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마이는 공항과 시내가 가까운 편이다. 특히 '님만해민'에서는 수시로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아주 크게 보일 정도로 가깝다. 차를 타고 가도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이기도 하고, 실제로 지도를 봐도 대략 5 킬로미터 정도라고 나온다. 거리만 봐서는 걸어갈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 번 걸어가보기로 했다.

 

사실은 싼 중국 항공사 비행기표를 끊었더니 기내식이 너무 맛이 없었다. 그렇다고 안 먹을 순 없잖나, 이미 비싼 돈 내고 산 비행기표에 다 포함된 가격인데. 그런 맛 없는 기내식을 맛있게 먹기 위한 방법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공항까지 걸어가는 방법이고, 둘째는 공항까지 뛰어가는 거고 셋째는 공항까지 기어가는 것이다. 그럼 배가 출출해져서 돌덩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쉬운 '공항까지 걸어가기'를 선택했다. 길바닥에 돈을 쓰지 않고 다리 엔진에 돈을 쓰면 건강에도 좋을 테고.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 님만해민 우유 게스트하우스 출발

 

 

출발은 치앙마이 올드시티 기준으로 북서쪽 쯤에 위치한 님만해민의 우유 게스트하우스에서 했다. 최소한 님만해민에서는 공항과 가장 가까운 숙소라 할 수 있다. 공항까지 걸어갈 때도 걸음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여기를 택할 수도 있고, 공항에서 걸어올 때도 조금이라도 가까우니까 일단 여기를 목표로 삼아도 되겠다.

 

 

(구글맵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도보 경로 지도)

 

 

'우유 게스트하우스'에서 '치앙마이 국제공항'까지 도보로 가는 길을 구글맵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파란색 점으로 표시된 길을 따라가라고 제시하고 있다. 거리는 대략 4.5 킬로미터. 4.5 킬로미터를 54분만에 걸어서 간다니 아무래도 구글맵의 도보 속도는 미군(US Army) 구보 기준인가보다. 잘 걸으면 그 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사진을 한 번 보시기 바란다. 차도를 건너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길 상태가 조깅하기 좋게 잘 만들어진 그런 길이 아니다. 게다가 짐도 있고.

 

천천히 사진 찍으며 느긋하게 걸어서 1시간 30분 정도 걸렸으니, 대략 넉넉히 2시간 잡으면 될 듯 하다.

 

 

 

공항 활주로 옆으로 나 있는 빨간색으로 표시한 저쪽 길을 통해서 가면 좀 더 가까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저 길은 공군이 관리하고 있는 길로, 차나 오토바이를 타고는 지나갈 수 있지만, 걸어서는 못 지나간다. 검문소에서 막는다. 게다가 깊은 밤에는 지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지도상으로만 보면 큰 차길만 따라가지 않고 골목길을 잘 이용하면 조금이나마 걸음을 아낄 수 있을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골목길로 들어가면 언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개 때문에 낭패를 볼 수 있다. 특히 태국 개들은 밤에 굉장히 사나워진다. 웬만하면 골목길로는 가지 말라고 말리고 싶다.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구글맵이 자동으로 추천한 길을 약간 수정해서 선택한 도보 경로는 이렇다. 복잡하게 가지 않고, 그냥 큰 길 따라서만 쭉쭉 가는 경로를 택했다. 쉽고 간단하다. 필요한 건 체력과 끈기 뿐.

 

> 구글맵에서 경로 보기 링크

 

위 링크를 누르면 구글맵에서 내가 선택한 경로를 볼 수 있다.

 

 

님만해민에서 차를 타도 이 경로와 거의 똑같은 길을 간다. 그만큼 이 루트는 큰 도로를 끼고 가는 거라서 밤에 걸어도 딱히 위험하거나 하지 않다는 건 안심. 하지만 밤에도 덥다는 건 안 안심.

 

님만에서 치앙마이 공항까지 툭툭을 탈 경우는 대략 1인당 100바트, 쏭태우는 60~100바트 정도 달라고 한다. 따라서 이 길을 걸어서 가면 대략 100바트, 약 4000원 정도를 아낄 수 있는 셈이다.

 

2016년 기준으로 100바트면 쌀국수 세 그릇을 먹고 파인애플 한 봉지를 디저트로 사먹을 수 있는 돈이다. 쌀국수 세 그릇! 혹은 볶음밥 세 그릇! 막 걸어가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샘솟지 않는가.

