기를 통과해야만 한다. 그 이후는 입산 금지. 굳이 사람이 나와서 막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낮 12시 이후엔 오르지 않는 편이 좋다. 더군다나 버스를 이용할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때 오르지 말길 권한다. 올라갔다 내려오면 막차를 놓칠 수 있기 때문.
여기를 흔히 '영실 입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부터 주차장이 있는 '영실 매표소'까지 가려면 꽤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대략 2.5 킬로미터 정도 거리라고 하니까 한 40분 정도 걸어야 한다고 계산하면 되겠다.
아침에 영실 쪽으로 등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실 매표소(주차장)에서 택시를 타고 등산로 입구까지 간다. 버스도 영실 매표소까지는 가니까, 사람이 많을 때는 택시를 줄 서서 탈 정도다. 2014년 1월에 영실 매표소에서 탐방로 입구까지 택시 한 대당 1만원 요금이었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또 바뀔 수 있다.
영실 입구의 유명한 휴게소 '오백장군과 까마귀'. 이 앞에 세워둔 차에 쌓인 눈을 보니 참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정말 엄청나게 내리긴 내렸나보다.
조금 더 내려가보니 다른 차들도 이렇게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꺼내봤자 또 세워놓으면 또 이렇게 될 게 뻔할 듯.
사람 마음이야 누구나 마찬가지일 테다. 윗세오름에서 영실 입구까지 내려오는 가파른 내리막 길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영실 매표소까지 편하게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마찬가지였을 테다. 그래도 돈이 아까워서 꾹 참고 내려가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나 역시도 그랬고. 뭐 항상 돈이 문제.
내려가다보니 등산을 한 건지, 입구까지만 갔다가 돌아가는 건지, 중국인 관광객 몇이 종종걸음으로 미끄러지며 내려가고 있었다. 아이젠도 없는 걸 보면 입구까지만 갔다가 다시 내려가는 듯 싶었다. 경사가 그리 크지 않는 차도라서 올라갈 때야 그럭저럭 올라갔다 하지만, 내려갈 때는 빙판이 많아서 쩔쩔매고 있는 듯 싶었다.
산을 내려와서도 또 한참을 걸어 내려가서 결국엔 영실 매표소(주차장)으로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 세워둔 차량을 이용해서 시내로 내려갔는데, 아뿔사 결국 시간이 늦어버려 버스 막차를 놓치고 말았다.
영실매표소에서 제주시로 내려갈 수 있는 유일한 버스 740번 시외버스는 동절기엔 영실에서 4시 반이 막차다. 하절기 시간표를 잘 못 보고는 시간을 잘 못 계산하고 있어서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 어찌어찌해서 렌트카로 놀러와서 영실 쪽 등반을 한 사람들 차를 얻어타고 제주시내로 갈 수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차를 얻어탈 수 없었다면 아마도 여기서 제주까니 깜깜한 산길을 걸어 내려갔을 테지. 생각만 해도 눈 앞이 깜깜하다.
염치없이 차를 얻어타고도 딱히 뭔가 주지도 못해서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 부산에서 온 처자 둘, 나중에 어디선가 다시 만나면 밥을 사 주겠소 (아마도 다시 못 만날 듯 하니 공수표 남발). 기름값이라도 하라며 돈을 주자니 좀 그렇고, 가방 속엔 카메라와 물 밖에 없어서 딱히 뭐 줄 것도 없고, 참 난감했다. 어쨌든 정말 고마웠다고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영실 주차장에서 또 차도를 쭉 내려가면, 한라산 일대를 가로질러 제주시와 중문을 잇는 1100도로가 나온다. 이 지점에서는 제주시보다는 중문 쪽이 거리상으론 좀 더 가까운 편.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은 걸어서 여기까지 나올 이유가 별로 없을 테다. 거의 대부분 영실 주차장에서 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거나 해서 숙소로 돌아갈 테니까.
시간 계산 잘 하고, 무조건 한라산 등반은 될 수 있는 한 이른 시간에 출발하자. 이걸로 어리목, 영실 코스 등반 여행기(?) 끝.
이전 글)
* 눈꽃 내린 겨울철 한라산, 어리목 영실 코스 - 1
* 눈꽃 내린 겨울철 한라산, 어리목 영실 코스 산행 - 2
* 눈꽃 내린 겨울철 한라산, 어리목 영실 코스 산행 - 3 윗세오름 대피소
* 눈꽃 내린 겨울철 한라산, 어리목 영실 코스 산행 - 4 윗세오름
* 한라산 어리목 탐방안내소 - 얼었던 몸을 잠시 녹여가보자
* 제주도 740번 시외버스 노선 & 시간표 - 한라산 어리목, 1100고지, 영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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