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레에서 아쉬운 아침을 맞이하고 조용히 열쇠를 두고 숙소를 나왔다. 느릿느릿 걸어서 성곽을 빠져나와 시내로 향했다. 터미널 옆, 5층 규모였던가, 그리 높진 않았지만 그 주변에선 꽤 높은 건물이었고 나름 세련된 축에 속했던 쇼핑센터를 다시 들렀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들었던 빵을 사러 들어갔더니 점원이 반갑게 아는 척도 해 준다. 떠나기 영 아쉬워서 미적미적. 그래도 버스는 떠난다.

 

 

 

갈레에서 네곰보로 바로 가는 버스편이 없어서 일단 콜롬보를 들렀다가 네곰보로 갔다. 갈레에서 콜롬보까지는 큰 버스로 107루피. 대략 100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인데 4시간 쯤 걸렸다. 길에서 손 드는 승객들을 다 태워주고 또 내려주고 하면서 갔기 때문. 콜롬보에서 네곰보까지는 47루피. 가까운 편이라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진 않았다.

 

그렇게 갈아타고 가고 해서 대략 여섯시간 남짓 걸렸다. 아무리 많게 잡아도 200킬로미터가 안 되는 거리인데. 당연히 교통체증 같은 것도 거의 없었고. 모두 길에서 손 드는 사람들을 다 태워주는 시스템 때문이었다.

 

 

 

콜롬보에서 버스 기다리다 놀면서 찍은 사진이었던가 싶은데, 차가 아주 깨끗하게 부분별로 잘려 있었다. 얼핏 들은 얘기로는, 완성차를 그냥 수출, 수입하면 관세가 꽤 많이 붙는데, 이렇게 잘라서 수출입 하면 고철로 분류해서 관세가 적게 붙는다고. 이런 꼼수는 만국 공통인 것 같다.

 

 

 

오늘은 거의 이동에 시간을 다 쓰고, 네곰보 도착해서는 싼 숙소 찾느라고 시간 쓰고 해서 사진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무거나 전시.

 

스리랑카에 국제공항은 '콜롬보 국제공항' 하나 뿐이었다. 아마 지금도 그럴 테고. 당연히 내가 타는 비행기도 그 공항에서 출발하는데, 이 공항은 콜롬보보다는 네곰보에서 더 가깝다. 그래서 네곰보에서 하루 묵고 비행기 시간에 맞춰 가기로 결정한 거였다. 물론 콜롬보가 대도시라서 공항 가는 차편도 더 다양하게 많겠지만, 탑승시각이 새벽 6시였나 7시였나 그랬다. 그 시간에 맞춰 가는 버스는 아무래도 없겠지 싶어서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가 있는 게 낫겠다 싶었던 것. 물론 대도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지막을 조용한 바다를 보며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긴 했다.

 

 

 

스리랑카 여행을 처음 시작했던 네곰보. 다시 돌아온 곳도 처음 묵었던 숙소 근처였다. 이제 좀 안다고 익숙하게 동네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닐 수 있었다. 그런만큼 여유도 생겨서 저녁 시간이었지만 여기저기 싼 숙소도 좀 알아봤고. 대충 적당한 곳에 세면도구 정도만 풀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다음날 새벽 반다라나이케 공항으로 가는 차편을 알아봐야 했으니까.

 

숙소 찾기 전에 시내에서 몇몇 택시기사들에게 물어본 가격은 공항까지 1천 루피였다. 모두 담합이라도 한 듯 똑같이 1천을 불렀다. 1천이면 대략 1만 원. 하룻밤 숙박비 혹은 볶음밥 6그릇. 그리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어떻게라도 조금 아껴봐야 했다.

 

별 대책없이 동네를 걷다가, 어느 골목에 영업을 끝낸 택시 한 대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쪽으로 다가가니 주차된 집 앞에서 수다떨며 놀던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며 모여들었다. 택시기사 가족과 앞집 뒷집 옆집 건너집 그 너머 집 등등의 동네 사람들 수십 명. 일단 흥정부터 했다. 깎고 어쩌고 할 것도 없이, 그집 아줌마가 먼저 600루피를 불렀다. 바로 오케이. 내일 출발할 시각을 종이에 적어서 확실히 건네준 다음에야 안심하고 사람들과 노닥거릴 수 있었다.