 

어쨌든 이제 떠나보자.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우유 게스트하우스를 나와서 큰 길로 빠져나온다. 세븐일레븐이나 쌀국수 등을 먹으러 갈 때 맨날 오가던 길을 공항 가는 데 사용하려니 웬지 마음이 짠하다.

 

사실 돈도 돈이지만 여행지에서 마지막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 공항이 가깝다면 걸어가거나 하는 편이다. 마지막 기억이 그냥 차 타고 공항 도착하는 것 밖에 없는 게 좀 서글픈 느낌이어서 언젠가부터 습관처럼 하고 있다. 물론 거리가 너무 멀면 그렇게 할 수가 없는데, 그래서 난 인천공항을 싫어한다.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 님만해민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간다. 우기에다 밤이라서 그래도 낮보다는 덥지 않은 편이다. 낮 시간에 이 길을 걸어서 공항까지 가야했다면 아마 상당히 망설였을 테다. 걷기에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지만, 여기에 땡볕이 더해지면 말이 달라진다. 낮엔 정말 타 죽을 것 같은 땡볕이라서 엄두가 안 났을 테다.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 님만해민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 님만해민

 

 

남쪽으로 쭉쭉 내려가면 소형 탑스 마트와 맥도날드 등이 나온다. 맥도날드를 끼고 모퉁이를 돌아서 구시가 쪽으로 방향을 잡고 계속해서 걸어가면 된다.

 

맥도날드는 오랜만에 가봤더니 빅맥 세트가 한국 가격과 거의 똑같다. 그래서 이 근처 지날 때 너무 덥고 지치면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시키고 에어컨 바람 쐬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빅맥 가격으로 각국의 물가를 체크하는 기사가 가끔씩 나오는데, 참 쓸 데 없는 일이다. 그렇게 비교하면 이제 태국과 한국은 물가가 비슷하다는 결과가 나와버린다. 애초에 빅맥지수가 그런데 사용하라고 있는 것도 아닌데.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배낭 메고 걸어가고 있으면 적극적인 쏭태우 기사들은 슬그머니 옆에 와서 '타지?'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한다. 그 유혹에 넘어가면 평생 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져 살며 먹지 못 한 쌀국수 세 그릇 귀신이 저승까지 따라올 테다.  

 

사실 거리만 따지면 님만해민에서 공항 정도의 거리는 60바트 이상을 받을 거리가 아니다. 단지 거기가 공항이라는 이유로 비싸게 받는 것 뿐. 님만해민에서 타패 게이트까지 갈 때도 난 외국인이라서 40을 줬을 뿐이다. 대충 시내 내부에서 돌아다니는 건 20이면 되고.

 

그래도 공항까지 요금으로 쏭태우가 60바트를 부른다면 여러모로 타는 게 좋다. 그 정도면 양반이다. 거의 대부분 그냥 100 부르고 시작하니까. 아, 물론 이건 님만해민에서 출발할 때 얘기다. 다른 곳은 거리 차이에 따라 또 상황이 달라지므로 알아서 잘 계산해야 한다.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최근 치앙마이에도 건널목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사진처럼 버튼 누르면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면서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돼 있는 곳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 옛날에 비하면 꽤 많이 생긴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희귀하다 싶을 정도로 수가 적다. 그래도 버튼을 누르면 신호는 꽤 빨리 변하는 편이고, 차들도 잘 정지해 주는 편이어서 안심하고 건널 수 있다. 그래도 주위는 꼭 살피면서 건너자.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공항 가는 길을 호루스가 지켜봐주고.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담장 너머로 유적지도 대충 구경한다.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이렇게 가다보면 곧 올드시티 서쪽의 '수안독 게이트'가 보인다. 게이트 쪽으로 길을 건너갈 필요는 없고,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간다. 여기서부터는 아주 큰 차도를 끼고 걸어서 내려간다. 낮이라면 치앙마이 해자와 그 너머 가게들을 구경하며 슬금슬금 내려가는 재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밤엔 그런 것 잘 보이지도 않는다.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이쪽 길은 전체적으로 아주 어둡다. 가로등 같은 게 거의 없기 때문에 지나다니는 자동차 불빛에 의존해서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밝은 곳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처럼 사람 다니는 길은 차도 옆쪽으로 낮게 만들어놨다. 옆으로 지나다니는 상쾌한 차 먼지를 들이마시기 아주 좋은 구조다.

