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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어버린 울버린 - 로건
    잡다구리 2017. 3. 13. 16:04

    영화 '로건'은 비록 세대교체를 위해 종지부를 찍는 성격의 영화였으나, 처절한 이야기와 함께 여러가지 생각해볼 거리가 있었다. 깊이 생각하면 암울해지는 주제들이 많아서, 그냥 키워드 별로 간략하게 언급만 해 보겠다.

     

     

    노화

     

    엑스맨의 대장 격인 찰스는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스쳐가는 대사로는 자기도 모르게 많은 사람을 죽인 것 같기도 하다. 엄청난 능력을 가진 수퍼히어로의 말로가 이러하다면 참 씁쓸한 일이다. 물론 로건 또한 노화라고 할 수 있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 모습 또한 영 암울하다.

     

    불로불사 설정의 수퍼히어로가 아닌 이상, 영웅들도 노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당장 생각나는 캐릭터만 해도 배트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이 늙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아무리 타고난 능력이 있고, 첨단 기술의 힘을 빌더라도 육체 자체가 노화한다면 그 능력 또한 예전같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알츠하이머 같은 병이라거나, 노쇠에 의한 생각의 변화 같은 것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좀 씁쓸한 일이지만, 앞으로 늙은 수퍼히어로에 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수퍼히어로와 함께 한 사람들이 늙어가니까 세대교체를 해야 할 필요도 있을 테고. 아무쪼록 그 중에 하나 정도는 득도를 해서 정신적으로도 초탈하는 캐릭터가 하나쯤 나오길 바란다.

     

     

     

    기술 발전

     

    '로건' 영화에서 자율주행 트럭이 잠깐 나온다. 현실에서도 자율주행차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 자율주행차가 가장 유용하게 쓰일 곳 중 하나가 바로 트럭이다. 미국 같은 광활한 대지에 물류 운송 트럭은 정말 따분하고도 단조로운 일이다. 몇 날 며칠을 쭉 뻗은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트럭은 무인 자동차로 만들기조 좋은 아이템이고. 트럭이 도심으로 진입하지 않게 물류 거점을 외곽에 설치하기만 하면, 당장에라도 큰 문제 없이 운영할 수 있을 테다.

     

    그런데 이런 기술도 결국 인간이 운영하는 거라서, 인간이 어떻게 명령을 내려놓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 영화에서도 일부러 자율주행 트럭을 다른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도록 조작해 놓은 것이 나온다.

     

    또한 로건과 한 남자가 옥수수 밭을 가로지르며 이런 대화를 하기도 한다.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왜 먹는지 모르겠어, 맛도 없고 크기만 클 뿐인데". 좀 긴가민가하다. 이 말에 동조나 반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동조든 반박이든 하려면 유전자 조작이 되지 않은 옥수수 맛을 기억해야만 할 텐데.

     

    그 대사는 로건 자신에 대한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울버린도 사실은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수퍼히어로니까. 그런데 이 주제는 나중에 X-24가 등장하면서 갈피를 잡는다. 바로 '인간성'이라는 부분이 강조되는 것이다. 인간성이 결여된 기술은 그 자체만으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 기술은 중립적이라 할지라도, 중립적인 기술은 없다. 어차피 기술 개발은 인간이 하기 때문이다.

     

     

    가족 혹은 사랑

     

    '인간성'이라는 화두는 자연스럽게 '사랑'이라는 주제로 넘어간다. 낭만적인 애정행각이나 에로틱한 정사 장면 하나 없이 이루어지는 유사가족. 유전자라는 희미한 끄나풀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냥 남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족과 친지를 이룬다.

     

    일인가족이 점점 비중을 높여가는 가운데, 가족이라는 것이 꼭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는 것. 물론 이건 여러 다른 영화에서도 나오는 주제이긴 한데, 로건에서는 '버림받은' 혹은 '팝박받는' 사람들끼리 모인다는 점에 주목할 만 하다. 더군다나 로건 일행 뿐만 아니라, 아이들끼리 모여서 이룬 집단도 일종의 가족이라 할 수 있고.

     

    어쩌면 점점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핏줄로 이루어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남보다 못 한 관계로 고통받기보다는, 어디든 나를 환영해주고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곳에서 가족을 이룰 수도 있다는 것.

     

     

    이민자

     

    로건 일행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멕시코 국경 쪽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뮤턴트 아이들은 핍박을 피해 캐나다로 넘어가려 한다. 부랑자, 쓸모 없는 사람들, 허드렛일 하는 사람, 흑인, 히스패닉, 그리고 버림받은 사람들, 혹은 사회가 제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 모두가 쓰레기 청소되듯 미국에서 쫓겨난다.

     

    이후 미국은 어떤 세상이 될까. 생체공학 기술로 클론을 만들어내는 거대 기업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겠지. 이미 뮤턴트들은 죽거나 사라지거나 국경을 넘어가버렸으니 대항할 세력도 없을 테고. 그냥 다 받아들이고 조용히 숨 죽이고 살면 되겠다. 멋진 신세계.

     

     

    실패의 경혐

     

    사실 로건은 철저히 실패를 거듭하는 캐릭터다. 실패 속에서 성장하고 성장하면 또 실패하고, 그 속에서 주변 사람들은 죽어나간다. 엄청난 능력을 가졌으나 그 능력도 이제 수명을 다해가고, 그걸 물려줄 수도 없다. 당연히 모아놓은 재산도 없고. 그런 사람은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줄 것인가.

     

    실패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위 말 하는 '성공'한 인생이 되질 못 한다. 누구나 한 번 쯤은 보았을 듯 한 햇살 좋았던 인생의 한 단편에 대한 추억만을 가진 채, 딱히 다음 세대에 뭔가 물려줄만 한 것이 없는 상태.

     

    어쩌면 뭔가를 물려줘야만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강박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세대를 살게만 해 준다면 그 나머지는 다음 세대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오래된 영화처럼, 그냥 기록으로 남아서 가끔 어디선가 문득 나와주기만 한다면 뭔가를 깨닫는 계기가 되는 정도. 많은 걸 바랄 필요가 없듯이, 많은 걸 줄 필요도 없지 않을까.

     

     

     

    인생

     

    아주 오랜만에, 혹은 생애 최초로 일반적인 가정의 행복한 일생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 한 가족. 그들은 로건 일행과 얽혔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죽게된다.

     

    사실 인생이란 게 대체로 그런 편이다. 어느날 어이없이 찾아오는 사고와 죽음이 있다. 그 속에서 어떻게든 내 인생은 의미가 있을 거라며 거대한 목표나 목적이나 의미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정말, 대개의 인생은 작고도 작다.

     

    어떤 인생은 세상을 구할 사람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하기 위한 의미일 수도 있다. 온 평생을 그 한 끼 식사 대접을 위해 살아온 인생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어떤 인생은 그 식사 대접하는 사람을 먹여 살리는 역할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인생은 그저 그 옆에서 스패어로 존재할 수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제 역할을 못 하면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배가 고파서 싸우다가 머리카락 한 올 베이는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인생의 의미가 하찮다면 모든게 부정되고 의미없고 암울해야만 하는가. 어차피 인생에 의미 따위는 없을 수도 있는데. 나라는 존재는 우주의 작은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조용히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다보면, 슬픔도 잠시, 그냥 지금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항상 내 인생의 마지막일 수도 있는 짜장면을 맛있게 먹자.

     

     

    p.s.

    영화의 결론은 캐나다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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