 

택시를 운전하는 건 그 집 아저씨였는데, 그 집 아줌마 말고는 영어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아줌마와 흥정했고, 아줌마를 통해서 이런저런 대화도 가능했다. 아줌마가 한국 돌아가면 편지나 보내달라며 집 주소도 적어줬는데, 나중에 인도 여행하며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이메일 주소 같은 건 없냐고 물었지만, 그런 건 아예 알지도 못 했다. 인터넷 사용도 거의 안 한다고. 그러고보니 그 동네, 집에 TV 없는 집도 많다. 그래서 그 시간에 골목에 나와서 사람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던 듯 하다.

 

대략 아줌마와 했던 말 중 기록돼 있는 건 이런 것들이다. 자신은 돈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녔는데, 애들은 어떻게든 학교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 학교 못 다닌 나보다 학교 다니는 애들이 영어를 더 못 한다 (교회학교를 보내고 있는데 거기도 돈 받는다고). 돈 값을 좀 해야 할 텐데. 하며 바로 옆에 있는 애 한테 꿀밤 한 대.

 

스리랑카 북쪽 끄트머리 쯤에서 인도까지 헤엄쳐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페리가 다닐 때도 있고 안 다닐 때도 있는데 어부들은 왔다갔다 한다고. 간혹 돈 내고 그런 배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한다. 근데 아무래도 그건 여행하는 외국인이 선택하기엔 좀 위험한 방법일 듯. 아무리 봐도 합법적인 루트는 아닐 듯 싶으니까.

 

 

 

 

그런저런 얘기로 한 시간 정도 노닥거리고 다시 한 번 내일 약속을 확인한 뒤 숙소로 돌아왔다. 700에 잡은 숙소는 자려고 보니 영 형편 없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모기가 너무 거슬렸다.

 

한숨도 못 자고 침대에 누웠다가 새벽 4시에 다시 그 골목을 찾아갔다. 노인에 가까운 아저씨는 이미 차를 닦고 있었다. 아저씨는 그냥 쉬엄쉬엄 일 하는 스타일 같은데, 아마도 아줌마가 닥달하지 않았다면 이런 신새벽에 일어나 택시를 몰지 않았을 테지.

 

어쨌든 문제 없이 공항에 도착. 거리가 생각보다 너무 멀거나 혹은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금 여유를 두고 출발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고 아주 빨리 도착했다. 그래서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공항에서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인도에서는 스리랑카 돈을 환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기서 스리랑카 돈을 어떻게 처리하지 못하면 이건 거의 영원히 종이조각으로 내 주머니에 남게 된다.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공항에서 달러로 환전했다.

 

공항 내에 있는 BOC(뱅크 오브 실론) 부스로 갔다. 스리랑카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꽤 큰 은행이라 믿고 갔다. 스리랑카 돈을 달러로 바꾸면 115루피에 1달러라고 쓰여져 있었다. 주머니에 있는 1750루피를 모두 털어서 줬다. 그랬더니 14달러를 준다. 뭐냐 이게. 15달러를 줘야 한다고! 항의했지만 그게 맞단다. 내가 14달러치 돈을 준 거란다. 이미 내가 준 돈은 어디다 넣어버리고. 다시 돈 돌려달라했더니 그건 안 된단다, 이미 처리 끝나서. 아 진짜 이렇게 큰 은행 부스도 여행자 등 쳐먹네. 이놈은 이렇게 한 사람당 1달러씩 해 먹으면 정말 순식간에 부자 되겠다. 무조건 노노노 하면서 뒷사람 부르고 하길래 뻑뀨 하고 나올 수 밖에.

 

그렇게 씩씩거리고 한쪽 의자에 앉아있는데, 스튜어디스 네 명이 무리를 이루어 탑승구 쪽으로 지나갔다. 그러면서 그 중 한 명이 내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하이~'한다. 그 덕분에 기분이 조금 누그러졌다. 일기장엔 이렇게 적혀 있다. '나중에 스리랑카에 대해 좋은 말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그건 다 이 스튜어디스 때문이다. 마지막에 많은 나쁜 기억들을 산화시켜 준 아름다운 미소였다. 정말 구국의 스튜어디스라 할 수 있다'. 구국의 스튜어디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미소 하나가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으며 그 나라의 인상을 조금 바꿀 수 있다는 것, 참 신기한 일이다.

 

스리랑카 여행은 이걸로 끝이지만, 다시 돌아간 곳은 바로 인도. 끝없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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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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