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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걸을 수 있는 성곽 - 갈레 포트, 스리랑카해외여행/스리랑카 2009 2015. 11. 11. 18:39
갈레에서도 빵을 엄청나게 사 먹었다. 빵 가게가 항상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있기도 했지만, 맛있는 빵을 파는 집들도 꽤 있어서 빵 먹는 재미가 있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파는 베지터블 로띠도 잘 고르면 웬만한 식당 음식보다 맛있는 것을 맛 볼 수도 있다.
물론 어떤 빵집 식빵은 마트에서 파는 식빵보다 맛도 없고 비싸기만 한 것이 있기도 한데, 잘 골라서 들어가면 한 뭉텅이에서 그램 단위로 잘라 파는 빵으로 아주 맛있는 한 끼를 해결할 수도 있다. 다시 가면 어느 집이 좋은지 기억 날 것 같은데 이렇게 방구석에 앉아서는 뭔가 기억을 해 낼 수가 없네. 어쨌든 스리랑카에선 빵이 꽤 먹을만 한 음식이라는 거.
빵으로 거의 끼니를 해결한다 쳐도, 이렇게 길 가에 큰 프라이팬 내놓고 볶음밥 튀기고 있으면 그 냄새때매 끌려갈 수 밖에 없다. 마리 앙뚜와네트가 말 했지, 빵 없으면 볶음밥 먹으면 되지.
에그 프라이드 라이스 170루피. 콜라 1.5리터 160, 물 1.5리터 45, 식빵은 대략 40루피 선, 베지터블 로띠 25루피. 모두 2009년 시세다. 당시 1달러USD는 114루피. 스리랑카 루피는 인도 루피와 완전 다른 돈이다.
숙소 근처 주민들과도 웃음을 주고 받기도 했는데, 나는 이들의 언어를 모르고, 이들은 영어를 못 해서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 그냥 꼬마들과 눈짓 손짓으로 잠시 노는 것 밖에. 일반 주민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수줍어하는 느낌.
좀 오래 머물어도 좋을 듯 했는데, 아쉽게도 갈레는 여정 맨 마지막에 들른 곳이었다. 이미 예약해놓은 항공권 일정에 맞춰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던 게 아쉬웠던 곳. 하지만 그게 어쩌면 더 좋은 건지도 모른다. 여행 시작 쯤에 갈레를 방문했다면 그냥 그저 그런 관광지 정도로 아무 느낌도 없이 스쳐 지났을 것도 같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은 꽤 조용해서 큰 인상이 남지 않으니까. 이미 다른 곳에서 이런저런 시달림을 당한 후에 방문했으니 이 조용함이 매력으로 더욱 크게 다가왔겠지. 그리고 아쉬움이 남았으니 언젠가 다시 여길 가고싶은 마음도 들 테고.
저녁 쯤에 어느 식당에 들어갔던 것 같다.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고 있는, 성벽 바로 앞쪽 쯤에 위치한 어떤 곳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곳엔 어느 일본인 여자가 벌써 10년 째 매년 가을 쯤 되면 찾아와서 몇 주간 머물다 간다고. 스리랑카 다른 곳은 전혀 가지 않고, 오직 갈레, 오직 그 식당 주변에만 머물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간다고 했다. 이제 곧 올 때가 됐다며 손님을 기억해주는 그 식당 주인도 참 대단하다.
마음에 드는 곳이 딱 이 주변이라 행동반경이 대략 정해져 있었지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알기에 갔던 길을 시간만 다르게 해서 걷고 또 걸어도 마냥 좋았다. 아니, 마냥 좋았다고 해서 들뜬 그런 기분이 아니라, 차분하게 거닐 수 있었다는 뜻이다. 뭔가 생각할 것이 많아도, 아니면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머물며 거닐기 좋은 곳이었다.
이날 밤에 가지고 있는 현금이 50달러USD 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이제 곧 떠날 때니까 그 정도면 큰 문제는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날 밤, 여행을 몇 년간 하다가 정말 손에 든 전재산이 딱 이 돈 밖에 없으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밤을 지새웠다. 죽을 장소를 찾아 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인 것 같은데, 어디로 가는 게 좋으려나 생각하다가 머릿속으로 전 세계를 헤집어 본 밤.
다음날 진짜로 축제가 열렸다. 꽤 많은 인파가 포트 주변에 몰려들었다. 축제라고 해봐야 성벽 바깥쪽에 작은 무대 하나 세워놓고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 부르는 것 정도가 전부였지만, 나름 축제 분위기가 나기는 했다. 딱 뽕짝 멜로디의 노래에 사람들은 락 페스티벌 온 것처럼 미친듯이 열광하기도 했고, 랩이라고 하긴 하는데 영 리듬이 유치한 그런 음악에도 사람들은 흥겨워하고. 나에겐 그리 큰 의미는 없는 축제였지만, 그런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는 있었다.
사실 축제가 열린다는 말만 들었지 어디서 열리는지는 전혀 몰랐는데, 이날 빵을 비롯해서 이것저것 좀 사려고 시내로 나가다가 소리 들리는 곳으로 가보니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축제도 축제지만, 이쪽 성곽은 아직 구경하지 못했던 곳이라 여기저기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성곽 위 어느 지점은 이상하게 까마귀가 많이 있어서 좀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했고.
축제 조금 구경하다가 성곽 돌기 하다가 시내에서 이것저것 사 온 것으로 이 날 구경도 끝. 이날 처음으로 '마이콜라'라는 것을 마셔봤는데, 한약에 탄산 넣은 맛이 났다. 쓴 맛 나는 콜라가 어떤 건지 궁금하다면 가서 마셔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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