 

게다가 이게 계단을 한 번 내려가면 쭉 연결된 것이 아니라, 몇 번씩 오르내려야 하게 돼 있다. 오르내린 계단만 다 합쳐도 과장 조금 보태서 63빌딩 걸어서 올라간 것 만큼 될 수도 (까지는 아니지만). 그리고 바닥은 여기저기 깨져서 엉망인 시멘트 길이거나 아예 그냥 흙바닥이다. 결론은 캐리어 끌고 가기엔 좀 힘들 수 있다는 것.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치앙마이에 몇 개 없는 육교도 있다. 이쪽 동네는 낮에도 차들이 쌩쌩 달리기 때문에 웬만하면 이 육교를 이용하는 게 안전하다.

 

사진을 밝은 곳에서만 찍어서 밝게 보일 수도 있는데, 다시 말하지만 이쪽 길은 전체적으로 어둡다. 어떤 곳은 길이 잘 보이지 않는 곳도 있을 정도다. 치앙마이가 대체로 안전한 곳이긴 하지만, 이쪽 길을 밤에 여자 혼자 걷기는 무서울 수도 있다. 더군다나 이쪽 길은 어둠이 내리면 인적도 드문 편이다. 그나마 차들이 많이 지나다니기는 한다.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차도 옆으로 푹 내려간 보도 코스를 지나면 다시 평범한 인도가 나온다. 차도 옆으로 한 계단 정도 올라서서 다닐 수 있는 길이다. 근데 이 길은 짧게 짧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수없이 많이 올랐다 내렸다 반복해야 한다. 이걸 한 계단으로 계산해서 세 보면 아마 이것만 해도 아파트 몇 층 정도 오를 정도의 수일 테다. 걷는다는 게 단순히 평지를 쭉 걸어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곳곳에 돈 내고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게 좋을 거라는 경고성 함정들도 도사리고 있다.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이제 올드시티 남서쪽 벽이다. 저 벽 너머엔 공원이 있는데 심심할 때 가볼만 하다. 현지인들이 많이들 찾는 공원인데, 딱히 볼 건 없어도 조용히 산책하기 좋다.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여기쯤 오면 이제 포기하기엔 아까운 지점으로 접어든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와서 포기할 순 없지'하며 힘들어도 악물고 버티는 수 밖에 없는 지점. 그러니 차를 타려면 이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타야 억울하지 않다.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계속해서 어두컴컴한 길. 인도 쪽엔 아예 가로등 따위 없다. 그나마 차도 쪽으로 드리운 가로등 불빛 때문에 그리 어둡지는 않은 편이다. 보도블럭도 잘 깔려 있어서 보도 위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만 아니면 걷기 괜찮은 편이다.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치앙마이 올드시티 외벽을 뒤로하고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도심 외곽으로 벗어났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차들도 더욱 쌩쌩 달리고 바람도 조금 더 차가워진 느낌.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이쪽 길도 완전히 차도만 쭉 뻗어있는 건 아니다. 힘든 육체를 유혹하는 가게들이 길 따라서 듬성듬성 있다. 가면서 먹으면서 쉬엄쉬엄 가는 계획을 짜도 괜찮기는 하겠으나, 가게들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어떤 가게는 저렇게 형광등을 간판에 메달아놨다. 저거 잘 못 건드리면 뻥하고 터질텐데. 함정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치앙마이 올드시티 서남쪽 해자를 뒤로하고 몇십 분 걸어 내려가면 서서히 공항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들도 가끔 볼 수 있다. 은근히 한두사람씩 보이기 때문에 동지애 비슷한 걸 느낄 수도 있다.

 

치앙마이 공항 도착해서 힘이 남아돈다면 이렇게 걸어서 시내로 들어가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은 하다. 공항이 시내와 너무 가까워서 이전한다는 소문이 벌써 몇 년 전무터 돌고 있으니, 어쩌면 이번이 걸어서 시내로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시도해 볼 수도 있고. 꼭 시내까지 완전히 걸어가지 않아도 공항에서 조금만 나오면 조금이나마 싸게 시내로 들어갈 수도 있다.

 

다음 편에 계속.

 

> 치앙마이 공항 걸어가기 - 님만해민 우유 게스트하우스 출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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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